-
-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
게키단 히토리 지음, 서혜영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일본에서 출간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는 게키단 히토리의 책이다. 그의 이름이 생소한 사람이 많겠지만 일본드라마나 쇼프로를 자주 본 사람에게는 아주 낯익은 얼굴일 것이다. '게키단 히토리' 는 즉, 1인극단이란 예명으로 활동하는 개그맨으로 다방면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다. 얼마전에는 우리나라 드라마 '마왕' 을 리메이크한 일본판 드라마에서 명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평소 관심이 가던 연예인이어서 그런지 그가 책을 냈다고 하니 꼭 읽고 싶었었다. 언제쯤 한국에서 출간이 될 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손에 쥐게 되었다.
이 책은 옴니버스 형식을 띄고 있는 소설로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교차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전에 읽은 이사카 코타로의 '러시라이프' 같은 형식과 비슷한 것 같다. 처음 소설을 쓴 사람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의 치밀한 구성이 엿보인다. 또한 각 이야기들에는 숨은 반전도 있어서 읽을때마다 뒤통수를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오거나 해서 눈살이 찌푸러지는 것들은 아니었다. 재밌고 톡톡튄다고 해야할까. 개그맨이라는 작가의 직업기질이 십분 발휘된 것 같아 괜시리 흐뭇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또 이 책의 좋은점은 깔깔깔 하고 크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심해서 남에게 말 붙이기도 어려운 한 여자가 디지털 카메라 사용법을 몰라 쩔쩔매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비스 센터의 직원에게 물어볼 용기도 없고 기껏 산 메모리카드는 기기에 맞지 않아 깎아 쓰기까지 하다니... 또 아이돌을 사랑하는 한 남자가 그녀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보니 웃음이 절로 난다. 지하철에 혼자 앉아 이 책을 읽고 있는데 웃겨서 하마터면 남들에게 따가운 눈총을 받을뻔 했다.
하지만 이렇게 한바탕 크게 웃고 나니 마지막엔 눈물이 났다. 사랑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남자가 아이돌에게 일편단심 민들레인 모습, 일상의 자유가 너무도 그리워 홈리스가 되기 위해 집을 떠나는 가장의 모습, 소심한 여자가 남자들에게 철저하게 이용당하거나 도박빚에 쫓겨 급기야 범죄까지 저지르려고 결심한 한 남자... 이렇게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외롭고 소심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풀어내는 이야기들은 분명 재미있긴 했지만 끝은 허전하고 아릿한 마음이 들어 연민마저 느껴졌다.
이야기 중에서 책의 제목인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도 좋았지만 개인적으론 '신의 게임'이 더 좋았다. 이 이야기야말로 한없이 재밌다가 마지막엔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내용이었다. 도박에 인생을 걸고 한탕을 노리지만 결국 빚만 늘어가는 한 남자가 할머니를 상대로 사기를 쳐서 돈을 갈취하려고 한다. 처음엔 그렇게 나쁜 의도였다. 순진한 시골할머니를 속여 빚을 탕감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 못한 결과가 벌어지고 만다. 마지막 장면에선 너무 슬퍼서 눈물이 절로 났다. 특히나 반전이 대단해서 과연 이 책이 게키단 히토리가 처음으로 소설을 쓴 것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그러기엔 모든 구성과 이야기 전개가 뛰어났으니 말이다.
역시나 뛰어난 원작은 영화로 다시 만들어진다. 이 책 역시 오카다 준이치와 미야자키 아오이라는 젊은 남녀배우가 주연을 맡아 영화로 제작되었다고 한다. 원작의 내용도 워낙 탄탄하고 배우들 역시 이름있는 이들이니 정말 보고 싶어진다. 이제는 영화가 개봉되길 손꼽아 기다려야겠다.
오랜만에 읽은 일본소설이었고 게다가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책이었기에 만족도가 높았다. 원래 기대가 높으면 실망이 큰 법인데 이번엔 그렇지 않았다. 정말 십점 만점에 십점을 주고 싶은 책이었다고 표현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