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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의 네버엔딩 스토리
금나나 외 지음 / 김영사 / 2008년 12월
평점 :
하버드하면 참 멀게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곳은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들, 밤새 공부에만 매달리는 샌님들로 가득할 것만 같다. 우리나라의 최고의 미인에게 주어지는 영예인 미스코리아 진을 당당히 거머쥔 금나나는 그런 하버드에서 4년을 버텨냈다. 보냈다는 말보다 버텨냈다는 말이 더 잘 어울린다는 건 아마 이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해가 될 것이다. 공부 스트레스로 한국에서의 날씬했던 모습은 어느새 살이 붙어 여유롭게 변해있었지만 오히려 그 모습이 더 아름다워보였다. 그만큼 그녀가 자신의 일에 열중했다는 증거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여유라 말하지 않는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초콜릿을 먹어댔고 점점 폭식을 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정말 하버드에서의 생활을 보자니 그녀의 그 폭식증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엄청난 과제들, 그녀를 항상 압박감으로 짓눌러대는 페이퍼, 그리고 가장 큰 문제였던 영어라는 큰 벽... 듣기만 해도 이내 버거워진다.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정말 노력이란 게 무엇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미국이란 나라에서 그것도 명문 하버드에서의 생생한 체험담은 내 나태한 정신을 일깨우게 해줬다. 페이퍼 쓰는 것이 고역이라 언제나 조교와 교수님을 찾아가 성가실 정도로 질문했던 것, 대학의 낭만은 뒤로한채 오로지 성적에만 매달려야만 했던 것, 학업스트레스로 인해 초콜릿을 입에 달고 살다보니 점점 몸이 불어나게 된 것... 하버드대 학생이란 멋진 타이틀 뒤에는 이런 남모를 고통들이 뒤따라야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목표와 또 그것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려나가는 모습이 참 멋있어 보였다. 국제학생은 미국의대에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는 집념은 더욱 그러했다.
이 책이 흔한 자기계발서들처럼 '이 사람은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는 얘기만 있었더라면 별다른 감동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그녀의 좌절과 실패에 관한 이야기들도 나와 있다. 미국의대에 도전하기 위해 프리메드의 길로 들어서지만 그 길은 결코 쉽지가 않았다. 자신의 난적인 영어와 싸워야 했고 국제학생이란 타이틀도 장애라면 장애였다. 그래도 포기하긴 싫어 끝까지 노력했지만 결국은 패배를 맛보아야만 했다. 그러면서 많이 방황하고 좋았던 성적은 바닥을 기게 되고 우울증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 실패를 겪은 그녀이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주저앉지는 않는다. 그 실패를 딛고 일어서서 긍정적으로 자신의 미래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그녀를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원대한 꿈이었던 의사라는 길은 아직 잠정 보류해둔 상태이지만, 사람 인생은 어찌될 줄 모르는 것 아닌가. 하버드에서 격렬히 4년을 버텨낸 모습을 보니 그녀는 어떻게 해서든 꼭 자신의 꿈을 이룰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녀의 그 열정과 노력이 한없이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내 인생에서 그토록 열정적으로 매달렸던 일이 있나 하고 자문해본다. 부끄럽게도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그저 막연한 기대감으로 꿈을 바라보기만 하며 살았던 것 같다. 왠지 새해를 맞자마자 이 책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표와 계획을 확고하게 세워 나도 무엇인가에 매달려 열심히 노력해보고 싶어졌으니 말이다.
책에서 또 한가지 돋보였던 점은 그녀의 경험을 통해 미국과 한국의 교육제도 비교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불어 하버드의 엄청난 교육시스템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도 되었다. 교수 1인당 맡게 되는 학생의 수가 한국보다 현저히 적으며 학업을 잘 이끌어갈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는 많은 프로그램들, 심지어 정신건강을 위한 카운슬러까지 존재한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했다.
그녀는 이제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다가서고 있다. 비록 의대는 아니지만 컬럼비아 대학원에서 영양학을 공부할 것이라고 한다. 하버드에서 4년을 꼬박 고생한 것처럼 그곳에서도 똑같은 시간을 반복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그때마다 부석사의 큰스님께서 해주신 말을 떠올릴 것이다. "난행을 능히 행하는 자만이 힘을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단지 나나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번도 치열하게 살지 못한 나에게, 혹은 지치고 힘들어하는 당신에게 필요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가 꿈을 이루기 위해 하루를 마치 열흘과 같이 살았듯이 나도 한번 그렇게 살아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