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 도시가 내 삶에 들어왔다, 교토
이혜필 지음 / 컬처그라퍼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책의 첫부분에 실려 있는 보들레르의 시가 마음에 와 닿는다. 남들이 부러워마지않는 도시인 파리에 살고 있으면서 정작 자신은 갑갑해 견딜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그곳을 뛰쳐나가는 갈망을 꿈꿨다고 한다. 과연 이 도시에 환멸을 느껴 떠나고 싶어진다면 그곳은 어디가 될까? 이러한 물음에 작가는 자신만의 도피처로 교토를 택했다. 그러고 보면 교토는 존재 자체를 숨기기에 충분한 장소인듯 하다. 떠들썩한 도쿄나 오사카와는 달리 조용한 분위기가 도시를 감싸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사계절 뚜렷한 자연색도 지니고 있어 눈요기하기에도 좋은 곳이다. 때론 사색에 잠겨 거리를 걷다가도 어느새 핀 벚꽃과 단풍으로 물든 풍경에 눈이 행복해지기도 하니 말이다. 이러한 특징을 지닌 교토를 작가는 사색적이고 회화적인 분위기의 도시라 표현했다. 교토를 다녀와 본 이라면 충분히 공감이 갈 만하다.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때는 단순히 여행기의 일종이라 생각했다. 교토에 다녀온 느낌들의 나열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그보다는 따뜻한 에세이 한권을 읽는 것 같았다. 간간이 교토의 주요 관광지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그곳의 분위기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감각적인 사진들이 실려있었다. 나 역시 금각사, 은각사, 산쥬산겐도 등은 가보았는데 정작 그곳에 대한 구체적 정보들은 몰랐었다. 하지만 책에 나와 있는 자세한 설명들을 읽으니 눈으로만 훑고 지나갔던 곳들이 색다르게 다가오는 듯 했다. 또한 그 당시 가보지 못해 아쉬웠던 아라시야마에 관한 내용이 나와있어 반갑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가장 매력이라 할 수 있는 점은 작가가 교토에서 일본어 학습을 하면서 보낸 일상들과 그 때 만난 사람들과의 이야기였다. 단기간의 여행만으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생생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얘기들이어서 더욱 그런 것 같다. 한국에서 태어나 스웨덴으로 입양된 헨리와의 만남, 교토 삼총사로 불리우며 절친하게 지냈던 옌옌과 구카이와의 우정 등은 마음을 절로 따뜻하게 했다. 그와 동시에 일본에서 어학연수를 한 적이 있던 내게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을 추억하게끔 했다.
게다가 이 책은 나의 고정관념도 철저히 깨트려주었다. 지금껏 관광 (관광지만 눈훑기식으로 돌아다니는 여행) 이 아닌 여행 (홀로 여유롭게 사색하는 여행) 은 젊을 때만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여행을 나이 따위 같은 제약으로 왜 묶어두었는지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또한 여행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은 제각각 다르다는 것도 느꼈다. 여행을 다녀온 후 다시금 지친 사회생활에 발을 들여놓을 수도 있고 이제껏 해 왔던 일들과는 정반대 일에 도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다시 한번 어디론가를 향해 배낭을 꾸릴 수도 있을 것이다. 작가는 교토에서 가장 좋아하던 장소가 까페라고 했는데 아마 그것이 동기가 되었나보다. 한국으로 돌아와 여행에 관한 이야기와 커피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행까페를 차렸으니 말이다. 생각만 해도 로맨틱한 일인 것 같아 부러운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다.
어느덧 계절도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고 있다. 단풍이 산마다 무르익을 때쯤이면 교토 생각이 또 날 것 같다. 그럴때면 다시 한번 이 책을 꺼내 읽으며 그리움을 달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