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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에 산다 ㅣ 비온후 도시이야기 2
박훈하 글, 이인미 사진 / 비온후 / 2009년 2월
평점 :
이 책을 통해 저자는 도시가 제공하는 장밋빛 미래와 스펙터클로부터 빗겨 서서 개인들의 작은 이야기가 도시 속에 다양하게 수렴될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하고 나누고 싶었다 말한다.
접속을 욕망하면 할수록 도시 대중들이 얻게 되는 것은, 접속이 아니라 절연이고 통찰이 아니라 오인일 수 밖에 없는 모순률을 단번에 타파 할 수ㅡ 없지만, 이 처럼 민속지학 혹은 부산이라는 특정 지역학적인 더딘 해법을 통해서 시선을 멀리 두지 않고 우리 주변의 일상적 사건들과 작은 이야기를 통해 사유를 시작한다면, 세계화와 같은 허구성과 일상적 현실을 감쪽 같이 은닉해 버리는 도시의 작위적인 스펙터클에 대해 좀더 객관적이고 새로운 인식을 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머리글에 적혀있는 위와 같은 글들이 처음에는 너무나 철학적이고 피상적인 느낌을 주어 크게 마음에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머리글이 실려 있는 책장을 넘기자 곧 바로 이어지는 흑백 사진들과 짧은 글들을 하나 하나씩 읽어 가다 보니, 차츰 저자의 생각과 의도에 크게 공감이 되었다. 무리난제에 가까운 화두와 달리, 내용은 극적 대조를 이룰 정도로 쉽다. 머리글의 난해함으로 잔뜩 겁먹은 독자가 일순간에 공포감을 떨쳐 버릴 수 있을 정도로, 본문의 이야기들은 하나 하나 소박하고 진솔하고 일상적이어서, 쉽게 공감이 되었다. 때때로 예리한 저자의 생각들에 아차싶은 순간들도 많았다.
도시라는 거대한 공간을 제목에 걸고 있지만, 정작 저자의 시선은 도시적인 것들속에 숨겨진 사람, 즉, 인간적인 내면에 더 많이 머물러 있음을 느끼게 된다. 사람이 된다는 건 마주한 것들의 겉이 아니라 속내를 들여다볼수 있다는 것 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하며, 나 역시 저자 처럼, ’너무 멀리 바라보지 않기’를 다짐해 본다.
언뜻 책을 펼쳤을 때 온통 흑백 투성이의 사진과 글씨들에 처음에는 당황했고, 조금은 답답한 심정도 있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컬러 사진을 실었으면 좀 더 글들이 돋보였을텐데 싶은 마음도 들었다. 제작 비용의 절감을 위해 사진을 흑백으로 실었구나 하는 오해도 했었다. 하지만, 차츰 저자의 생각과 의도를 이해하면서, 흑백 사진과 글들이 전해주는 담백하고 그윽한 매력에 빠져 들게 되었다.
나 역시 늘상 자본주의적 매끈함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래서 화려하고 세련된 것이 아니면 좀처럼 쉽게 눈길도 마음도 머물지 못한다. 반면 도시적 세련됨이나 화려함 속에 눈에 띄는 초라함에는 나도 모르게 놀라움을 금치 못하기도 한다. 때로는 스스로 도시적 화려함에 압도되기도 한다. 은연중에 도시에 걸맞지 않는 초라하고 남루한 행색의 사람들을 부자연스러워하고 어색하게 여기기도 한다.
이처럼 화려함은 때때로 독이 되기도 한다. 많은 좋은 것들을 가리고, 시각적 왜곡을 통해 겉모습에만 현혹되도록 만든다. 이것이 도를 넘어서면 사물과 대상의 겉모습에 집착하고 사유화 하려는 욕심을 내게되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정작 사람을 위해 도시가 존재 하건 만 주객을 전도시켜 도시에 걸맞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을 구분해 내기도 한다. 사람에 걸맞는 도시나 환경을 좀 처럼 따져 보지 않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래서 점점 더 도시는 화려해 지고, 이로 인해 눈요기 할게 많아진 현대 도시인들은 어느 노랫말 처럼 ’누가 뭐래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줄을 전혀 모르는 듯 보인다. 과도하게 으리뻔쩍한 풍경과 건물들을 상찬하면서, 점차 자신과 세상사이에 뚜렷한 분별과 경계를 그어 간다. 정작 자신의 아름다움을 모른 체 살아가는게 요즘 사람들인 듯 하다.
책 표지에 작게 박혀 있는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선정 우수교양도서"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이 책은, 담고 있는 생각도 그림도 모두 아름답고 곱다는 느낌이다. 주변의 소소하고 일상적인 것들에서 부터, 관심 받지 못하는 것, 숨겨진 아주 작은 것들에 이르기 까지, 저자가 주변 생활 공간 곳곳에 던지는 시선들은 따사롭고 신선했다. 지나친 과장으로 어색하기 그지 없는 맹목적 도시 찬양이 아니어서 좋았다. 표현이 서투른 부산토박이 경상도 남자 특유의 무뚝뚝한 도시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이 느껴지는 부분도 좋았다. 글과 사진이 종속관계가 아닌 상호간의 길항이 보장되도록 하는 기획 역시 매우 마음에 들었다. 도시에 살지만, 도시에 종속되지 않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어 이 역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