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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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있을 때도 날파리처럼 아른거리던 흑점들은 눈을 감으니 더 선명해진다. 나이가 들면서 흑점의개수도 늘고 있다. 눈을 감고 있어도 주위가 차츰 훤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흑점의 배경이 검붉은 빛에서 노을빛으로, 그리고복숭앗빛으로 점차 옅어진다.
외출복을 입은 채 이부자리도 없이 누워 있다. 두 시간 전 일어나 집에서 십 분 거리에 있는 성당에 다녀왔다. 미사를 빼놓지 않고, 기도를 오래 드리는 내가 다들 신심이 깊다고 생각하겠지만엘리사벳 수녀의 끈질긴 권유에도 세례는 받지 않았다. 깨어 있어도 눈을 감을 수 있는 곳이어서 성당을 좋아한다. 이렇게 눈꺼풀 안쪽을 들여다보다 설핏 잠이 들기도 한다. 낱말공부를 하다가도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으면 진이 나를 흔들어 깨우곤 한다. 눈꺼풀 안쪽의 색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까 궁금하지만 물어본적은 없다. 아버지, 순덕이와 정순이, 남편들, 그리고 진에게도.
동이 완전히 트자 흑점은 더 선명해진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점에서 시작되어 길게 늘어진 검은 실처럼 움직인다. 마치붉게 물든 하늘을 향해 걸어가는 누군가의 그림자 같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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