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바다처럼 운다
임세병 지음 / 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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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는 분명 에세이라고 적혀 있는데, 왜 나는 자꾸 시집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었을까. 임세병의 『소년은 바다처럼 운다』를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생각이다. 이 책의 문장들은 단정하게 의미를 전달하기보다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물러난다. 어떤 문장은 눈앞의 풍경을 보여주고, 어떤 문장은 손끝에 감촉을 남기며, 또 어떤 문장은 오래된 기억 속 냄새까지 불러낸다. 그래서 책을 읽고 있다는 느낌보다 어느 리듬 위를 천천히 떠다니고 있다는 감각에 가까웠다.

부서지는 파도처럼 이 책에는 언어의 경계도, 시간과 공간의 구분도 뚜렷하지 않다. 시각과 청각, 촉각이 뒤섞이며 만들어내는 몽환적인 문장들은 단단하게 굳어 있던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문다. 파리와 한국, 과거와 현재, 현실과 기억이 자연스럽게 겹쳐지는 가운데 작가는 자신만의 낭만적인 사유를 차곡차곡 쌓아 올린다. 그리고 그 사유는 어느새 독자의 감각 속으로 스며든다.

특히 저자가 사용하는 어휘와 문장의 풍부한 감성은 책 속의 풍경을 더 생생하고 오래 남게 만들어낸다. "그날 이후로 내게 이자벨은 보랏빛 태양으로 각인되었다. 코르시카의 여름이 수십 번은 오고갔을 잔주름이 고지도의 등고선처럼 빼곡했지만, 갓 맺힌 레몬처럼 단단하던 몸."이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코르시카의 뜨거운 햇살 아래 서 있는 한 여인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잔주름이 새겨진 얼굴과 단단한 몸, 태양에 그을린 피부와 야생화 향기까지 떠오를 정도였다. 단지 문장 몇 줄이 만들어낸 세계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선명했다. 저자의 아버지가 어린 아들에게 "너는 아무래도 예술가가 되려나 보다"라고 말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그는 눈에 보이는 장면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감각을 포착해 언어로 옮겨내는 사람이다.

"사람은 언제나 의미를 찾아 나아가야만 하는가? 무의미하게 살아본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허무는 곳곳에서 제멋대로 싹을 틔운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해도 해마다 나는 이미 먼 우주를 여행하고 있다. 막막한 방향으로 끊임없이 나아간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 속에서도 우리는 이미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은 날들조차 거대한 우주의 흐름 속에서는 하나의 여행이 된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위안이 되었다. 의미를 찾지 못해 불안했던 순간들마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또 우리는 늘 의미를 찾고, 이유를 만들고, 목적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나 작가는 그런 강박에서 한 걸음 물러선다. 삶이 언제나 합리적이거나 생산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하며, 목적 없이 걷는 길에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것들이 어느새 삶의 일부가 되고, 쓸모없어 보이던 것들이 오히려 우리를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에 안도하고 위로 받는다.

책을 읽다 보면 바다는 더 이상 낭만의 상징으로만 남지 않는다. 끝없이 흔들리고 방향을 잃기도 하며, 깊이를 알 수 없는 불안을 품고 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하지만 바다는 파도를 멈추지 않는다. 삶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흔들리고, 때로는 길을 잃고, 상실과 그리움을 끌어안은 채 살아간다. 중요한 것은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면서도 계속 나아가는 일인지 모른다.

『소년은 바다처럼 운다』를 읽다 보면, 조금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도 괜찮다고, 그래도 우리는 계속 살아갈 수 있다고 위로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책장을 덮고 난 뒤에도 문장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마치 밀려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파도처럼, 오래도록 마음속을 적시며 머문다. 그리고 문득 바라게 된다. 바다를 바라보며 끝없이 질문하고, 세상을 향해 호기심을 잃지 않는 그 소년이 영원히 소년으로 남아 있기를.


#소년은바다처럼운다 #임세병 #달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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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인의 하루
김영글.안희제.정우열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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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골목을 지나가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개고기를 파는 가게 한쪽 철창 안에 아주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웅크리고 있던 어미개. 나는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어린 강아지도 잡아먹는 걸까. 어미개가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저 아이는 보게 될까. 어떤 결말이든 예정된 운명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고, 결국 나는 주인에게 값을 치르고 두 생명을 데리고 나왔다. 콩닥거리는 몸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간이 다른 생명에게 얼마나 쉽게 폭력을 행사하는지, 그리고 그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무심함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잠시 보호하다 좋은 가족을 찾아주겠다는 계획은 어느새 13년이 되었다. 그 사이 어미개는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철창 속에서 떨고 있던 작은 강아지는 열세 살 노견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반려인의 하루』가 유독 반갑게 다가온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김영글, 안희제, 정우열 세 작가가 고양이, 식물, 그리고 개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담은 에세이다. 서로 다른 반려 대상을 이야기하지만, 책이 도착하는 곳은 같다. 만남과 공존, 그리고 이별. 나는 강아지와만 살아봤음에도 세 사람의 이야기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 고양이 이야기에서는 적당한 거리 안에서 피어나는 신뢰와 애정을 보았고, 식물 이야기에서는 기다림 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발견했으며, 반려견 이야기에서는 슬픔이 더 큰 사랑이 되어 가는 힘을 느꼈다.

그럼에도 개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정우열 작가의 「저녁의 강아지」를 더 오래, 더 깊이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자신의 개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해졌다. 이건 어딘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대목을 읽으며 사랑 끝에 남는 것이 결국 불행이라면 너무나 슬픈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불행한 걸까. 앞으로도 불행할 일만 남은 걸까. 문득 우울해졌다.

하지만 책 말미에 "우연한 혹은 어떤 필연적인 계기로 반려동물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살면서 사랑과 그 밖의 많은 것들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함께 행복을 누리고, 결국 이별을 하게 되고, 그런 다음 마침내 혼자 남겨진 우리는 적어도 이전보다 조금은 나은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를 떠난 존재들이 남겨준 사랑의 씨앗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 생명에 대한 사랑이 또 다른 생명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거듭 피어날 때, 나의 사랑은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작게 꽃을 피우며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결말은 결코 불행이 아닐 것이다.『반려인의 하루』는 바로 그 사실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만남과 이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슬픔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다정한 시선을 건네는 책.

"자신의 개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해졌다. 이건 어딘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

그렇다.

그래서 결국 행복했다는 결말을 위해, 나는 오늘도 온 마음을 다해 나의 작은 친구를 사랑할 것이다.

사랑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행복하다.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반려인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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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한다는 착각 - 열심히 말하는데, 왜 마음은 멀어질까?
마이클 니콜스.마사 스트라우스 지음, 윤삼호 옮김 / 교양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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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니콜스의 『대화한다는 착각』을 읽는 동안, 문득 최근에 마지막으로 ‘진정한 대화’를 나눈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놀랍게도 그런 기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정작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게 일상이다.

『대화한다는 착각』은 우리가 열심히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점점 멀어지는 이유, 더 나아가 진정한 대화를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핵심은 ‘잘 듣기’, 바로 경청에서 시작된다. 왜 듣기가 중요한지에서 시작해 무엇이 우리의 듣기를 방해하고 오해를 키우는지, 더 나은 경청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그 경청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대화란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는 일이다. 대화는 언제나 상대가 있는 행위이고, 그 안에는 반드시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어렵게 마음을 꺼내 보였는데 상대가 진심으로 귀담아듣지 않거나 공감하지 않거나 적절한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대화는 위로가 되기보다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상처받는 우리 역시 과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있었을까.

어쩌면 이것은 어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면서도, 정작 나 또한 누군가의 말을 온전히 듣고 있었는지는 돌아보지 못한다. 책은 타인에게 견디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안의 불안과 상처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상대의 감정 앞에서도 쉽게 조급해지고, 듣기보다 판단하거나 반박하려 한다. 결국 경청의 문제는 단순히 대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존중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늘 들어주기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의 이야기만 중심이 되는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자신의 마음은 매번 꺼내 보이는데 상대의 마음은 그 안에 머물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소통이라기보다 일방적인 전달에 가깝다. 대화가 오래 이어지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번갈아 서로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나와 타인의 감정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분노와 원망 뒤에 숨어 있는 상처를 들을 수 있고, 상대의 말 속에 담긴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화한다는 착각』은 진정한 소통의 핵심이 얼마나 잘 말하느냐보다 얼마나 깊이 듣느냐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경청 역시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듣고자 하는 마음과 들려주고자 하는 신뢰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대화는 살아난다.

책을 덮고 나니 결국 진짜 대화란 특별한 기술 이전에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말할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이 닿는 자리까지 기꺼이 귀를 내어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의 감정도 더 깊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그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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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한다는착각 #마이클니콜스 #교양인출판사 #책추천 #베스트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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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화가 나도 바보와는 싸우지 마라
다무라 고타로 지음, 송수진 옮김 / 유노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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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언행으로 인해 마음의 평온이 깨지고, 그 불쾌한 감정을 곱씹느라 귀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치는 수많은 ‘바보’들은 때로는 무례한 태도로, 때로는 불합리한 시비로 우리의 일상을 어지럽힌다. 다무라 고타로의 『아무리 화가 나도 바보와는 싸우지 마라』는 타인에게 휘둘리며 분노하느라 정작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던 나에게, 이제는 그 소모적인 싸움을 멈추어야 할 시간임을 일깨워주었다.

이 책은 단순히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넘어, ‘내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세상에 득실대는 바보들과 정면으로 맞붙어 승리를 쟁취하려 애쓰는 것은, 결국 소모된 자신만을 남기는 어리석은 소모전일 뿐이다. 진정한 승리란 그들과의 싸움 자체를 회피하고, 그들에게 쏟을 에너지를 온전히 나의 삶을 가꾸는 데 집중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저자가 정계와 재계, 학계를 거치며 수많은 인간 군상을 직접 겪으며 체득한 조언들은, 마치 난세의 지혜가 담긴 병법서처럼 실전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제시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뼈아프게 와닿았던 것은 타인과의 비교가 나를 내 인생의 조연, 혹은 엑스트라로 전락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누군가의 부당함에 화를 내고 반응하느라 정작 내 마음의 소리는 방치해 두었다. 이제는 타인의 시선이나 무례한 태도에 흔들리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유연한 마음가짐과 스스로의 감정을 조율하는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나 자신을 지켜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주목하느라 나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시간들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이제는 타인에게 휘둘리던 시선을 거두어 나에게 쏟아붓기로 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그러나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처럼, 지금부터라도 내 삶의 중심을 온전히 나에게 두는 일에 치열해지려 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는 나무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보들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가장 완벽한 전략일 것이다.

결국 『아무리 화가 나도 바보와는 싸우지 마라』는 바보들을 상대하는 기술서가 아니라,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사랑하기 위한 인생 공부였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서 내가 원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나를 괴롭히던 존재들은 자연스레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삶의 새로운 챕터를 앞둔 지금, 타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나의 빛을 찾아 나서는 길에 이 책은 더없이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더는 의미 없는 사람들에게 내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오늘 나의 아침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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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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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표지였다. 단정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디자인은 아직 펼치지 않은 문장들의 분위기를 미리 전해주는 듯했다. 그 표지에는 단순한 미감을 넘어 작가의 영혼과 이야기의 결이 은은하게 스며 있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어떤 깊고도 선명한 세계 앞에 서 있다는 예감이 들었고, 나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아, 나는 지금 정말 대단한 책을 읽고 있구나.’ 읽는 내내 이 생각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 모른다.

『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는 말 그대로 번역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 작가를 향한 깊은 사랑의 고백이다.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을 10년에 걸쳐 완역한 김정아 번역가는 이 책에서 번역 과정뿐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낸 자신의 삶까지 솔직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일기이자 해설서이며, 문학 에세이이면서 한 인간의 치열한 성장 이야기처럼 읽힌다.

평소에도 번역이라는 작업은 늘 경이롭게 느껴졌다.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정서, 그리고 저자의 사유까지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김정아 번역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문장과 씨름했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간을 쏟고, 몸을 혹사시키며, 단 하나의 문장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 새벽을 통째로 바쳐 번역하고, 육체적 고통과 삶의 무게를 견디며 문장을 다듬는 사람. 나는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만, 그 문장 뒤에는 누군가의 시간과 고민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 쉽게 이 문장들을 읽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힘은 번역가의 시선으로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인물들이 조금씩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들에서도 의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것이 번역가의 해석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작품과 씨름해온 사람의 시선은 어쩌면 작가의 숨결에 조금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 시선을 따라 작품을 다시 읽을 때, 소설의 밀도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 나면 『죄와 벌』은 다시 읽고 싶어지고, 『백치』는 이제야 궁금해지고, 『악령』은 두려움과 함께 손에 들고 싶어지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언젠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진다.

책을 덮으며, 이 독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머지않아 다시 ‘도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당연히 『죄와 벌』에서 시작해 『백치』를 만나고, 『악령』을 거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그 영혼의 흐름을 따라서 말이다. 💚🤍❤️🖤

#도스토옙스키번역일기 #김정아번역가 #에세이 #도스토옙스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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