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다리를 건넌 강아지
신도 후유키 지음, 장하나 옮김 / 문예춘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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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어서인지, 반려견과의 만남과 이별을 다룬 이야기는 아무래도 조금 더 마음을 열고 읽게 된다. 책 속 미나미노와 파스텔의 이야기가 그저 누군가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언젠가 내가 마주하게 될 시간이기도 해서다.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기다리고 있는 존재와 하루를 나누는 일. 그리고 그 평범한 시간이 언젠가는 끝날 수 있다는 사실까지. 그래서인지 이 책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마음이 철렁했고, 눈물을 참아야 했다.

그런 마음으로 따라간 미나미노와 파스텔의 시간은, 한 사람의 일상이 어떻게 한 존재를 중심으로 조금씩 달라져 가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우연히 맡게 된 강아지였지만, 함께 밥을 먹고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이 쌓이면서 파스텔은 어느새 미나미노의 하루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내고, 기다리고, 돌보는 일이 특별한 결심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어가는 것이다.

함께 살아가는 동안에는 그 변화가 선명하게 보이지 않을 때가 많다. 매일 반복되는 밥시간과 산책, 문을 열었을 때 반겨주는 모습, 소파 한쪽에 웅크리고 잠든 모습. 너무 익숙해서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순간들이 어느 날 문득 가장 소중한 기억이 되어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는 파스텔이 떠난 뒤, 미나미노에게 이어지는 시간이 더 깊이 마음에 스며들었다. 사랑하는 존재가 떠난 순간보다 그다음 날부터 이어지는 삶이 더 길기 때문이다. 함께 걷던 길도 그대로이고, 집도 그대로이고, 하루의 시간도 똑같이 흘러가는데 그 안에 있어야 할 존재만 사라져 있다. 익숙했던 공간이 낯설어지는 것은 어쩌면 이런 이유일 것이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언젠가 혼자 남겨질 날까지 감당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람보다 짧은 생을 살아가는 존재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마음을 내어준다.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오늘의 밥을 챙기고, 산책을 나가고,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함께하는 하루하루가 더욱 소중하고 애틋하다.

파스텔이 떠난 뒤 미나미노에게 남은 것은 빈자리만은 아니다. 함께 보낸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그의 삶 어딘가에 남아 계속 그를 움직인다. 다시 웃을 수 있게 되는 것 역시 떠난 존재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함께했던 시간을 품고 살아가는 또 다른 방식일 것이다.

읽는 동안에는 참 많이 울었는데, 책을 덮고 나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따뜻했다. 이별이 너무 슬퍼서 사랑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헤어지게 되더라도 함께했던 시간은 충분히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 곁에서 밥을 먹고 잠들고 나를 바라보는 존재를 오늘은 조금 더 오래 바라보고 싶어진다. 별것 아닌 듯 흘려보내는 하루가 사실은 다시 돌아오지 않을 하루라는 것을, 우리는 대개 지나간 뒤에야 알게 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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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다리를건넌강아지 #신도후유키 #문예춘추사

📚 출판사 @moonchusa 로부터 받은 도서를 정성껏 읽은 후, 자유롭게 작성한 저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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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쓸모없다 - 사노 요코 에세이
사노 요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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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는 쓸모없다. 그래서 좋다.

사노 요코는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자마자, 평소 갖고 싶었던 재규어를 구입한다. 이 고급 외제차가 어울리지 않는다는 주변의 말에 그녀는 “억울하면 너도 사면 되잖아. 빨리 죽으면 살 수 있다고!”라며 무심한 듯 시크하게 답한다. 그녀의 글에는 이런 까칠함과 쿨함이 곳곳에 배어 있다. 『친구는 쓸모없다』 역시 냉소적이고 까칠하지만, 사람을 끝내 미워하지 못하는 저자의 다정함이 무뚝뚝한 말투 뒤에 숨어 있다.

특히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를 떠올리는 방식이 사노 요코답다. 괴롭힘을 당한 일을 원망하기보다 그 아이가 그저 에너지가 넘쳤던 것 같다고 말하고, 전쟁이라는 힘든 시대를 함께 지나왔다는 사실까지 생각한다. 나라면 상처로 남았을 일을 이렇게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도 있구나 싶었다. 정작 그 아이의 얼굴은 기억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좋아한다고 말하는 마음이라니. 생각해 보면 좋아하는 면만으로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까지도 그 사람의 한 부분으로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무뚝뚝하고 냉소적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사람을 쉽게 미워하지 않는 넓은 마음이 있다. 내가 사노 요코의 글을 좋아했던 이유도 바로 이런 데 있을 것이다.

사노 요코와 다니카와 슌타로의 대화도 기가 막히게 재미있다. 두 사람은 친구에 대해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한쪽은 친구가 꼭 필요하다고 하고, 다른 한쪽은 친구가 많지 않아도 별 불편 없이 살아왔다고 한다. 서로의 말을 받아치다가도 어느 순간 엉뚱한 곳으로 이야기가 샌다. 그런데 그 빗나간 대화가 오히려 좋았다. 친구와의 대화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 않은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다가 별것 아닌 이야기에 한참 웃고, 어제 먹은 음식이나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건너뛰기도 한다. 목적 없이 이어지는 그 시간이야말로 친구와 나누는 시간의 본모습인지도 모르겠다.

책 제목이 『친구는 쓸모없다』인데도 나는 처음부터 ‘쓸모’라는 말을 긍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이 제목이 말하는 묘한 역설을 알 것 같았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했던 일들을 떠올려보면 정말 쓸모없는 것투성이였다. 별것 아닌 일에 웃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바로 그 시간들이 내 기억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당시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생각했던 이야기와 놀이, 친구들과 나눈 취향과 농담이 조금씩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연락이 닿지 않는 친구들도 많지만 그들이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함께 보낸 시간은 기억 속 어딘가에 남아 지금의 나를 이루는 한 부분이 되어 있을 테니 말이다. 꼭 가까이에서 자주 만나야만 친구인 것도 아닐 것이다. 곁에서 함께 웃고 떠드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멀리 떨어져 있어도 문득 떠올릴 때마다 은은하게 빛나는 친구도 있다. 서로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런 존재로 남아 있다는 것 역시 우정의 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에 정말 쓸모없는 것이 있을까 싶다. 당장 성과로 이어지지 않고 어디에 쓰일지 알 수 없었던 시간들이 오히려 삶을 풍성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그때의 쓸모없는 시간들이 사실은 하나도 쓸모없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다면 내가 지나온 시간도, 그 시간 속의 사람들도 함부로 쓸모없다고 부를 수 없을 것 같다.

친구는 쓸모없다. 그래서 좋다.

아무런 목적 없이 함께 낭비할 수 있었던 시간이 있었기에 우리의 지난날이 이토록 풍성해졌으니 말이다. 어쩌면 삶에서 정말 필요한 것은 쓸모 있는 관계가 아니라, 쓸모없는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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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쓸모없다 #사노요코 #rhk북클럽 #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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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영원한 고전, 철저한 고증,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영화 <오디세이>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호메로스 지음, 김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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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향을 꿈꾸는 인간에 대하여, 『오뒷세이아』를 읽고

영미 문학을 좋아하다 보면 『오뒷세이아』는 피할 수 없이 자주 만나게 된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오디세이아』, 허먼 멜빌의 『모비 딕』처럼 수많은 작가들이『오뒷세이아』를 모티프로 삼거나 그 구조와 주제를 새롭게 해석해 자신의 작품에 불러왔다. 그래서 늘 이 책을 읽어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방대한 분량과 익숙하지 않은 문체의 흐름 때문에 완독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의 인기에 힘입어 서점에 『오뒷세이아』와 관련된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보니 나도 도전할 마음이 다시생겼다. 많은 판본 중에 어떤 책을 선택할까 한참을 망설이다,『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독자로서 김헌 교수가 번역했다는 점 하나를 믿고 을유문화사에서 출간된 『오뒷세이아』의 책장을 넘겼다. 그런데 이 번역은 단순히 영화 개봉에 맞춰 나온 책이 아니고 2004년부터 시작해 무려 22년에 걸쳐 완성한 작업이라고 한다. 영화 개봉에 맞춰 급하게 번역한 것은 아닐까 했던 나의 걱정을 씻은 듯이 없애주었다. 더불어 오랜 시간 공들여 완성한 이 번역본을 영화 덕분에 더 많은 사람들이 만나게 된 것도 반가운 일이다.

김헌 교수는 원문의 어순과 행수를 가능한 한 살리는 방식을 택했다. 그래서 한국어로 읽으면 다소 낯선 도치와 표현이 곳곳에 등장한다. 사실 나는 원문의 구조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과 리듬에 맞게 과감하게 풀어낸 번역을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에는 이 방식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읽다 보니 낯섦이 조금씩 익숙함으로 바뀌었다. 문장이 매끈하게 흘러가기보다 한 행 한 행 걸음을 옮기는 듯했고, 그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눈앞에 장면이 하나씩 떠올랐다. 아마 이것이 고대의 구술 서사시가 가진 생생함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독특했던 것은 역시 ‘횡격막’이다. 지혜, 분별력, 정신, 헤아림 등으로 옮길 수도 있는 말을 굳이 해부학적 기관인 ‘횡격막’으로 번역했다. 처음에는 왜 이해하기 쉬운 의역을 포기하고 직역을 해서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었을까 의아했다. 그런데 ‘총명한 횡격막’, ‘강력한 횡격막’, ‘잘 참는 횡격막’ 등의 표현을 만나다 보니 오히려 고대인이 인간의 감정과 생각을 어떻게 이해했는지가 선명하게 느껴져 읽기 편한 현대어로 바꾸었다면 놓쳤을 감각을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덕분에 나의 횡격막도 책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들썩였으니 말이다.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은 무려 3천 년 전이다. 오래전 한 영웅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지금도 읽히고, 수많은 작가들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낼 영감을 주고, 영화로까지 다시 태어나는 이유는 왜일까. 아마도 우리 역시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사람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곳을 지나고, 원했던 길과 다른 길로 들어서기도 한다. 때로는 너무 멀리 돌아와 내가 어디에서 출발했는지조차 잊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 남아 있다. 그것은 어린 시절의 집일 수도 있고, 사랑했던 사람일 수도 있고, 한때의 나 자신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어떤 삶의 모습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오뒷세이아』의 귀향은 단순히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다. 오뒷세우스가 찾아가는 이타케는 그가 살아온 시간과 사람들, 그리고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을 것이다. 결국 돌아간다는 것은 처음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긴 시간을 지나고서야 비로소 내가 무엇을 향해 살아왔는지를 알아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수천 년 전의 이야기가 여전히 우리에게 말을 거는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시대가 달라지고 삶의 모습이 달라져도, 우리는 여전히 무언가를 잃고, 헤매고, 다시 찾으며 살아간다.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이타케가 있고, 그곳을 향해 각자의 항해를 이어간다. 『오뒷세이아』를 읽으며 내가 생각한 것은 거창한 영웅의 모험이 아니라 결국 그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긴 시간을 돌아서라도 끝내 찾아가고 싶은 곳은 어디인가.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오뒷세이아 #김헌교수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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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먼 산책 - 국경을 넘은 강아지와의 삶, 그리고 인연들
최수향 지음 / 흐름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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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먼 산책』, 최수향

유네스코에서 활동하며 세계 곳곳을 누비던 저자는 2008년 짐바브웨에서 강아지 디디를 만난다. 짐바브웨에서 시작된 이 인연은 파리와 독일을 거쳐 서울에 닿고, 다시 디디의 고향 짐바브웨로 돌아가 마침표를 찍는다.

저자가 디디와 함께한 16년 6개월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숫자로 헤아릴 수 있는 세월이 아닐 것이다. 한 생명과 매일을 나누며 살아온 시간, 그 안에 쌓인 수많은 장면과 감정을 글로 다시 꺼내놓는 일이 저자에게 얼마나 기쁘고 또 아픈 일이었을까. 책을 읽는 동안 행간에 담긴 추억과 애틋한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 쏟아지는 눈물을 참기 위해 여러 번 심호흡을 해야 했다.

반려견과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국경을 네 번이나 넘으며 디디와 삶을 이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알 것이다. 나라를 옮길 때마다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할 것도 디디였고, 여행이나 외출, 약속 하나를 정하는 일에도 자연스럽게 디디가 중심이 되었을 것이다. 함께 산다는 것은 결국 내 삶의 일부를 다른 생명에게 내어주는 일이니까. 매일 산책을 해야 하고, 마음대로 오래 집을 비울 수도 없으며, 때로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생긴다.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하고 유난을 떤다며 비웃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반려견과 살면서 그런 순간을 숱하게 경험했다. 그럼에도 깊고 까만 눈동자와 촉촉한 코를 바라보며 얻게 되는 위안은 사랑하는 존재를 위해 무엇이든 포기할 용기를 준다.

저자는 디디와 이별한 후 그 유골을 디디의 고향 짐바브웨로 가져가 묻어준다. 나라면 조금이라도 가까이 반려견의 흔적을 곁에 두고 싶을 텐데, 저자는 디디가 태어난 곳으로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오래전 디디와 함께했던 인연을 다시 만나는 장면은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디디의 삶이 끝난 자리에서, 디디와 함께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는 해피엔딩.

저자는 디디를 고향에 묻어준 뒤 아기 코끼리를 돌보는 단체를 후원하기로 결심한다. 『반려인의 하루』라는 책에서 정우열 작가는 "자신의 개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해졌다. 이건 어딘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고 적었다. 정말로 이렇게 오랜 시간 사랑한 후에 결국 불행해졌다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사랑의 끝에서 불행해지지 않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오랜 시간 고민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한 존재에게 주었던 사랑을 다른 존재에게 다시 건네는 것. 그것이야말로 떠나간 존재에 대한 사랑을 슬픔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또 다른 생명을 향해 흘려보내는 방법일지도 모른다.

디디는 흙이 되어 땅으로 돌아갔지만, 디디와 저자의 산책은 끝나지 않는다. 함께 걸었던 시간은 저자의 기억에 남고, 디디에게 주었던 사랑은 또 다른 생명을 향해 간다. 아주 먼 산책이란 한 생명과 함께 걸었던 시간이 끝난 뒤에도 그 사랑을 품고 다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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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먼산책
#최수향
#흐름출판
#반려견에세이
#추천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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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썸머 에디션)
이디스 워튼 지음, 민지현 옮김 / 머묾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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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부신 햇빛과 짙어진 초록, 아직 삶의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믿는 계절, 여름. 그러나 이디스 워튼의 『여름』에서 여름은 마냥 찬란한 계절만은 아니다. 그것은 한 소녀가 처음으로 욕망을 마주하고, 자신이 꿈꾸던 세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깨닫게 되는 시간이다.

열여덟 살의 채리티 로열은 작은 마을 노스도머에서 살아간다. 어린 시절 ‘산’에서 내려와 변호사 로열의 집에 맡겨진 그녀는, 보호받는 존재이면서도 완전히 가족이라 할 수 없는 애매한 위치에 놓여 있다. 자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앞으로 어디로 갈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는 삶. 채리티가 답답해하는 것은 작은 마을의 단조로움만이 아니라, 그녀가 넘볼 수 없는 이미 정해진 계층과 성별의 경계이기도 하다.

그런 채리티 앞에 도시에서 온 젊은 건축가 루시어스 하니가 나타난다. 하니는 단순히 사랑의 대상만은 아니다. 그는 채리티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세계, 세련됨과 자유와 가능성의 세계를 비추는 창처럼 다가온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에는 그가 열어 보인 다른 삶에 대한 동경이 겹쳐 있다. 그래서 채리티의 사랑은 한 남자를 향한 감정인 동시에, 지금의 자신에게서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워튼은 채리티를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피해자로만 묘사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자존심이 있고, 때로는 무례할 만큼 날카로운 마음도 있으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성급하게 판단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채리티는 더 현실적인 인물로 다가온다.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이지만, 정작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사회적 자원은 거의 없는 사람. 욕망할 수는 있어도 그것을 삶으로 만들 수는 없는 처지가 이 소설의 가장 아픈 지점이다.

여름은 끝난다. 그러나 어떤 여름은 끝난 뒤에도 한 사람 안에 지워지지 않는 흔적으로 남는다. 『여름』은 첫사랑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한 번 다른 세계를 본 사람이 이전의 세계에 그대로 머물 수 없게 되는 이야기다. 찬란했던 계절이 남긴 것은 행복한 기억만이 아니라, 삶을 똑바로 바라보게 된 뒤의 아픔일지도 모른다.

채리티는 꿈꾸었던 삶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다른 세계를 바라본 사람은 이전과 같은 자리로 돌아갈 수 없다. 그 여름은 그녀에게 사랑의 기억으로만 남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어떤 삶을 원했고 어떤 현실을 감당해야 하는지 처음 깨닫게 한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지금처럼 여름이 한창인 때 읽으면 이 작품이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뜨거운 햇빛 아래 채리티가 마주했던 욕망과 사랑, 그리고 그 여름을 지나온 그녀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지나온 여름과 앞으로 지나게 될 여름도 조금은 다르게 바라보게 될 것이다.


#여름_이디스워튼 #머묾 #여름에읽기좋은책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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