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인의 하루
김영글.안희제.정우열 지음 / 을유문화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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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 골목을 지나가게 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날의 장면은 아직도 선명하다. 개고기를 파는 가게 한쪽 철창 안에 아주 작은 강아지 한 마리와, 그 아이를 품에 안고 웅크리고 있던 어미개. 나는 한참 동안 그들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어린 강아지도 잡아먹는 걸까. 어미개가 끌려가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저 아이는 보게 될까. 어떤 결말이든 예정된 운명이 너무 가혹하게 느껴졌고, 결국 나는 주인에게 값을 치르고 두 생명을 데리고 나왔다. 콩닥거리는 몸을 품에 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간이 다른 생명에게 얼마나 쉽게 폭력을 행사하는지, 그리고 그 폭력을 당연하게 여기는 무심함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잠시 보호하다 좋은 가족을 찾아주겠다는 계획은 어느새 13년이 되었다. 그 사이 어미개는 무지개다리를 건넜고, 철창 속에서 떨고 있던 작은 강아지는 열세 살 노견이 되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 다른 생명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다른 존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반려인의 하루』가 유독 반갑게 다가온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김영글, 안희제, 정우열 세 작가가 고양이, 식물, 그리고 개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을 담은 에세이다. 서로 다른 반려 대상을 이야기하지만, 책이 도착하는 곳은 같다. 만남과 공존, 그리고 이별. 나는 강아지와만 살아봤음에도 세 사람의 이야기에 모두 공감할 수 있었다. 고양이 이야기에서는 적당한 거리 안에서 피어나는 신뢰와 애정을 보았고, 식물 이야기에서는 기다림 속에서 자라는 사랑을 발견했으며, 반려견 이야기에서는 슬픔이 더 큰 사랑이 되어 가는 힘을 느꼈다.

그럼에도 개를 키우는 입장이다 보니 정우열 작가의 「저녁의 강아지」를 더 오래, 더 깊이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자신의 개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해졌다. 이건 어딘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대목을 읽으며 사랑 끝에 남는 것이 결국 불행이라면 너무나 슬픈 일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불행한 걸까. 앞으로도 불행할 일만 남은 걸까. 문득 우울해졌다.

하지만 책 말미에 "우연한 혹은 어떤 필연적인 계기로 반려동물을 만나게 되고, 그들과 살면서 사랑과 그 밖의 많은 것들에 대해 새롭게 배우고, 함께 행복을 누리고, 결국 이별을 하게 되고, 그런 다음 마침내 혼자 남겨진 우리는 적어도 이전보다 조금은 나은 존재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문장이 나온다. 이어 세월호 참사 희생자 가족들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가족들과 마음을 나누는 이야기가 소개된다.

이 부분을 읽으며 나를 떠난 존재들이 남겨준 사랑의 씨앗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한 생명에 대한 사랑이 또 다른 생명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거듭 피어날 때, 나의 사랑은 세상 어느 곳에서라도 작게 꽃을 피우며 또 다른 형태로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다행스럽게도 우리의 결말은 결코 불행이 아닐 것이다.『반려인의 하루』는 바로 그 사실을 이야기하는 책이다. 만남과 이별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을 슬픔만으로 바라보지 않고, 그 안에 담긴 아름다움까지 함께 바라볼 수 있도록 다정한 시선을 건네는 책.

"자신의 개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결국 불행해졌다. 이건 어딘가 이치에 맞지 않는 이야기다."

그렇다.

그래서 결국 행복했다는 결말을 위해, 나는 오늘도 온 마음을 다해 나의 작은 친구를 사랑할 것이다.

사랑하기에, 우리는 오늘도 행복하다.



#을유문화사 #을유문화사_서평단 #반려인의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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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한다는 착각 - 열심히 말하는데, 왜 마음은 멀어질까?
마이클 니콜스.마사 스트라우스 지음, 윤삼호 옮김 / 교양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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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니콜스의 『대화한다는 착각』을 읽는 동안, 문득 최근에 마지막으로 ‘진정한 대화’를 나눈 때가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았다. 놀랍게도 그런 기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는 늘 누군가와 함께 있지만 정작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듯하다. 얼굴을 마주하고 있어도 머릿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거나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게 일상이다.

『대화한다는 착각』은 우리가 열심히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마음은 점점 멀어지는 이유, 더 나아가 진정한 대화를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핵심은 ‘잘 듣기’, 바로 경청에서 시작된다. 왜 듣기가 중요한지에서 시작해 무엇이 우리의 듣기를 방해하고 오해를 키우는지, 더 나은 경청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배워야 하는지, 그리고 다양한 관계 속에서 그 경청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를 차근차근 보여준다.

생각해 보면 대화란 혼자서는 완성될 수 없는 일이다. 대화는 언제나 상대가 있는 행위이고, 그 안에는 반드시 상호작용이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어렵게 마음을 꺼내 보였는데 상대가 진심으로 귀담아듣지 않거나 공감하지 않거나 적절한 반응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 대화는 위로가 되기보다 상처로 남기도 한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상처받는 우리 역시 과연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있었을까.

어쩌면 이것은 어느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종종 상대가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하면서도, 정작 나 또한 누군가의 말을 온전히 듣고 있었는지는 돌아보지 못한다. 책은 타인에게 견디지 못하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안의 불안과 상처를 충분히 받아들이지 못할 때 우리는 상대의 감정 앞에서도 쉽게 조급해지고, 듣기보다 판단하거나 반박하려 한다. 결국 경청의 문제는 단순히 대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얼마나 이해하고 존중하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사람이 늘 들어주기만 하고 다른 한 사람의 이야기만 중심이 되는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자신의 마음은 매번 꺼내 보이는데 상대의 마음은 그 안에 머물지 못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소통이라기보다 일방적인 전달에 가깝다. 대화가 오래 이어지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번갈아 서로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나와 타인의 감정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분노와 원망 뒤에 숨어 있는 상처를 들을 수 있고, 상대의 말 속에 담긴 진심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화한다는 착각』은 진정한 소통의 핵심이 얼마나 잘 말하느냐보다 얼마나 깊이 듣느냐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동시에 경청 역시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느끼게 했다. 듣고자 하는 마음과 들려주고자 하는 신뢰가 함께 있을 때 비로소 대화는 살아난다.

책을 덮고 나니 결국 진짜 대화란 특별한 기술 이전에 태도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말할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이 닿는 자리까지 기꺼이 귀를 내어주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타인을 이해하는 일인 동시에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다. 내 감정에 귀를 기울일 수 있을 때 다른 사람의 감정도 더 깊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그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대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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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화가 나도 바보와는 싸우지 마라
다무라 고타로 지음, 송수진 옮김 / 유노북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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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의 언행으로 인해 마음의 평온이 깨지고, 그 불쾌한 감정을 곱씹느라 귀한 시간을 허비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세상을 살아가며 마주치는 수많은 ‘바보’들은 때로는 무례한 태도로, 때로는 불합리한 시비로 우리의 일상을 어지럽힌다. 다무라 고타로의 『아무리 화가 나도 바보와는 싸우지 마라』는 타인에게 휘둘리며 분노하느라 정작 내 인생을 낭비하고 있던 나에게, 이제는 그 소모적인 싸움을 멈추어야 할 시간임을 일깨워주었다.

이 책은 단순히 감정을 다스리는 법을 넘어, ‘내 삶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세상에 득실대는 바보들과 정면으로 맞붙어 승리를 쟁취하려 애쓰는 것은, 결국 소모된 자신만을 남기는 어리석은 소모전일 뿐이다. 진정한 승리란 그들과의 싸움 자체를 회피하고, 그들에게 쏟을 에너지를 온전히 나의 삶을 가꾸는 데 집중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저자가 정계와 재계, 학계를 거치며 수많은 인간 군상을 직접 겪으며 체득한 조언들은, 마치 난세의 지혜가 담긴 병법서처럼 실전적이고 치밀한 전략을 제시한다.

책을 읽으며 가장 뼈아프게 와닿았던 것은 타인과의 비교가 나를 내 인생의 조연, 혹은 엑스트라로 전락시키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동안 누군가의 부당함에 화를 내고 반응하느라 정작 내 마음의 소리는 방치해 두었다. 이제는 타인의 시선이나 무례한 태도에 흔들리기보다, ‘그럴 수도 있지’라는 유연한 마음가짐과 스스로의 감정을 조율하는 마인드 컨트롤을 통해 나 자신을 지켜내야겠다고 다짐한다.

사실 누군가에게 주목하느라 나의 삶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시간들은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다. 이제는 타인에게 휘둘리던 시선을 거두어 나에게 쏟아붓기로 했다.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늦은 때란 없다. 그러나 나를 들여다보는 일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말처럼, 지금부터라도 내 삶의 중심을 온전히 나에게 두는 일에 치열해지려 한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며 매일 조금씩 단단해지는 나무가 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바보들의 소음으로부터 나를 보호하는 가장 완벽한 전략일 것이다.

결국 『아무리 화가 나도 바보와는 싸우지 마라』는 바보들을 상대하는 기술서가 아니라, 나를 더 깊이 들여다보고 사랑하기 위한 인생 공부였다. 내 삶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서 내가 원하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 과정에 집중하다 보면 나를 괴롭히던 존재들은 자연스레 시야에서 사라질 것이다. 삶의 새로운 챕터를 앞둔 지금, 타인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던 나의 빛을 찾아 나서는 길에 이 책은 더없이 든든한 이정표가 되어 주었다. 더는 의미 없는 사람들에게 내 소중한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오늘 나의 아침을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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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
김정아 지음 / 샘터사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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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처음 받아들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을 붙잡은 것은 표지였다. 단정하면서도 기품이 느껴지는 디자인은 아직 펼치지 않은 문장들의 분위기를 미리 전해주는 듯했다. 그 표지에는 단순한 미감을 넘어 작가의 영혼과 이야기의 결이 은은하게 스며 있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책장을 펼치기도 전에 이미 어떤 깊고도 선명한 세계 앞에 서 있다는 예감이 들었고, 나의 기대는 틀리지 않았다. ‘아, 나는 지금 정말 대단한 책을 읽고 있구나.’ 읽는 내내 이 생각을 얼마나 자주 했는지 모른다.

『도스토옙스키 번역 일기』는 말 그대로 번역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한 작가를 향한 깊은 사랑의 고백이다. 도스토옙스키의 4대 장편을 10년에 걸쳐 완역한 김정아 번역가는 이 책에서 번역 과정뿐 아니라, 그 시간을 살아낸 자신의 삶까지 솔직하게 풀어낸다. 그래서 이 책은 일기이자 해설서이며, 문학 에세이이면서 한 인간의 치열한 성장 이야기처럼 읽힌다.

평소에도 번역이라는 작업은 늘 경이롭게 느껴졌다. 단순히 언어를 바꾸는 일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문화와 정서, 그리고 저자의 사유까지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그 생각은 더욱 분명해졌다. 김정아 번역가가 얼마나 치열하게 문장과 씨름했는지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시간을 쏟고, 몸을 혹사시키며, 단 하나의 문장을 위해 고민을 거듭하는 과정이 놀라울 정도로 생생하다. 새벽을 통째로 바쳐 번역하고, 육체적 고통과 삶의 무게를 견디며 문장을 다듬는 사람. 나는 쉽게 페이지를 넘기지만, 그 문장 뒤에는 누군가의 시간과 고민이 켜켜이 쌓여 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 쉽게 이 문장들을 읽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이 책의 또 다른 힘은 번역가의 시선으로 도스토옙스키를 다시 보게 만든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어렵게만 느껴졌던 인물들이 조금씩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고, 무심히 지나쳤던 장면들에서도 의미가 보이기 시작한다. 물론 그것이 번역가의 해석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작품과 씨름해온 사람의 시선은 어쩌면 작가의 숨결에 조금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그 시선을 따라 작품을 다시 읽을 때, 소설의 밀도는 분명 달라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을 덮고 나면 『죄와 벌』은 다시 읽고 싶어지고, 『백치』는 이제야 궁금해지고, 『악령』은 두려움과 함께 손에 들고 싶어지고,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언젠가 반드시 넘어야 할 산처럼 느껴진다.

책을 덮으며, 이 독서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머지않아 다시 ‘도 선생님’을 만나게 될 것 같다. 당연히 『죄와 벌』에서 시작해 『백치』를 만나고, 『악령』을 거쳐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까지 그 영혼의 흐름을 따라서 말이다. 💚🤍❤️🖤

#도스토옙스키번역일기 #김정아번역가 #에세이 #도스토옙스키 #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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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인생을 바꾸는 게 아니라 행동이 인생을 바꾼다 - 과거에 갇힌 삶을 다시 흐르게 하는 12가지 마음 훈련법
카레나 킬코인 지음, 문가람 옮김 / 서스테인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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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동하는 순간, 인생이 달라진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기억과 성장 과정에서 겪은 수많은 경험들을 통해 자신에 대한 하나의 서사를 만들어간다. 사랑받았던 순간도, 상처받고 외면당했던 기억도 차곡차곡 쌓이며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빚어낸다. 때로는 그 서사가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스스로 만들어낸, 혹은 타인의 시선과 평가 속에서 덧씌워진 ‘거짓 서사’의 감옥에 갇혀 고통받곤 한다. 카레나 킬코인의 『생각이 인생을 바꾸는 게 아니라 행동이 인생을 바꾼다』는 그 견고한 감옥의 벽을 허물고, 나라는 존재를 다시금 온전하게 마주하게 하는 매우 솔직한 안내서이다. 특히 이 책은 ‘생각의 교정’이 아닌 ‘행동의 전환’에 초점을 맞추며, 변화의 출발점을 완전히 다른 곳에 둔다.

책에서 그는 자신의 아픈 유년 시절을 굉장히 솔직하게 고백하며, 태어나기 전부터 환영받지 못한 존재라는 감각이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털어놓는다. 거기서 비롯된 무가치함과 수치심이라는 서사를 평생의 업보처럼 짊어지고 살아온 한 인간의 고백은 아마도 일찍이 누군가로부터 거부당하거나 외면받으며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존재인가'라고 자문했던 우리 각자의 먹먹했던 유년, 그리고 타인의 시선 속에서 웅크려야 했던 그 이름 없는 결핍과 수치심의 기억들과 맞닿아 있다. 이 대목은 독자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은 ‘오래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돌아보게 만든다.

저자의 말대로 트라우마에 사로잡히면 삶은 마치 사진의 일부분만 잘라낸 것처럼 협소해진다. 우리는 왜곡된 생각의 덫에 걸려 스스로를 깎아내리고, 그 부정적인 목소리를 사실이라 믿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사건은 결코 나의 잘못이 아니며, 우리는 그 서사가 심어놓은 수치심의 감옥에서 빠져나올 권리가 있다고 위로해준다. 그리고 그 ‘빠져나옴’은 단순한 깨달음이 아니라, 반복적인 행동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이 다른 자기계발서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행동’이라는 해법에 있다. 저자는 수치심에서 벗어나 내면의 아이를 돌보고, 상처를 준 이를 용서하며, 상실을 애도하는 구체적인 실천을 강조한다. 명상이나 가벼운 운동과 같은 일상의 루틴들은 단순히 몸을 움직이는 행위를 넘어, 과거의 고통을 털어내고 새로운 삶의 서사를 써 내려가기 위한 물리적인 의식과도 같다. 이는 추상적인 위로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가 실제로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변화의 경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생각만으로는 결코 낡은 서사의 껍질을 깰 수 없다. 내면을 돌보는 행위, 그리고 나 자신을 용서하는 구체적인 행동만이 결국 삶의 방향을 바꾼다. 고통 너머에는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더 큰 목적이 숨어 있다. 스스로를 어떻게 보느냐가 삶을 결정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저자는 자신의 아픔을 통과해온 단단한 문장들로 증명해 냈다. 자신의 내면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그곳에 갇힌 아이를 돌보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은 묵묵히 곁을 지키는 다정한 동료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 동행은 ‘생각을 바꾸라’는 조언이 아니라, ‘지금 당장 작게라도 행동하라’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삶의 태도로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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