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행 (모리미 도미히코) - ‘세계는 언제나 밤이었어‘

야행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7년 6월

추리소설로 생각하고 읽기 시작했는데, 바로 어라? 했다.  이건 환타지 소설이었던 것이다. 

10년 전 같은 영어학원을 다니며 친했던 다섯 명의 사람들이 교토에서 열리는 불놀이 축제를 보러 다같이 놀러가자며 오랜만에 재회를 한다.  10년 전 이 축제를 보러 갔을 때 함께 했다가 그대로 실종된 한 명, 하세가와를 빼고.  다들 그 사건을 입에 올리기 어려운 분위기에서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겪은 괴담을 이야기하기 시작하고, 이렇게 다섯 편의 괴담이 이 소설을 이룬다.

가출한 아내를 찾아간 낯선 집에서 만난 아내는 자신을 몰라보고 오히려 자신을 구해달라고 하고,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할머니는 사상이 보인다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기차 여행 도중 불타는 집 앞에 서 있던 여자를 찾아 나선 동행, 기차 안에서 만난 묘한 분위기의 여고생등, 다섯 명의 사람이 털어놓은 이야기들의 중심에는 기시다라는 한 동판화가의 '야행' 시리즈라는 작품이 있다.  그의 작품마다 등장하는 얼굴없는 여자가 밤의 세계로 이끄는 환상같은 이야기들이다.  마침내 현재의 여행에서 일행을 잃고 혼자 헤매던 끝에 기시다와 하세가와를 만나는 나의 이야기에서, 얘기로만 전해듣던 '야행'의 거울과 같은 작품 '서광'의 존재가 드러나고, 두 세계가 교차한다.

딱이 어떤 실체가 있는 건 아니고, 그저 분위기로만 묘사된 이야기.  밤의 세계로 인도된 긴 여행을 떠났다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다.  환상문학의 특징이 고스란히 그리고 오싹하면서도 아름답고 처연하면서도 나른하게 펼쳐지는 소설이다.  환상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논리적으로 정연한 설명이 있지 않으면 불만스러운, 개인적 취향 때문에 그렇지, 이런 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꽤 만족스러운 작품일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