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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성에 살았다 ㅣ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셜리 잭슨 지음, 성문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월
평점 :
고딕 호러의 대가라는 셜리 잭슨의 유작이다. 나로서는 처음 읽어보는 그녀의 작품이고.
마을로부터 고립된 성에 사는 블랙우드가의 두 자매, 콘스턴스와 메리캣, 그리고 치매를 앓고 있는 그녀들의 삼촌은 6년 전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후부터 그들만의 은둔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절대 성 밖으로 나오지 않고 그저 치매와 노환을 앓고 있는 삼촌을 돌보며 동생 메리켓에게 정성스런 요리를 해주는 낙으로만 사는 언니 콘스턴스. 그리고 언니와 삼촌을 끔찍히 아끼며, 자신의 보물들을 성 여기저기에 묻고 고양이를 벗삼아 성안의 생활을 만끽하는 동생 메리캣. 그렇게, 일주일에 한번씩 메리캣이 마을로 생필품을 사러 가는 것 이외엔 마을사람들과의 왕래도 없이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날, 마을 사람들 중 유일하게 이들과 교류를 트려는 헬렌의 방문이 있게 되고, 이제 그만 고립된 생활에서 벗어나 성 밖으로 나와 마을사람들과 어울리라는 헬렌의 강요에 메리켓은 불안을 느낀다. 거기에, 어느날 갑자기 나타난 사촌 찰스의 등장으로 메리캣은 극도의 불안과 위협을 느끼게 되는데, 찰스는 아빠의 방과 물건들을 차지하게 되고, 노골적으로 메리캣과 삼촌을 싫어하며, 콘스턴스의 환심을 사는데만 열중한다. 언니 콘스턴스도 찰스에게 다소 순종적이고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고, 가지고 있는 재산을 성안에 두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찰스의 반협박적인 권유에도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 이에 메리캣은 이전까지의 생활을 지키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이들만의 불안한 듯 평온한 일상은 갑작스런 외부인의 침입(?)으로 인해 파국으로 향하는데... 그 와중에 지금껏 봉인되다시피 했던 6년 전 가족의 몰살에 숨은 끔찍한 진실이 드러나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개인이 다수를 왕따시킨다는 말처럼, 이들 자매는 마을로부터 고립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 전체를 자신들로부터 격리시키고, 그들만의 성에 숨어 외부로부터의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은 채 살아가려는 강력한 의지가 있다. 이런 자매를 마을사람들은 두려워하고 비난하며 멀리하게 되고, 여기에는 6년 전 일어났던 비극적인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의 진실은 사실 처음부터 알아챌 수 있는 내용이긴 하나, 그러한 비극으로부터 동태된 그네들의 생활을 깨려는 외부인과 그로부터 자신들의 생활을 지키려는 자매 (특히 동생 메리캣)의 자발적인 선택이 대립각을 이루는 구도 안에서, 무심한 듯 드러나는 악의 광기를 여지없이 표출하는 작품이다. 아주 일상적인 모습 속에서 무시무시한 악과 광기가 느껴지는 건 작가의 역량일 것이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스토커'가 떠올랐다. 줄거리는 다르나 이야기를 관통하는 메세지나 분위기 등이 너무나 닮았다. 60년대의 작품이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 대단한 힘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교과서에 빠짐없이 실린다는 작가의 단편 "제비뽑기 (The Lottery)"가 사뭇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