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과 (구병모) - 소멸의 시점에서 발견한 연민과 슬픔, 그리고 생에 대한 감각

파과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알라딘에서 우연히 접하게 된 작품 소개를 보고 강하게 끌려서 읽게 된 작품.  일단 60대 여성 킬러가 주인공이라는 점이 흥미로웠다 (특히나 서양도 아닌 우리나라에서 킬러라니...!). 

'지켜야 할 것'을 만들지 않는 것을 철저한 계명으로 삼고, 타인와의 어떤 관계도 없이 철저히 고립되고 단절된 삶을 의도적으로 살아온 "조각."  자신의 업을 '방역'이라고 부르는 살인청부업자의 세계에서 단연 대모급으로 자리매김한 그녀도 어느새 노쇠와 쇠잔을 겪는 60대가 되고, 전과 같지 않은 몸과 정신의 쇠퇴에 은퇴시점이 다가옴을 느끼게 된다.  그런 그녀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타인에 대한 연민, 슬픔, 애정 등의 감정들을 마주하고 당혹해 한다.  어릴 적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고 거둬준 "류"에 대한 감정 이후에 처음 느껴보는 이러한 변화에 스스로도 놀란다.  그런 그녀에게, 평소부터 깐죽거리며 눈엣가시처럼 굴던 젊은 청부업자 "투우"가 무서우리만큼 지독한 악의를 갖고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를 벼랑으로 내몬다.

의도적인 긴 호흡의 문장도 이상하리만큼 술술 읽혀가며 그 의미가 명료하고 투명하게 다가오는 것이 그녀 문체의 특징인 듯 하다.  새삼 이 작가의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출판사 서평 중에, 맘 속에 와 닿는 문구들로 내 감상을 대신하고 싶다.

- ‘상하고 부서져 사라져가는’ 존재의 운명, 우리 삶의 피할 수 없는 이치에 대한 잔인하고도 아름다운 탐구이다.

- ‘소멸의 한 지점을 향해 부지런히 허물어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연민이자 서글픔이며, 그 속에서도 솟아나 온몸에 각인되는 살아 있음에 대한 생생한 감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