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정말 올까요?
김혜영 지음 / 그늘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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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1 “그래, 죽기 전에 비행기는 한 번 타 봐야지. 제주도 한 번 못 가보고 죽기에는 인생이 너무 하찮은 거지. 다음 생에는 고래처럼 헤엄치는 바닷속 물고기로 태어나고 싶다.”
p.65 "생각보다 아주 오래 기다려야 할지도 몰라. 더 자주 찾아보고 더 오래 바라봐야 하지. 어떤 사람은 운이 좋아 금방 봤다고도 하지만 그건 그 사람 운 좋은 것보다 그날 고래들의 운이지 싶어. 고래가 오는 거지 사람이 찾아간 게 아니니까. 고래는 은밀하고 비밀스럽게 다녀가지. 간밤에 내린 눈처럼 소리 없이 말이야.“
p.173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오지도 않은 내일을 위해 오늫을 너무 희생시키지는 말아요.“
p.281 "승리,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으면 미래에도 행복할 수 없어. 지금 현재에 집중해야 해." 롭샹은 어느 때보다 단호한 어조로 또박또박 못 박듯이 말했다.
전혀 강요나 압박처럼 들리지 않았음에도 천 마디 권유나 충고 보다 더 진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p.299 넘어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탈탈 털고 일어날 힘조차 애초에 꿈도 꾸지 않았다. 강한 사람이 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는다고 단정했다. 그런데 이제는 자벌레의 한 걸음만큼씩 앞으로 나가고 싶어졌다.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새의 깃털이 닿은 만큼의 미세한 온기가 얼어 버렸던 심장을 해빙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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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빛의 바다와 일렁이는 빛의 실루엣이 아름다워 한참을 바라보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의 옆얼굴을 기억한다. 더 표현하지 못한 뒤늦은 후회와 죄책감, 슬픔 등 온갖 감정들이 엉켜 한 사람을 무력하게 만드는 일. 파도와 자갈이 부딪히는 경계에 서서 바다를 오래 바라본다. 바다의 일처럼 묵묵히. 그럼에도 삶은 흘러간다. 삶을 포기하지 말라며 무너지지 않게 곁을 내어주는 이들이 있기에 그저 다시 버티게 된다.

《고래가 정말 올까요?》는 죽음과 상실, 그리고 이어지는 삶의 복잡한 면면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서성이는 우리 모두에게 절제된 위로와 생명의 미묘한 움직임을 배우게 하는 소중한 이야기였다. 무언가를 잃은 이후의 삶이란, 잃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잃은 채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 가는 일이라는 걸 느끼게 한다. 매일의 고단함과 부딪힘 속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흔들림들이 결국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는 것.

떠난 사람의 시간이 멈춘 자리에서 남겨진 사람의 시간은 더 복잡하게 얽히고 길어진다. 열아홉 소녀 ‘승리’는 할머니의 노동과 가난, 몸의 소진, 그리고 끝끝내 쉬지 못하고 모든 행복을 자신의 삶 이후로 미루어 두었던 그 무게를 기억하려 애쓴다. 기쁘고 슬픈 모든 순간 할머니를 떠올리기도 히고, 생전 할머니가 지고 있던 무거웠던 짐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저 승리가 더 넓은 바다로 유유히 유영해나가길 응원하고 바랐다.

회복은 느리고 불완전하며, 때로는 ‘오늘 하루를 무사히 넘기기’ 같은 소소하지만 간절한 노력 속에서 이루어진다. 밥의 맛, 따뜻한 이불, 누군가의 다정한 목소리 같은 작은 감각들이 삶과 다시 연결되는 징후로서 크게 다가온다. 이때 연대는 구원이나 거창한 도움보다 ‘판단하지 않는 머무름’으로 표현된다. 누군가 곁에 있으면서, 혼자 가라앉지 않도록 붙드는 조용한 힘이 회복의 시작이 된다.

그들에게 고래가 어떤 의미일까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고래는 희망과 체념 사이의 존재로, 보이지 않아도 주인공의 삶을 움직인다. 기다림은 절망 속에서 작지만 확실한 움직임이며,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의지다. 이 기다림에서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고, 상실을 딛고 새로운 시간을 쌓아간다.

책 소개를 보니, (고래는 승리에게 할머니와 함께 품었던 약속의 흔적이자, 할머니가 끝내 이루지 못한 삶의 한 장면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것은 죽음 너머로 건네는 승리의 마지막 인사일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다는 말처럼, 고래는 내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지만 이미 승리의 삶을 움직이고 있다. 계속해서 기다리게 만드는 존재를 사랑하게 되는 일, 그 막연하지만 놓을 수 없는 마음이야말로 삶을 계속 이어가게 만드는 이유이지 않을까) 라고 한다.

반짝였던 생의 모든 순간들을 떠올린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름다운 제주에 가고싶어졌다. 나만의 고래를 만날 수 있다면. 🐳🏝️

*위 도서는 그늘(@geuneul_book)로부터 제공받아 작성된 도서 기대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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