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어린 시절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말하는나무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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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yejin_bookang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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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적인 삶을 살기 위한 결심’

 

여기(노비야) 과거의 기억도 자신의 이름도 나이도 잊은 채 바다를 건너온 이들이 정착한 곳이 있다. 이곳은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물품을 구매할 수 있고 버스도 무료이고 교육원 강좌도 무료이며 정착지원비도 나오는 곳이다. 심지어 아파트도 제공해준다. 이곳은 천국일까?

 

시몬과 다비드가 그곳에 “새로 온 사람들”로 등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둘 사이는 혈연관계가 아니며, 어린 다비드를 보호하고자 ‘작정한’ 시몬이 벨스타 수용소를 거쳐 이곳으로 왔다. 시몬은 마흔 살로, 다비드는 다섯 살로 ‘정해져’ 있다. 물론 이들의 실제 나이는 아니고 이들의 이름도 수용소에서 정해준 것이다. 다비드는 부모에 대한 정보가 적힌 서류를 분실하면서 부모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이 이곳에 왔기 때문에 시몬의 보호가 절대적이지만 시몬은 무슨 이유(근본적)에서인지 – 그의 고집스러운 신념인가 – 다비드의 어머니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만나기만 하면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는 이상한 믿음을 가진 채 마침내 만나게 된 이네스에게 다비드를 넘겨준다. ‘이건 뭐지?’하면서 생각이란 걸 해보지만 작가의 의도를 아직도 모르겠다.

 

다비드가 학교에 들어가게 되면서 갈등이 고조되는데 다비드의 뛰어난 창의성과 상상력이 문제였을까 교사와의 갈등으로 다비드는 특수 교육기관으로 보내질 처지에 놓이지만 이네스의 고집은 절대 그곳으로 다비드를 보내지 않겠다는 것이고 심지어 그곳을 떠나 “집시”가 되겠다고까지 주장하기에 이른다. 디아스포라적이지 않은가!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무작정 타지역으로 떠날 것을 결심한다는 것,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런 결심을 한다는 것이 어쩌면 무모해 보이지만 이들의 결심은 실행에 옮겨진다. 탈영토화로 이해해도 될까 싶다. ‘천개의 고원’에서 이런 탈영토화는 위험할 수 있다고 하지만 끊임없이 탈영토화와 재영토화가 반복된다고 한다.

작품에는 적잖은 철학적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어렵다. 작가의 전작 ‘추락’을 읽었다지만 –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 이 작품은 전혀 다른 색채가 느껴진다. “옮긴이 해설”을 보지 않았다면 이 작품이 “예수 삼부작” 중 첫 번째 작품이라는 것도, 이 작품이 2013년에 출간되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옮긴이가 이 작품을 6~7년 전에 번역했다는 것도... 삼부작 중 나머지 두 작품은 아직 국내에 소개도 되지 않았는데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어져 지난 5월 칸영화제에서 “여기(Aqui)”란 제목으로 프리미어 상영을 가졌다는 것도 참 독특한 부분이다. 옮긴이는 이것을 국내 출판계의 현실로 “우리의 현실은 부끄러움이라는 말 갖고는 표현이 안 된다.”라 표현했다.

 

이 작품은 한번 읽어서는 문장들을 이해하지도 못하겠더라. 재미가 있고 흥미를 계속 끄는 이야기지만 어렵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삼부작 중 나머지 두 작품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고 하니 궁금하지만 언제 소개될지도 모르겠다. 출판사에서 속히 삼부작을 온전히 읽을 수 있도록 조속한 시일 내에 계속 출간해주길 기대한다. 독서모임에서 함께 읽자고 추천해야겠다. 그럼 좀 쉬워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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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은 ‘헤세드의 서재(@hyejin_bookangel)님의 서평단 모집에 선정되어 책을 지원받아 작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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