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의 작가 김진명의 장편소설. 고대사 문제를 새롭게 조명한 작품이다. 핵융합 발전의 획기적인 발전을 주도했던 ETER의 물리학자 이정서는 대통령의 초청으로 프랑스에서 귀국한다. 그는 대통령 초청만찬에서 공적을 치하 받지만 기쁨도 잠시, 며칠 후 친구의 충격적인 죽음을 접하게 된다. 경찰 수사에서 친구의 죽음은 자살로 판정되지만 정서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한다. 정서는 사건을 파고들다 다른 친구인 한은원 교수까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둘은 한(韓)이라는 하나의 실마리로 연결되는데… 김진명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편이다. 특히 중학교 때 <가즈오의 나라>를 너무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후 지속적으로 출판되는 그의 소설을 모두 읽지는 못했지만 그 당시 (내가 한참 책을 읽을 때)만 해도 2~3권으로 구성된 그의 책은 촘촘했고 스릴있고 가슴 속 민족주의 유전자를 건드리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드라마틱한 그의 스토리텔링은 영화화되기 좋은 측면도 지니고 있어서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한반도>가 영화화되었다. 하지만 책으로 읽으며 냉철한 분석을 시도하는 것과, 시각화된 스펙터클이 직접적으로 민족주의와 주인의식을 주장할 때 드는 거부감은 조금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그의 소설은 영화보다는 소설로 읽는 편이 독자적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에 좋은 구성을 지니고 있는 듯 하다. 오랜만에 그의 소설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게 됨과 동시에 Yes24에서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한다는 걸 알고는 신청했는데 운이 좋게 당첨되어 참가할 수 있게 되었다. 실제로 만난 그는 꼬장꼬장한(내 스타일이다) 애국심과 원칙주의자적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아, 그건 아마도 '신념'이었던 것 같다. 작가로서의, 또 '한국인'으로서의 신념. 책은 아주 오랜 후에나 읽게 되었다. 아쉽게도 손에 한번 잡으면 놓을 수 없는 재미와 속도감을 느끼기에는 힘든 면이 있었다. 우선 양장본 스타일에 엄청 큰 텍스트 크기가.. 마치 초등학교 때 보았던 <황금동전의 비밀>과 같은 동화책을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글씨가 큰 만큼 문장은 굵고 짧았으며 내면을 울리기 보다는 행위 묘사 중심이었으며 사실을 전달하는 르포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책에서 그는 가슴을 울리는 감동이나 깨달음보다는 '한'의 기원을 찾아가는데 쏟아부은 그의 열정과 호기심을 독자에게 전염시키고자 했던 것 같다. 작가님에게서 직접 강연을 듣고 나서 책을 봐서인지 책의 내용이 잘 이해가 되고 와 닿았다. '대한민국'의 '한'의 기원에 대해 그토록 알려진 것이 없었다니.. 일제가 우리의 눈을 가리기 위해 왜곡한 역사교육의 폐해가 아직도 걷히지 않았다니.. 화가 나고 어이가 없는 걸 보니, 김진명 소설을 읽는 재미가 역시 한국인의 어떤 심경을 자극하는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하나의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일종의 추리극 혹은 스릴러의 틀을 빌려 쓰고 있는 이 소설은 장르적 특성을 비추어 보았을 때 이 책은 긴장감을 조성하거나 뒷부분이 궁금해 미치겠는.. 뭐 그런 재미를 전달해 주지는 않았다. 그저 하나의 숨겨진 역사의 가설을 확인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기분이었다.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감흥은 그다지 없었다. 소설 속 가설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우리나라 반만년의 역사가 곱절로 늘어나는 엄청난 전환을 맞이하겠지만 아직 학계 같은 부분이 잠잠한 것을 보니 그다지 센세이셔널한 주제는 아니었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때 작가님은 이 책을 반드시 사지 않아도 좋으니 많이 돌려 읽어 보라고 하셨다. 그건 김진명 작가가 추구하는 것이 소설가로서의 성공이 아니라 이야기하고 싶은 바를 '한국인'들과 공유하고 싶은 염원이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확고한 지론과 인생관을 가진 한 분의 어른으로서 김진명 작가를 존경하지만 이번 소설은 사실 아쉬운 감이 많이 든다. 하지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씨성의 역사나 별자리와 조수를 기록했던 우리 조상의 지혜가 남긴 기록에 대한 사실들을 알게 된 건 역시 가장 큰 소득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시경>이나 <유한집>, <씨성본결>, <잠부론>, <삼국사기> 등과 같은 책에도 관심이 생긴다. (이런 주체 못할 관심들... ;;) 관련글 2009/06/28 - [신씨의 culture 리뷰/문화강좌/행사] - [후기] 090627_김진명 작가 강연회 (롯데시네마 홍대입구관)_'어른'을 만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