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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되기 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28 - 여행이 당신을 진정한 서른이 되게 한다
김병희 외 지음 / 명진출판사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서른을 향해 발걸음을 내딛을 이들에게 4인의 여행작가가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 땅 28곳을 소개한다. 은빛 억새들이 가득한 '제주 산굼부리 억새밭', 아름다운 세월의 힘을 지닌 삼릉숲이 있는 '경주 남산', 인연을 만들어주는 마법의 섬 '통영 소매물도', 이십 대의 마지막 봄을 향기로 채우는 '광양 매화마을', 사랑의 감정을 안고 떠나는 '고창 학원농장' 등을 감수성 풍부한 글과 멋진 사진으로 담았다.
강렬한 묘사와 잔잔한 감성을 실은 글, 그림 같은 사진은 여행을 하지 않고도 그곳에 가 있는 느낌을 받게 한다. 또한 불안함과 두려움 섞인 서른 즈음의 사랑, 이별, 일에 관한 에세이는 겁 없이 달려온 이십 대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삶의 지혜 등을 이야기한다.
아쉽게도 이 책은 내가 서른 먹고 나서야 나왔다. 변변찮게 여행 몇 번 못 해 보고 정신없이 이십대를 보낸 것 같은 기분에 만으로 마지노선을 넘기 전에 한번 확인해 보고 싶었다. 앞으로라도 조금 바지런하게 가보아야 할 곳이 어디어디인지.
책 제목은 나처럼 '서른'이라는 나이대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특히 관심을 보일만하게 지어졌다. 어쩌면 생각보다 '나이'와 '여행'은 깊은 연관을 맺고 있는지도 모른다. 배낭여행도 가능하면 젊은 나이에 가보는 게 좋다 하고 여행은 사람을 자라게 하고 도시에서의 삶을 견디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하니 그런 내공은 또래보다 풍부한 느낌을 내게 해 줄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볼 때 굳이 '서른'이라는 나이에 얽매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여행은 그 어느 나이 대에 하더라도 그 시기에 맞는 감흥을 가져다 주니 말이다. 이 책에 소개되어 있는 여행지들도 십대건 삼십대건 육십대건 누구든 찾아다니며 저마다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곳들이다.
하지만 여행지의 컨셉은 '서른'이 아닐지라도 여행작가들의 감성은 확실히 '서른'을 겨냥하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인생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나이. 불안함보다는 용기를 내는 지혜를 갖게 되는 나이인 서른에게 여행이란 그 누구에게보다도 필요한 일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새삼 책의 한 구절 한 구절이 마음에 와닿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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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외로운 스물아홉의 어느 봄날,
천지에 가득한 매화향기에 이끌려 섬진강을 찾는다.
겨울을 깨치고 피어난 매화의 자태는
움츠린 나의 마음을 열어놓는다.
폐부 깊숙이 차오르는 그 순결한 향기를 호흡하며,
장미꽃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향기로운 존재가 되리라.
건조한 삶에 봄날 향기를 채우고 싶다면
매화마을로 떠나라.
- 이십 대의 마지막 봄엔 향기가 있었다 '광양 매화마을' (김정화) -
이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여행'처럼 느껴졌다. 여행지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분위기를 묘사하는 글은 물론이거니와 폴라로이드를 스크랩해 놓은 듯한 사진첩 분위기, 혹은 한 페이지 전체의 배경이 되는 억새밭과 같은 사진 연출 또한 나의 책읽기 자체를 여행으로 만들어 주는 데 일조한다. 그리고 간간이 등장하는 일러스트 캐릭터의 뒷모습은 마치 여행을 떠나면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게 될 나의 뒷모습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는 무심코 쉽고 편한 것들을 좇는다.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살이의 요령이라 여기면서.
하지만 삶은 오묘하게도
돌아가는 듯 더디게 밟아가는 과정에서
사람을 살찌운다.
수고스러움이 있는 곳에
훗날 추억이 될 잔잔한 이야기가 있다.
가끔은 조금 더디더라도 고개를 들어 눈빛을 나누자.
우리는 너무 쉬운 것들에 길들여져 있다.
- 때론 수고스러움을 사랑해 '완주 대둔산' 김정화 -
책에 소개된 28곳의 여행지 중 내가 몇 곳이나 가 보았나 세어보니 광양 매화마을과 파주 임직각 평화누리공원 단 두 곳 뿐이다. 아직도 가보지 못한 숱한 여행지들에 몇 년, 몇 십 년이 걸리더라도 언젠간 모두 가보리라 하는 목표를 세워 본다. 목적이 아닌 이러한 목표들이 내 일상에 의미를 부여해 준다. 서른이 아니어도 여행은 언제나 설레고 두근거리는 것이니.
서른이 되기 전에 꼭 가봐야 할 여행지 30곳이 아니라 그보다 둘이 부족한 28곳이다. 비어있는 그 '둘'과 같은 이미지는 우리의 감성으로 채워넣을 여백과 같은 느낌을 준다. 책 속 글씨 역시 큼직하게 잘 읽혀지도록 되어 있고 줄간에서는 마치 바람이 불어나오는 듯 여유롭다.
28곳의 개성넘치는 여행지 말고도 비슷한 컨셉의 풍취를 느낄 수 있는 장소들이 4군데씩 더 소개되어 있다. 주변 여행지와 자세한 교통편, 먹거리 등과 함께. 따지고 보면 28곳보다 훨씬 많은 '가 볼 곳'이 제시되어 있는 셈이다. 모두 주말에 시간을 내어 다녀올 수 있을 만한 곳들이다. 이 책 속 여행지 모두 가 보기, 현실성있는 목표로 삼기에 딱 좋은 듯 하다.
서른에 가까워지면서
부쩍 혼자 보내는 시간을 즐기기 시작했다.
왁자함에서 벗어나 혼자 즐기는 여백의 맛이 좋다.
혼자 걷기는 나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목적이라는 부담 없이 그렇게 걷다보면
나를 사랑할 수 있는 나를 발견한다.
나와 소통하는 것만큼 큰 선물이 있을까?
그러니 가슴으로 숨을 쉬며 가끔은 혼자 걸어라.
- 나에게 혼자 걷기를 선물하라 '담양 금성산성' 김병희, 조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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