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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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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36년 겨울, 인조의 어가행렬은 청의 진격을 피해 남한산성에 들었다. 그후 47일. 고립무원의 성에서 벌어진 참담했던 날들의 기록을 담은 김훈의 신작 장편. '삶은 치욕을 견디는 나날'이라고 말하는 그는, 이렇게 다시 조국의 가장 치욕적인 역사 속으로 뛰어든다.
『남한산성』은 1636년 12월 14일부터 1637년 1월 30일까지 갇힌 성 안에서 벌어진 말과 말의 싸움, 삶과 죽음의 등치에 관한 참담하고 고통스러운 낱낱의 기록을 담고 있다. 쓰러진 왕조의 들판에도 대의는 꽃처럼 피어날 것이라며 결사항쟁을 고집한 척화파 김상헌, 역적이라는 말을 들을지언정 삶의 영원성은 치욕을 덮어서 위로해줄 것이라는 주화파 최명길, 그 둘 사이에서 번민을 거듭하며 결단을 미루는 임금 인조. 그리고 전시총사령관인 영의정 김류의 복심을 숨긴 좌고우면, 산성의 방어를 책임진 수어사 이시백의 ‘수성守城이 곧 출성出城’이라는 헌걸찬 기상은 남한산성의 아수라를 한층 비극적으로 형상화한다.
“죽어서 살 것인가, 살아서 죽을 것인가? 죽어서 아름다울 것인가, 살아서 더러울 것인가?” 김훈은 370년 전 조선 왕이 ‘오랑캐’의 황제에게 이마에 피가 나도록 땅을 찧으며 절을 올리게 만든 역사적 치욕을 정교한 프레임으로 복원하였다. 갇힌 성 안의 무기력한 인조 앞에서 벌어진 주전파와 주화파의 치명적인 다툼 그리고 꺼져가는 조국의 운명 앞에서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씨줄과 날줄이 되어 무섭도록 끈질긴 질감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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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에 공통적으로 공명해 오는 것들,
전장의 북소리('칼의 노래'), 현의 미세한 떨림('현의 노래')에 이어
이번 소설에서는 길고 모질었던 겨울, 살고자 하는 욕망이 가늘게 진동한다.
자연의 변화, 그 속의 인간, 역사 속에서 언제나 나의 의지가 아닌 나라의 운명을 걱정해야 했던 사람들이
그의 소설 속에 단골로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이마에 피가 나도록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청의 칸에게 절해야 했던 인조의 굴욕 사건을 돌이키면서
그 현장의 앞뒤에 놓인 시간들,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김훈은 소설 '남한산성'을 통해 역사적으로 끊이지 않았던'약소국의 비극'을 '바로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난주 아시아판 타임지에 소개된 중국 올림픽 개막식에 관련된 기사 안에
작게 중국 지도가 삽입되어 있었다.
중국을 둘러싼 몽골, 러시아, 인도, 일본은 나라 이름이 명확하게 표기되었으나
그 사이에 중국의 뾰루지처럼 돌출해 있는 작은 나라 대한민국의 이름은 표기되지 않았다.
독도며 이어도며 요즘 들어 '약소국'이라는 콤플렉스를 자극하는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우리는 과연 어떻게 대처하며 그들 안에서
살아남아야 할까, 에 대한 문제가
그 어느 때보다 대두하고 있는 듯 하다.
쓸데없이 자존심을 돋우고 성을 내는 것보다
'(잘) 살기 위해서' 어떻게 나를 낮추면서도 온건하게 지켜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게 아닐까.
불가항력이라는 게 있지만
본질을 명확히 알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감정적이기보단 이성적으로 대처해야 할 일들이 늘어난다.
'비굴함'이 '생존'의 한 방편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 것이다.
'생존을 위해야 함'도 '비굴함'을 구사하는 방법도 모르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다.
김훈의 인물들은 약하디 약하지만 언제나 '살고자' 고민했으므로 용감했고
그들의 눈물과 고뇌 덕에 우리는 우리의 땅을 이어받았으므로 그들을 부끄러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슬프지만 비장한 결단과 몸부림의 역사,
소설이어서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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