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 서울대 교수진이 추천하는 통합 논술 휴이넘 교과서 한국문학
공지영 지음, 황미옥 그림, 방민호 논술 / 휴이넘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2005)

공지영 / 소설 / 푸른숲



   
  "산의 빛깔이 달라졌어요.
모든 건 그대로인데 노란빛이 어리는 것 같기도 하고
무언가 공기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이게 봄인가봐요.
제가 다시 이 봄을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제 인생의 마지막 봄이 될지도 모르겠군요.
그런데 제게는 이게 제 인생에 첫 번째 봄인 것만 같은 착각이 자꾸 듭니다."

윤수의 편지 p.179
 
   

가슴이 저린다는 표현을 이런 때 쓰면 적절할까.
책을 읽으면서 이런 기분을 느껴본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이미 유명해질대로 유명해 진, 영화까지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지 1년도 훨씬 넘은 지금
새삼스레 뒷북을 치고 있는 것도 웃기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어보지 못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하니 지금이라도 읽은 게 다행이다 싶다.

전혀 다른 환경과 조건을 가진 두 사람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나 서로의 상처와 치부를 드러내고 교감하게 되기까지,
그들이 거기에 그렇게 있게 되기까지 작용한 수많은 요소들은
분명 '운명'이라고 하기엔 억울한 여러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있을 것이다.
궁색스레 글로 풀어낼 필요조차 없는,
하지만 '몰랐다'는 말로 그냥 묻어버리기엔 너무 뾰족하고 자잘한 문제들이
그들의 주변에, 우리의 주변에 도사리고 있다.
어찌 보면 또 그 덕분에 세 사람을 살해한 남자와, 세 번 자기를 죽이려고 시도했던 여자가 만날 수 있었고
서로의 아픔을 치유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겠지만.
이미 단단하게 굳어져 있어 한 인간의 '진실'만으로 녹일 수 없는 이 사회 속에서
그들이 함께 맞이하는 봄은 다시 찾아오지 않겠지만
그래도 살아있다 보면 언젠가는 변화하기 마련이다.
생애 마지막 봄과 생애 첫 봄이 같은 것처럼 느낄 수 있는 인간의 마음은
어떻게든 움직여질 수 있는 것이고
다른 사람의 마음에 전해질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모든 걸 다 가져도 행복하지 않을 수 있고
남들 다 가진 것을 빼앗겼어도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보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폭력은 또다른 폭력을 부르고, 가난은 또다른 가난으로 이어진다.'
해결이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이같은 명제의 사례를 보이기 위해 소설에 등장한,
잘 나가는 집안의 막내딸인 젊은 여교수, 남들 다 가진 목숨 마저 내놓은 젊은 사형수의 삶의 대비는
비교조차 어려운 대상으로 보이지만
그들이 공통적으로 앓았던 병명은 '애정결핍'이었다.
생각해 보면 인간의 마음이 치유할 수 있는 병의 종류는 얼마나 많은가.
인간의 마음을 발동시키고 전이시키는 데에는 돈이 들지 않지만
인간의 마음이 부족해 발생하는 갖가지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든다.
이것을 과연 우리가 '몰랐기' 때문에 실천하지 못한다고 할 수 있을까.
알고 있으면서도 내게 '여력'이 없다는 핑계로 외면하고 있을 뿐.
누추한 내 마음을 부끄러워 하거나 무능한 사회에 분노하는 것이
기껏 '위선'에 불과하다 할지라도
'위선'이 '위악'보다는 낫다지 않은가.
겸손한 위선자라도 되어 마음 속으로 매일매일 감사하는 마음으로 용서하며 살아갈 일이다.

영화 이야기도 역시 빼놓을 수가 없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영화는,
강동원과 이나영이라는 비현실적 신체비율을 가진 두 배우가 출연했던 그 영화는,
소설이 가진 미덕을 해체하고 그저 보기 좋게 다듬어진,
알 수 없는 트렌디한 분위기를 풍기는 영화로 둔갑했었던 것 같다.
물론 소설을 보기 전이어서 그 영화를 볼 당시에도 엄청 울어대긴 했지만
역시 스크린에 전부 보여질 수 없는, 입 밖으로 내뱉는 대사에 전부 담길 수 없는,
그 이상의 절절함과 묻혀진 사연들, '진짜 이야기'가 소설 안에는 있었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도 내내 윤수와 유정의 얼굴에 강동원과 이나영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현상까지 막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역시 소설은 진했고 또 깊었다.
문장과 대사 사이의 빈틈을 영상을 회상하는 것으로 훌륭하게 메울 수 있었으니
그건 또 영화를 먼저 본 것 나름대로의 장점이라고 할까.

영화는 그저 윤수와 유정의 영화였다.
하지만 소설 속 메시지를 완성하는 것은 윤수와 유정 뿐 아니라
그들과 함께 있었던 모니카 수녀와 이주임,
삼양동 할머니, 셋째올케 서영자, 큰오빠, 외삼촌, 김신부님 모든 주변인물이었다.
영화 속에서는 미처 얼굴이 주어지지 않았던 그들에게서
삶의 진정한 다양한 표정들이 나오고
그들로 인해 윤수는 그의 말대로 '단풍처럼' 아름답게 갈 수 있었고
유정은 자신의 삶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인간의 감각은 눈을 통해서, 그 중에서도 이성은 글을 통해서, 또 문장을 통해서 전해지는 것 같다.
윤수가 남긴 블루 노트처럼
사실보다는 진실이 담긴 글이 보는 사람에게 더 많은 생각을 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인간은 선해지기 위해서라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해야 하나보다,
라는 생각도 해 본다.



   
  고모의 손은 평생을 쓸어내린 빗자루처럼 거칠었다. 흰 면양말을 신고 있는 발은 아기처럼 작았다. 고모는 저 발로 많은 곳을 걸어다녔을 것이다. 팔십에 가까운 생애 동안 우리들이 ‘몰랐다’라는 말로 간단히 외면해버린 어두운 뒷골목과 버려진 숲, 공포의 골짜기와 진리의 사막, 그리고 도도하고 가혹했던 강들을...... 그리고 생각했을 것이다. 결국 다른 이름을 가진 작은 개울물로 시작하지만 흘러흘러 도달하는 곳은 바다라는 한 이름의 장소라는 것을......

-p. 306쪽
 
   


   
 
너무 늦게 당신을 사랑했나이다.
이토록 오래되어도 늘 새로운 아름다움이시여.
이다지도 늦게야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나이다.

- 성 아우구스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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