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1 - 폭풍
손영목 지음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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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3.9



1950년대 우리 민족의 가장 아팠던 순간,


그 때 거제도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수 만 명의 전쟁포로들이 드글거리는 포로수용소,

뼛속까지 공산주의에 물든 공산포로들과 매일 전쟁을 치르듯 살아가는 반공 포로들,

포로수용소 때문에 삶의 터전인 농토를 다 빼앗겨 버린,

도대체 누굴 위한 전쟁이었는지도 모르는 채 모든 걸 잃어버린 순박한 거제도 주민들까지.

역사는 개인을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말이 이보다 더 서글프게 와 닿을 수가 있을까.

이렇게 소설로라도 누군가 부활시켜주지 않으면

애꿎은 그 전쟁이란 것 때문에 희생당한 수많은 영혼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상기해 볼 기회나 가질 수 있을까.


점점 늘어나는 전쟁포로들을 감당하지 못해

미군이 거제도에 대규모로 지은 포로수용소.

그 안에서는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공산포로와 반공포로들,

그리고 그 주위를 둘러싼 경비대와의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그 때문에 땅을 뺏기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진 주민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장 옥치조의 집에는 징집되었다가 다리를 다쳐 불구가 된 큰아들이 돌아오고

읍내로 돈을 벌러 간 딸 덕분에 온 가족이 먹고는 살지만

이런저런 충격으로 옥치조의 부인은 실성한다.

포로 중 서울 의용단 출신인 최윤학은 과연 자신이 선택한 공산주의가 옳은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자문하고 괴로워 하며

수용소에서 탈출했다가 병원에서 만난 간호원을 만나 사랑에 빠진 윤석규는

그녀가 포로공작원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도 그녀를 포기하지 못한다.

수용소 안의 공산포로들은 당에서 지령을 받고 계속해서 경비대를 자극하여

공작활동을 벌인다.

수용소 안에서든 밖에서든 어느 누구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없었던 그 시대,

나약한 국가와 터무니없는 이데올로기 전쟁 안에서 모든 개인은 초라했다.


손영목 작가가 탄생시킨 소설 '거제도'는

거대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기구한 수많은 운명들이 등장하는 장엄하고 구슬픈 드라마다.

작가의 말처럼

미국만 해도 '남북전쟁, 세계대전' 등등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진 소설과 영화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우리가 '전쟁' 관련 컨텐츠 하면 떠올리는 건 '태극기 휘날리며'와 같은 액션영화 정도 뿐.

이념 때문에, 가족 때문에, 돈 때문에, 생존 때문에, 의리 때문에, 명분 때문에, 무지 때문에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숱한 애환이

꼭 산업적인 이유만이 아니더라도 자꾸 씌여지고 읽혀지고 보여지고 되새겨질 수 있어야

그나마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게 될 것이다.

이런 시도와 도전이 없다면 젊은 사람들 중 그 누가 그 시절을 기억하려고 할까.

요즘처럼 찰나적 즐거움과 유흥에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지금 내가 얼마나 좋은 세상에 태어난 사람인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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