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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뿌리
김중미 지음 / 검둥소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내가 초등학교 때 4년 정도 살았던 곳은 미군부대 정문과 바로 마주한 작은 '가겟집'이었다.
종종 군복을 입은 흑인,백인들이 우리 가게에 찾아와 '시거'를 찾곤 했었다.
가끔 엄마 대신 가게를 보던 내가 그들을 상대로 유일하게 하는 건
그들이 '하우 머치?'하고 물을 때 물건 값을 계산기에 찍어 그들에게 들이미는 것이었다.
그 때 내가 이상하게 여겼던 건 크리스마스 때면 술에 취해 동네 시끄럽게 캐롤을 부르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그들을 말리지 않았다는 거다.
어느 집 아무개 아저씨가 미군과 싸움이 붙어 맞았다더라는 소문이 돌기도 했고
어느 날 밤사이 옆집 이불가게 창이 깨졌는데 그게 어느 깜둥이 소행이더라..고도 했다.
그래서 내겐 해마다 미국의 독립기념일의 밤하늘에 펑펑 터지는 불꽃놀이가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곤 했었다.
우리 집 근처에 '다이아나'라는 이름의 흑인혼혈 소녀가 살고 있었다.
내 또래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미군부대에서 일하는 그 아이의 엄마 덕분에
아주 가끔 그 애를 따라 미군부대 안에 들어가 헬스장이나 피엑스 구경을 하기도 했었다.
그 아이는 나와 내 동생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나는 '빨간머리 앤'에서 앤의 친구인 검은머리의 예쁜 소녀 '다이아나'의 이름과
그 아이의 이름이 같다는 게 왠지 마음에 안 들었더랬다.
그리고 나는 나보다 알파벳을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유창하게 영어를 하지 못하는 그 아이가 미국인인지 한국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땐 왜 그랬을까.
하지만 다시 생각해 봐도 역시 아직 자신은 없다.
지금이라면 주위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그 아이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
'거대한 뿌리'에는 2002년 허름한 M동에서 저소득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공부방을 운영하는 여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녀는 교육열은 커녕 부모의 무지와 폭력에 시달렸던 한 여자아이를 유난히 보살폈는데
삶에 지쳤어도 꿈을 가진 숙녀로 성장한 그 아이가 어느 날 덜컥 이주노동자인 네팔 청년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그때문에 마음이 좋지 않은 여주인공은 문득 차를 몰아 자신이 유년시절을 보냈던 동두천 미군기지가 있는 동네 보산리를 찾아간다.
우리는 그녀의 뒤를 좇아 1970년대 기지촌 풍경 속 아이들의 세계를 함께 여행하게 된다.
미국에 입양되어 가는 것이 소원이었던 노래 잘하는 경숙이,
베트남전쟁에서 팔을 잃은 아버지와 포주인 어머니, 그리고 양각시 언니들과 한 집에서 살았던 해자,
미국으로 간 아버지를 만날 날을 기다리면서도 주위 시선에 힘들어하는 혼혈 소년 재민이,
학교를 그만두고 미군부대에 다니며 오빠들을 대학공부시켰지만 결국 흑인의 아기를 낳게 되는 윤희언니,
그들은 모두 힘들었던 시기를 견뎌낸 우리 공통의 조상의 모습임과 동시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받는 모멸과 냉대까지도 함께 견뎌 내야 하는 아픔까지 이중의 고통을 받아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꿈이 있었지만 그 꿈은 쉽게 피어날 수 없었고 그들은 그렇게 좌절해야 했다.
우리 땅에서 우리 음식을 먹고 우리 말을 쓰고 우리와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었지만
'우리'는 쉽게 그들을 '우리'와 같다고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우리'는 왜 그렇게 너그럽지 못했고 그들을 '우리와 같다'고 인정하는 것을 부끄러워 했던 걸까.
김중미 작가가 보여주는 1970년대 기지촌의 풍경은 내게 전혀 낯설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덜하긴 했지만 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모습이었기에
'거대한 뿌리'속 인물들은 나 같기도, '다이아나'같기도 혹은 그녀의 어머니 같기도 했던 것이다.
하지만 UN이 꼬집었던 우리가 뼛속 깊이 가지고 있는 '단일민족' 우월주의,
그것으로부터 과연 나는 자유롭다 할 수 있을까.
마음 한 켠이 무거우면서도
'거대한 뿌리'를 보고 반성하게 된다.
그래도 이제라도
자신의 이름과 국적보다 '혼혈아' 혹은 '이주노동자'라는 허울로 먼저 다가오는 그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관용을 배우게 되었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뿌리는 여러 갈래지만 결국 하나의 굵은 가지를 피워낸다는 걸
살면서.. 잊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