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문사냥꾼 - 이적의 몽상적 이야기
이적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5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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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정원의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난 그저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던 것뿐인데, 그녀가 비명을 지르며 내 품에 안겨 가슴을 두드려주길 원했던 것뿐인데, 그녀는 이미 책 속에 빠져 있고, 책은 우리를 봉인해버렸다. 서투른 장난은 때를 놓쳤고, 억지로 몸을 움직이면 그녀가 유리처럼 깨져 쏟아져 내릴 것 같다. 언제까지 여기 서 있어야 하는걸까. 그녀는 언제쯤 책 읽기를 그치고 뒤돌아 나를 찾게 될까. 한낮의 태양은 잔혹하게 내리쬐고, 그녀의 독서는 영원히 계속된다.

<지문사냥꾼> '독서삼매' 중..
 
   


소설가 김영하는 이적의 머릿속에 그의 글을 대신 써주는 피터팬이 살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렇다.
그는 네버랜드에서 초록색 옷을 입고 날아다니다가 어쩌다 대한민국에 흘러들어
30대 남자 싱어송라이터의 거죽을 입고 살아가다
얼마 전 무용을 전공하는 여성의 몸을 빌린 팅커벨을 만나 결혼을 위장하여 같은 집에서 살며
함께 네버랜드로 돌아갈 궁리를 하고 있다.
나는 이적의 안에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웅크리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의 상상력이 대부분 어린시절 보았던 '소년중앙'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 보았다.

중학교 3학년 때 패닉 3집을 귀에 꽂고
뙤약볕 아래 점심시간, 교문을 지키고 앉아 있었다.
멍하니 '그 어릿광대의 세 아들들에 대하여'와 '뿔'을 들으며
나는 삐에로 복장을 입고 부지런히 두 발로 공을 굴리고 있는 이적을 상상하거나
미간에 잘 생긴 뿔이 돋아난 이적의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내 기억 속의 이적은
욕조 속에 들어 앉아서 달팽이와 대화를 나누거나
UFO를 타고 외계인을 만나러 잠시 지구를 떠나있곤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이적 같은, 이적과 '같되', 이적일 필요는 없는(당연히 이적일 수 없는)
그런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고단한 육체는 현실에 두되
뇌의 한 토막 쯤은
헨젤과 그레텔을 끓여 먹기 위해 마녀가 가열하고 있던 항아리의 수프 속에 넣어 둔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랑,
그런 삶을 꿈꿨던 적이 있었다.
그럼 정말이지 두 눈 마주보고 '훗' 웃어버리고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 사이에서 자맥질하며 행복해 질 수 있을텐데.

희한하게 이상한 추억들이 자꾸 생각나네.
이건 필시 '이구소제사'로 변장한 이적이 내 귓속으로 침입해
나의 뇌 생태계를 마구마구 휘젓고 다니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의 냉소적이며 잔혹한, 창백하며 여린, 외로우며 음란한
핏빛 상상력이 젖어든 이 책, 매력적이다.
모든 단편이 그렇지만 특히
'자백'과 '제불찰 씨 이야기', 그리고 '지문사냥꾼'을 특별히 추천하는 바임.
이것으로...
이적과의 간접 접속
완료.



* P.S. : 이 글과 더불어 책의 표지에 그려져 있는 고양이 그림을 인터넷에서 찾아서
함께 올리려다가 컴퓨터가 두 번이나 다운되는 바람에
같은 글을 세 번씩이나 썼다.
이건.. 책에 나온 그 고양이의 저주인가!!
제길.
사용자 삽입 이미지

출처 : by d_evilk(네이버 그림그리기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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