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달린 여자
서계수 지음 / 오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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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버지가 먼저 숟가락을 들자 다음으로 남편, 그리고 아들과 내가 차례대로 숟가락을 들기 시작한다. 밥을 한술 더 씹었다. 흰쌀밥에서 쓴맛이 났다. 홈쇼핑 채널에 전화를 걸어 사들인 갈비찜에선 음식물 쓰레기 냄새가 난다. 가족들의 눈치를 살폈다. 다들 고기며 나물, 밥, 국을 아무렇지 않다는 표정으로 삼키고 있다. 아니, 아주 게걸스럽게 먹고 있었다. - 만회반점

표제작인 『머리 달린 여자』는 어느 날 갑자기 사람의 머리가 보이지 않는 환각에 시달리던 '진성'이 주인공이다. 병원에 가서 약을 먹어도 사람들의 머리는 보이지 않고, 괴로움을 달래주는 건 머리가 보이지 않은 채 등장하는 불법 녹화물이었다. 자신의 이러한 상황을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렸다가 자신과 같은 환각에 시달리는 남성을 더 만나게 된다. 같은 상황을 겪으며 비슷한 영상을 보는 사람들과 우정을 쌓아가던 중, 유일하게 머리가 달린 여자 '하늘'을 만나 이야기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표제작이 될 만큼 흡인력이 있고, 뒤로 갈수록 소름이 끼쳤다. 불법 촬영물을 만들기 위해 여자를 속여내 약을 타고, 촬영을 하고, 유포한 사람들은 당연히 문제라는 걸 알고 있지만 그들에 대한 법적 처벌도 가볍기만 하고, 보는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더욱더 약하다.

몰래카메라의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직접 가하는 참교육을 보고 있자니, 살아서 법으로는 그들을 단죄할 수가 없고, 죽어서야 이루어지는 복수가 안타깝기도 했고, 한편으론 그게 어디냐며 통쾌했다. 하지만 이 통쾌함이 마냥 가볍지 않은 이유는, 현실에서는 이런 방식이 아니고서는 분노가 해소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은 『만회반점』이었다.

경제적으로 집에 도움이 되기 위해 낮에는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집에서는 가사노동과 시아버지, 남편, 공무원 준비 중이라며 집에 처박혀 컴퓨터만 하는 아들까지 삼대의 끼니를 챙기는 주인공.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가사노동과 돌봄에 지친 주인공은 모든 음식에서 쓰레기 냄새가 나 음식을 넘기지 못하고, 토하기 일쑤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다 발견한 '만회반점'. 그곳에서 파는 군만두는 이상하게 아무 냄새도 없이 맛이 좋았다. 모든 음식에서 악취를 느끼는 설정은, 이런 생활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는 주인공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가게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다 빼앗긴 삶의 시간을 되찾자는 제안을 받고, 가족에게 만두를 끓여 먹이는 장면으로 끝나는 이 소설이 제일 현실적이기도 했고, 지독하리만치 반복되는 굴레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해 속이 터졌다.

삼시 세끼를 해 먹이는데, 음식 하기 너무 지쳐 시장에 있는 걸 사 왔더니 정성이 없다며 타박하는 세 남자의 뒤통수를 후려갈기고 싶었다. 일찍이 집을 나간 딸이 왜 집을 나갔는지 알게 되는 대목이었다.

시간을 돌려 행복했던 시절로 되돌아가려는 '어머니'. 주인공을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였다.

『지옥은 악마의 부재』와 『산상수훈』, 『프로메테우스의 여자들』은 오컬트, 종교, 신화를 섞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지옥은 악마의 부재』에서는 지옥의 왕 루시퍼와 반인반마가 등장하는데, 그동안 우리가 알고 있던 모습이 아닌 검은 정장을 입은 동양인 여성이 루시퍼로 등장해 특별했고, 두 작품에서도 약하고 핍박받던 여성을 선지자이자 세상을 이끌 강한 존재로 그려낸 점이 좋았다.

나약하고, 핍박받고, 학대당하고, 무시당하던 여성이 결국엔 주체적인 주인공이 되어 활약하는 이 이야기들이 여간 반갑지 않을 수 없다. 답답한 현실들을 공포와 환상이라는 장르문학으로 비틀어 보여주며 통쾌함을 주는 작품들이었다. 이런 여성 복수극이 더 많아졌으면 한다. 나와도 나와도 모자라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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