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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디스 걸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 지음, 김나연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3월
평점 :
제프리 엡스타인과 길레인 맥스웰이 열일곱 살이던 나를 이 방으로 처음 데려왔던 2001년, 두 사람은 몇 달 전부터 나를 성적으로 학대하고 인신매매로 돈을 벌었다. 지금 나는 서른일곱 살이자 누군가의 아내이고 엄마다. 완전한 성인이고 엡스타인이 교도소에서 사망한 지도 2년이 지났다. 그런데도 그가 내 옆에 서서 이 태피스트리를 바라보던 모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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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두 사람이 얼마나 두려웠는지 또렷이 기억한다. 귀에서 이명이 들린다. 이 자리에 서 있는 지금, 이성적으로는 그들이 더는 나를 해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허기진 유령들에게 쫓기는 느낌을 받는다. 어지러움을 억누르며 눈앞의 정교한 태피스트리에 시선을 고정했다. 작품 속 젊은 남자가 왕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한다. 그를 둘러선 사람들이 그 모습을 지켜본다. 나는 시선을 내려 마룻바닥에 붙은 내 발끝을 본다. 숨이 막힌다. 익숙한 공황발작의 진동이 몸을 타고 지나간다.
이 책은 청소년 시절 제프리 엡스타인과 길레인 맥스웰을 만나 성적으로 학대당하고 인신매매에 이용당한 버지니아 로버츠 주프레의 회고록이다.
책을 다 읽긴 읽었지만, 서평을 어떻게 써나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내가 아무리 공감 능력이 뛰어나도 나는 이 사람의 고통을 10%도 공감할 수 없을 텐데? 이해한다고 해도 100% 다 알지 못하면서 내가 감히 이 책에 나온 일들에 입을 보탤 수 있을까 싶었다. 나는 그저 분노하고, 또 분노하며 읽어나가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이야기의 첫 시작은 루브르 박물관이었다. 이곳의 장식을 보자마자 그녀는 순식간에 20년 전으로 빨려 들어간다. 도대체 어떤 기억이기에 서른일곱 살, 아이 셋을 둔 엄마가 되었는데도 이렇게 생생할까.
시작부터 적나라하게 묘사된 친부의 성폭행 장면을 읽으며 쌍욕이 절로 나오고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다. 수의사가 꿈이었던 어린 소녀는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에 친부에게 성폭행을 당한다. 엄마는 딸을 구하기는커녕, "자신의 남편을 딸에게 뺏겼다"라고 생각이라도 하는지 딸에게 폭언과 폭력을 퍼붓는다. 거기에 더해 자신의 친구에게 딸을 넘겨 또 다른 성폭행 당하지만 '역겨운 부분만 빨리 끝내면, 삶의 좋은 부분은 계속될 수 있다'라고 되새기며 모든 상황을 참아내며 점점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 책을 도대체 어떻게 읽어나가야 하나 책을 그냥 덮어야 하나 할 때쯤 저자는 말한다. "부디 읽기를 멈추지 말아 달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라 눈물을 참으며 책을 읽어나가기로 했다.
읽는 내내 역겨웠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인가 싶었다. 어떨 때는 직접적인 가해자인 엡스타인과 맥스웰보다, 그녀가 보상금을 받았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더 화가 났다. 앤드루 왕자에게 받은 합의금이 비겁하다며 손가락질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잔악한 범죄의 피해자에게 “네가 좋아서 한 것 아니냐”, “빠져나갈 수 있었는데 왜 그러지 않았냐”고 묻는 사람들. 버지니아와 그녀의 가족을 무너뜨리기라도 하듯 먹잇감을 물어뜯는 기자들과 비판론자들을 보며 치가 떨렸다. 사실 왜곡은 기본이고, 그녀의 과거까지 샅샅이 들춰내는 모습을 보며 버지니아가 말한 ‘남의 불행을 먹고 사는 기생충’이라는 표현이 떠올랐다. 권력자들의 범죄보다 피해자의 선택을 더 집요하게 캐묻는 세상이라니. 그런 장면들이 오히려 더 숨 막히게 느껴졌다.
수많은 피해자들의 증언 끝에 엡스타인은 결국 체포되어 감옥에 가지만,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타살이라는 말도 있는 모양이지만 너무 쉽게 죽은 거 아닌가. 맥스웰과 살아있는 가담자들이 더 큰 고통을 느꼈으면 한다. 감옥에 가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을 겪었으면 한다.
사랑하는 가족들이 계속 피해를 받는 상황에서 그녀는 여러 번의 자살시도를 한다. 버지니아를 포함한 피해자들은 생존자라 불리지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을 살아갈 것이다. 트라우마가 된 기억들이 행복한 순간에도 불쑥불쑥 떠오를 것이고, 결코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눈앞에 재생될 것이다. 어쩌면 평생 괜찮아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용기를 냈다.
나는 그 용기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감히 다 이해할 수 없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며 분노하고 또 분노했던 기억만은 오래 남을 것 같다. 온몸으로 읽은 이 이야기를 나는 쉽게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