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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
나탈리아 쇼스타크 지음, 정보라 옮김 / 스프링 / 2026년 2월
평점 :
개는 하늘에 첫 먹구름이 나타나기도 전에 다가오는 폭풍을 감지한다. 공기 중에 습기가 감돌고 기압이 떨어지는 것만으로 귀를 뒤로 젖히고 침을 흘리며 안전한 장소에 숨는다. - 샤워 부스 안, 침대 밑, 가끔은 옷장 속에.
사람은 그렇게 민감하지도, 조심스럽지도 않다. 우선 사람의 감각은 그렇게 날카롭지 않다. 그러나 사람은 신호를 무시하고 직관을 믿으려 하지 않는다. 바로 옆에 번개가 떨어져야만 그제야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깨닫는다. (55쪽)
서로 친하지 않은 시어머니와 며느리, 친하지 않은 할머니와 손녀, 동생(아들)만 예뻐하는 부모님에게서 외로움을 느끼는 딸의 이야기.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멀리 떨어진 나라의 이야기인데도 어쩜 이렇게 공감이 되는지. 폴란드나 한국이나 사람 사는 모습은 다 비슷한가 보다. 특히 정보라 작가의 번역이 무척 자연스러워서 주인공 이름만 폴란드일 뿐, 한국 소설을 읽고 있는 것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세 인물이 겪는 상실 역시 낯설기보다는 더욱 가까이 느껴졌다.
삶의 첫 상실을 겪은 마리안느, 상실 속에서 발버둥 치며 어떻게든 이어서 현실을 살아가려는 한나, 여러 상실을 겪었음에도 덤덤하게 살아가는 알리치아.
책을 읽기 시작한 초반엔 "상실"이라는 제목을 따라 화자들이 겪은 상실에 집중했지만 다 읽고 난 다음엔 상실 자체가 아닌, 상실 후에도 계속 삶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소설 속에서 한나와 알리치아는 말한다. "여자들은 정말 힘들다." 각자 자리에서 삶을 버텨야 하는 세 여자들의 고단함이 드러나는 대사라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보통 이런 소설을 읽으면 유난히 마음이 가는 인물이 있기 마련인데, 세 여자의 불행배틀 하듯 진행되는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각기 다른 세대를 살아간 세 여자 모두에게 마음이 갔고, 내가 겪어낸 이야기들처럼 세 여자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의 인생은 크고 작은 상실을 겪도록 만들어져 있다. 괴로워하면서도 모두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계속 살아가야 한다.
이 소설은 그 모습을 세 여성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여성인 나는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깊이 공감했지만, 어쩌면 이 이야기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