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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 - 제13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김미수 지음 / 은행나무 / 2025년 11월
평점 :
나는 다시 해림을 만나면 할 말을 되뇌어본다. 하도 오래 생각해서 외울 것 같은 말들, 해림아. 얼마나 아프니. 아팠니. 이제 만나 고국에 가는 배를 탈 수 있다면, 치유받고 치유하고 그렇게 살자. 이런 몸으로 가도 될까요? 그렇게 묻던 해림의 얼굴이 납덩이 같았다. 군인들이 흘린 핏물로 붉어졌던 바다가 새벽이 되자 푸르게 다시 출렁이더라고, 온 파도를 일으켜 아침 햇빛을 빨아들이려고 반짝이더라고 . 푸르게 설레도라고 말해주었던가.
…
아플 때의 너를 다 봤으니 그 상처를 내가 가장 잘 어루만져줄 수 있을 거라고. 내민 손 잡기만 하라고.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소설은 많이 봤지만, 남양군도를 무대로 한 한국 소설은 처음이라 거의 공부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일본이 일으킨 태평양전쟁에 조선인들이 강제 동원됐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휴양지로 알려진 팔라우 같은 섬의 아름다운 풍경과 아무런 죄도 없이 끌려가 그 누구의 사과도 받지 못한 채 목숨을 잃어가는 사람들과 위안소에서 몸이 터져나가도록, 살아도 산 것이 아닌 것 같은 시간을 버티고 있는 소녀들의 모습이 도저히 겹쳐지지가 않아 읽는 내내 괴로웠다.
이 소설은 같은 동네에서 자라 서로 얽혀 있던 종태, 이옥, 순이, 해림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전쟁의 고통을 더욱 가까이 느끼게 한다. 어떤 장면들은 너무 생생해서 잠시 책을 덮고 숨을 고르게 될 정도였다.
또한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뿐 아니라, 일본인인 척하며 조선인을 전쟁터로 몰아넣는 조선인, 죄책감에 흔들리는 일본인, 책임을 회피하려는 미국인까지 등장해, 전쟁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 인간 본성의 결을 여러 방향에서 보여준다.
누군가의 고통만을 평면적으로 그리는 대신 다양한 위치의 인물을 등장시켜 전쟁을 입체적으로 드러낸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우리 일을 없었던 일로 하면 안 되지. 엄연히 있었던 일이니까. 그러니까 지유 같은 젊은이가 나서서 되살려줘.”
위안소에서 버티며 살아남은 해림 할머니의 이 말은 제일 남는다. 과거를 잊고 살아가는 지금의 우리에게, 기억을 이어가는 일이 왜 필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한다.
어둡고 아픈 이야기였지만, 누군가의 삶을 다시 불러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이야기였다. 이런 작품들을 앞으로도 더 많이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