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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임
욘 포세 지음, 손화수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평점 :
나는 온 힘을 모아 크고 또렷하게 엘리네의 이름을 불렀다. 나는 숨길 수가 없었다. 내 목소리에 깃든 떨리는 사랑 같은 것을, 혹은 갈망 같은 것을, 엘리네의 이름을 부르는 내 목소리는 간청하는 것 같았지만 내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다. 결코, 그렇게 소리가 나왔을 뿐, 어쩔 수가 없었다. 그토록 큰 갈망, 그토록 오래된 갈망이, 내 안에 쌓여 더는 안으로만 간직할 수 없었기에 내가 방금 막 엘리네라는 이름을 부를 때 그 이름 속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내가 엘리네라는 이름을 혼잣말로 중얼거린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남들 앞에서는 거의 한 번도 말하지 않았고, 적어도 엘리네 앞에서는 절대 부르지 않던, 그녀에게 직접 부른 적은 없던 그 이름을, 이제 나는 불렀다, 처음으로, 그리고 엘리네라는 이름이, 사람들이 말하듯, 마치 공기 중에 맴도는 것 같았다, 오래도록 맴돌았다, 영원처럼 오래도록, 그렇게 느껴졌다.
총 3부로 나누어진 이 소설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도시 [바임]을 배경으로 한다. 1부는 ’야트게이르‘가 화자로 등장해 짝사랑하던 여인 ‘엘리네’와의 재회를 이야기하고, 2부에선 야트게이르의 유일한 친구였던 ‘엘리아스’가 화자가 되어 야트게이르와의 만남을 이야기한다. 마지막 3부에선 엘리네의 남편이었던 ’프랑크‘가 화자가 되어 엘리네와의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재회를 이야기한다.
굳이 필요도 없는 바늘과 실을 사려고 대도시에 갔다가 사기를 당해 돈을 잃고 상심해 있던 야트게이르. 누군가 배의 문을 두드린다. 문을 열자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여인 엘리네가 있다. 남편과의 삶에 지쳤다며 얼른 자신과 함께 바임으로 돌아가자는 그녀를 보고 고민하던 야트게이르는 결국 엘리네와 함께 바임의 집으로 돌아간다. 엘리네가 나타나고 나서 계속 속으로 “도망쳐! 그 여자 뭔가 꿍꿍이가 있는 것 같아!” 하는 생각으로 읽어나갔다. 오랫동안의 고독에 지쳐서일까? 의심 한 번 하지 않고 그녀와 함께 떠나는 야트게이르가 사실은 이해되지 않았다.
2부에선 야트게이르가 엘리네 다음으로 많이 언급한 엘리아스의 시점이 되었는데, 2부의 거의 대부분이 엘리아스의 독백으로 이루어져 있어 특이했고, 밖에 나가서 알게 된 야트게이르의 죽음은 그를 한층 더 고독하게 만들어주는듯했다.
3부를 읽으면서는 도대체 이 여자는 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 같은 느낌인가. 술집에서 처음 보는 남자를 프랑크라고 부르며 다가가는 엘리네의 모습을 그렸는데 도대체 엘리네는 뭘까? 고독한 바다에서 어부를 홀리는 세이렌 같은 느낌이랄까? 프랑크를 떠나 야트게이르에게 갔다가, 그의 죽음 이후 다시 프랑크에게 돌아와 바임으로 가자고 말하는 엘리네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녀가 남기고 가는 빈자리에서 더 짙어지는 고독을 보며, 이게 작가가 말하고 싶은 사랑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나의 고정관념일지 모르지만 도시들을 설명할 때도, 엘리네라는 이름의 배를 설명할 때도, 북유럽 특유의 스산함이 느껴졌다. 그 분위기가 야트게이르, 엘리아스, 프랑크의 고독을 더 짙게 보이게 했고, 마치 겨울의 회색빛이 인물들 주변에 가라앉아 있는 듯했다.
크나큰 사건사고 없이 잔잔한 호수처럼 흘러가는 이야기와 작가가 가진 독특함에 초반엔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하기도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라 무언가 더 있을 것 같은 느낌에, 뭔가 내가 더 느껴야 할 것 같고 숨겨놓은 뜻이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 납작하게 이 소설을 읽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냥 흐름대로 따라가다 보니 그 담백한 결이 오히려 재미로 다가왔다.
선명한 사건도 없고, 인물들도 뚜렷하게 규정되지 않아서 처음엔 낯설었지만, 오히려 그 흐릿함 덕분에 책을 덮고 난 뒤 더 많은 생각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