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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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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중반이 되면 자신이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묻기 시작해야 한다. 장기간에 걸친 격동의 청년기가 끝났으니까. 자신의 배경을 핑곗거리로 삼을 시기도 지났다. 무능한 부모님? 애정결핍? 지나친 애정? 이제 그만, 더 이상 핑계 대지 말자. 너에겐 십여 년 넘게 사귄 친구들이 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자신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사랑과 이별도 해봤을 것이다. 혼자 유익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을 것이다. 너는 공적인 삶이 어떤 것이고 자신은 그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알고 있다. 너에게 주어진 책임이 너를 압박하고 자신을 규정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부모 노릇도 얼마간의 실마리를 던져줄 것이다. 그의 바로 앞에 주름진 얼굴로 서 있는 인물은 말로가 아니었다. 마흔 살의 그 자신이었다. 너는 이미 자신의 몸에서 죽음의 초기 징후를 보았을 것이다. 허비할 시간이 없다. 이제 너와 분리된 독자적인 자아를 만들어 너 자신을 평가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도 완전히 틀릴 수 있다. 어쩌면 이십 년을 더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 그리고 그때도 헤맬 수 있다.

영문학의 거장이라고 불리는 이언 매큐언의 열일곱 번째 소설. 워낙 유명한 작가라 이름은 들어봤지만 이 작품으로 작가를 처음 만나게 됐다.

이 소설은 총 3부로 구성되는데, 1부에선 어린 시절의 롤런드를 만날 수 있다.

기숙학교에서 피아노를 배우며 경험한, 평생의 트라우마가 된 기억이 중심이다.

2부에선 앨리사와 사랑에 빠진 청년 시절의 롤런드를, 3부에선 로런스가 자라서 부모의 곁을 떠나게 된 노년의 롤런드를 만난다.

사실, 난 굉장히 보수적인 유교걸이라 14세 롤런드와 25세 코넬 선생님과의 ‘로맨스’라 부르기도 싫은 그 부분이 너무 읽기 힘들었다. 사랑이라고 부르기엔 너무나도 불편하고 역겨운 장면들. 코넬 선생님은 롤런드 못지않게 나를 힘들게 했다. 이 책을 계속 읽어야 하나 매우 고민했지만, 롤런드가 정신 차리고? 코넬 선생님을 떠나고 나서부턴 그래도 술술 읽혔다.

자전적 색채가 짙은 작품이지만 회고록은 아니고, 실제로 선택하지 않은 삶에 대한 상상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옮긴이의 말, 690쪽). 40대가 되어 과거를 돌아보는 롤런드의 모습이 유난히 와닿았다.

그가 태어나기 전부터 70세가 넘을 때까지의 이야기를 담은 만큼 2차 세계대전부터 동독 사람들의 힘든 생활, 베를린 장벽 붕괴, 체르노빌 방사능 유출 사건, 그 외 크고 작은 국제 사건들과 코로나로 인한 봉쇄까지 다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읽어나가는 재미가 있었는데, 내가 세계사와 영국사를 조금 더 알고 있었다면 훨씬 재미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한동안 책을 거의 못 읽었는데, 초반엔 피아노 레슨 때문에 힘들었지만 이런 큰 스케일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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