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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뇨, 아무것도
최제훈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6월
평점 :
깊은 밤에 잠을 깨면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다. 깊은 밤이 자꾸만 말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깊은 밤과 가볍게 대화를 나누는 건 괜찮지만, 무심코 속내를 내비치거나 고민을 털어놓는 건 조심해야 한다. 깊은 밤은 무엇 하나 허투루 듣는 법이 없다. 숨결 같은 작은 속삭임도, 속삭임마저 생략된 여린 한숨도, 깊은 밤의 깊고 캄캄한 동굴로 들어가면 거센 돌개바람으로 되울려 나온다. 가라앉은 마음을 들쑤시고, 몽롱한 정신을 뾰족하게 벼리고, 모든 자세를 불편하게 만들어 침대 위를 뒹굴게 하는. 그렇게 밤은 깊어가고 잠은 멀어진다. 희붐한 새벽빛이 깊은 밤을 밀어낼 때까지.
최제훈 작가와는 이번이 첫 만남이었다. 전작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어 더더욱 기대를 하고 책을 펼쳤는데 이게 무슨 일? ㅋㅋ
첫 소설 [깊은 밤]에서는 ‘아, 이렇게 감성적인 글을 쓰는 분이구나’ 싶었는데, 곧이어 만난 [날지 않는 새들의 모임]에서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딜레마]부터는 ‘갑자기 호러 장르로 가는 건가?’ 싶더니, 표제작 [아뇨, 아무것도]에서 그 정점에 이르고, 이어지는 [여기는 게이바가 아닙니다]에서는 분위기가 다시 유쾌하게 전환된다.
그러다 너무 놀랍게도 [작가의 말]이 등장한다. 처음엔 ‘작가의 말’이라는 제목의 또 다른 단편인 줄 알았는데, 진짜 작가의 말이었다. 알고 보니 목차가 가나다순으로 배열되어 있었고, 그래서 여러 이야기가 마치 뒤죽박죽 섞인 듯 배치되어 있었던 것. 다양한 장르가 쏟아져 나와 읽는 내내 즐거웠다.
어떤 소설들에선 피식 웃었다가, 어떤 소설에선 반전에 울컥하기도 하고, 어떤 소설에선 약간 무서워서 소름도 돋았다가 어떤 소설에선 이렇게까지 한다고? 하면서 엉뚱함에 웃음이 나왔다. 청탁 없이 마감 없이 분량 제한 없이, 그냥 쓰고 싶어서 그냥 썼다고 하셨는데, 그 점이 이 소설집을 더더욱 매력 있게 만든 듯하다.
감성적이었던 첫 소설 [깊은 밤]부터, 가나다순에서 갑자기 허를 찌르는 마지막 소설 [마트료시카]까지 지루할 틈이 없는 책이었다.
😀 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자유롭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