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 어둠
조승리 지음 / 다산책방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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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그리는 미래를 들을 때마다 견딜 수 없게 슬퍼졌다. 그 미래에 정말로 내가 함께 있을까. 너는 완전히 시력이 소실된 나를 받아들일 수 있을까. 눈먼 장애인이 너를 욕심내도 되는 걸까. 그래서 나는 네가 더 망가지길 바랐다. 네가 나만큼 망가지면 당당히 네 옆에 있을 수 있을 텐데.


첫 번째 소설 『네가 없는 시작』은 성희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야맹증이 심했던 성희는 한 학년 선배 ‘너’와 사랑에 빠지지만, 곧 실명하게 될 거란 사실을 알게 된다.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지만, 짐이 되긴 싫어서 차라리 그 사람이 더 망가지길 바라는 장면에선 너무나 큰 절망이 느껴졌다. 결국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말 앞에 무너진 성희의 모습. 화가 나 분을 삭이며 동네를 걷지만, 눈이 보이지 않아 가로등 아래만 골라 동네를 빙빙 도는 장면에서는 나도 같이 무너졌다. 너의 불행을 바라는 그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었고, 퉁퉁 부은 눈으로 출근했다. 사장님이 사무실에 안 계실 때 틈틈이 읽으며 또 틈틈이 울었다.

두 번째 이야기 『내 안의 검은 새』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시력이 나빠지는 성희와 아버지의 갈등, 그리고 미래에 대한 절망이 한층 짙게 그려진다. 동창 지희로부터 취직 제안을 받아 서울로 올라갔지만, 그곳은 다단계였다. 큰소리치고 집을 나섰지만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는 성희.

보이지 않는 눈과 앞이 막막한 삶, 그 두 겹의 어둠 앞에서 성희가 느끼는 좌절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세 번째 『브라자는 왜 해야 해?』에서는 맹학교에서 활약하는 성희를 보여줘 절망 속에서 새롭게 피어난 꽃을 볼 수 있었다. 에세이 속 조승리작가님처럼 당돌하고 당당한 모습이라 좋았다.

네 번째 『나의 어린 어둠』에서는, 눈이 보이지 않아 안과를 찾은 성희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마치 처음으로 돌아간 듯한 전개. 밭일로 바쁜 엄마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홀로 향한 서울의 안과에서 들은 실명 판정. 딸의 절망을 함께 겪는 엄마의 모습 앞에서, 도대체 어떻게 울지 않을 수 있을까.

이전에 출간된 산문집을 읽으면서도 많이 울었지만, 그땐 어디까지나 작가님의 이야기였다. 에세이 속 절망은 ‘이해’하는 것이었다면, 이번 소설에서는 그 절망이 온전히 ‘내 것’이 되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나는 성희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에세이 『소설가가 되었다』의 문장, “나는 캄캄한 눈으로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내놓겠다고 다짐한다."라는 말이 오래도록 가슴에 맴돈다. 점자판과 음성 프로그램이 깔린 컴퓨터, 소리를 들으며 타자를 치고, 손끝으로 점자를 더듬어가며 퇴고하는 과정들까지. 작가님의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마음은, 언제나 그렇듯 설렘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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