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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게 묻다
김희진 지음 / 폭스코너 / 2025년 4월
평점 :
공항은 식물원의 유리 온실을 닮았다. 어디에 앉아 있든 유리 벽과 유리 천장은 시시각각 달라지는 햇살을, 기온과 날씨를 과장하지 않고 그대로 전달했다. 때때로 너무 환하고 밝아 이곳에서 생겨나는 모든 감정들은 나에게 들켜버리기 일쑤였다. 투명한 공기 사이사이로 떠다니는, 기대에 찬 설렘과 웃음들. 한마디로 ‘부러움’이라 뭉뚱그릴 수 있는 그것들을 발견하고 나면 내가 이곳에서 챙겨가게 되는 것은 좌절을 비롯한 박탈감과 위화감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도 이 공항에 오고 말았다. 너무 광활하고 거대한 나머지 여기에 앉아 있으면 우주 속의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 같아서, 그리고 나만 이렇게 살게 내버려두지 않겠지 하는 불만이 소소한 기대로 바뀌게 될 것 같아서 찾게 되는 이곳은, 나에게 유일하게 허락돼온 일탈의 장소이자 상상과 가능성의 장소였다. <같은 일요일>
첫 이야기 [오후에게 묻다]부터 주인공들은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 있다.
누군가는 벗어나려고 몸부림치고, 누군가는 그저 조용히 받아들이고, 또 누군가는 느리지만 자기만의 방식으로 길을 찾아간다. 어떤 인물은 스스로를 극한까지 밀어붙이기도 한다.
그 과정은 때로는 어이없을 정도로 처절했고, 또 때로는 아무런 발버둥도 치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이는 모습에 가슴 한켠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이야기들은 세상의 부조리함을, 빈곤이 끊이지 않는 삶을, 상실의 고통을,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사랑을 가장한 무언가를 말한다.
여덟 작품 모두 닮은 듯 다르다. 그래서 더 다채롭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여러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떤 이야기는 재밌는 소설로 재밌게 읽혔고, 어떤 이야기는 내 이야기처럼 읽혔다.
누군가의 눈엔 보이지 않을 그들의 안간힘에 공감하며 읽는 동안 많이 울고, 위로도 받고, 나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어떤 외출], [같은 일요일], [늙은 밤]이다.
새로 발급받은 교통카드를 쥐고 마치 ‘남들처럼 살아도 괜찮다’는 허가증을 받은 것처럼 기뻐하던 [어떤 외출] 속 남자의 모습, 여권을 만들며 새로운 가능성에 설레던 [같은 일요일] 속 남자의 모습, 그리고 부모의 죽음을 예감하며 검은색 넥타이를 매야 한다고 울던 여섯 살 아이의 모습.
이 장면들은 아마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