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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 리스트
나태주 지음, 지연리 그림 / 열림원 / 2024년 8월
평점 :
풀꽃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을 처음 알게 된 건 30대 초반에 함께 했던 동학년 선생님의 교실에서였다. 교실 환경판 한 귀퉁이에 적혀 있었던 짧은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옆반 선생님은 이 시가 너무 좋지 않냐며 물어 오셨고, 나는 건성으로 그렇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은 말이었음을 지금에서야 고백한다.
아직 10년 차가 되지 않았던 새내기(?) 교사였던 나는 교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힘겨웠었다. 교실은 다툼이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때로는 작은 말다툼으로 시작된 아이들 간의 싸움이 학부모 싸움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있었고, 나는 지쳐갔었다. 고장난 마음에 아무리 예쁜 시를 들이켠다고 해서 마음이 금세 회복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나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한채 잊혀져 갔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몇 해가 지나 ‘풀꽃’을 다시 만났을 때는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마음이 싹텄기 때문이다.
특히 풀꽃 시인으로 유명한 나태주 시인이 초등학교 선생님이셨다는 사실은 나에게 큰 파동으로 다가왔다. 이는 글쓰기가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희망을 주었다. ‘나도 글로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가 될 수 있겠구나.’라는 꿈이 생겼다. 나태주 작가님은 ‘시인’을 넘어 ‘가능성’의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 뒤로 작가님의 시를 조금씩 가까이 하게 되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다. 이는 시에도 딱 들어맞는다. 시의 세계는 오묘해서 정말로 아는 만큼만 이해하고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한 페이지 가득한 시를 만나기도 하고, 또 때로는 한 두 줄로 마무리된 시를 만나지만 시에 대한 이해는 글자 수에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작가의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는 한 시는 알 수 없는 비밀 암호일 뿐이다.
나태주 작가님의 시집인 <버킷리스트>도 그랬다. 여러 번 낭독을 해봐도 지금의 나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시들이 수두룩 했다. 다만, 시집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사랑’과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 정도만 알 수 있었다. 그 많은 시들을 시인의 감성으로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 중 일부라도 지금의 ‘내가’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 특히 마음이 몽글몽글해지는 그림과 함께여서 더 마음에 들었다.
<버킷리스트>는 3개의 주제 안에 여러 편의 시들이 묶여 있다.
버킷리스트 1. 내가 세상에 나와 해 보지 못한 일
버킷리스트 2. 내가 세상에 와서 가장 많이 해 본 일
버킷리스트 3. 내가 세상에 나와 꼭 해보고 싶은 일
작가의 암호 같은 시들 중에서 그래도 나에게 의미있게 다가오는 시들이 많았다. 여기에 그 시들을 담아 본다.
23쪽
책
첫 문장 쓰기가 어렵다
아니, 첫마디 말 하나
단어 하나 쓰기가 어렵다
무어라 쓸까?
생각 끝에 ‘인생’이라고 써본다
그런 다음 ‘기억’,
그리고 ‘나’라고 써본다
그렇구나!
책은 내 인생의 기억을
쓰는 것이었구나.
‘책’이라는 시를 읽고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일인 글쓰기가 모두에게 필요한 이유를 이만큼 잘 설명한 시가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우리의 인생이 좀더 가치있고, 의미있을 수 있도록 글을 쓰고, 책을 쓰며 나 자신을 글에 담고 싶어졌다.
34쪽
아름다움
놓일 곳에 놓인 그릇은 아름답다
뿌리 내릴 곳에 뿌리 내린 나무는 아름답다
꽃필 때를 알아 피운 꽃은 아름답다
쓰일 곳에 쓰인 인간의 말 또한 아름답다.
쉽게 내뱉고 후회하는 말들이 얼마나 많을까?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 있을 때 아름답듯이 말도 그렇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밖으로 나왔을 때 아름다운 말과 그냥 마음 속에 담아두어야 아름다운 말이 있음을 시를 읽으며 깨달았다. 칭찬과 사랑의 말은 수시로 밖으로 내뱉고, 비난과 질책은 입 밖을 벗어나지 않도록 조심하자고 다짐했다.
이 외에도 짧은 시 한 편이 책 한 권이 주는 깨달음에 버금가는 것들이 많았다. 이것이 바로 시의 매력인 것 같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처럼 시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을 확장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잔잔한 호수에 던진 돌이 파문을 만들듯이 마음의 깨달음을 얻고 싶은 분들께 나태주 작가님의 <버킷리스트>를 추천하고 싶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진심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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