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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해방일지 - 우리 내면의 빛을 깨워줄 교사들의 아름다운 성찰일지
권영애.버츄코칭리더교사모임 지음 / 생각의길 / 2023년 4월
평점 :
어릴 적 나의 장래희망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 유난히 수줍음 많던 나에게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아봐 주시고, 교외 미술대회에 적극 추천해 주셨던 담임선생님이 계셨다. 그해 1년 동안 나는 여러모로 성장했다.
선생님이라는 직업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한 아이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흥분되었다. '나도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다.' 그 뒤로 장래희망을 적는 칸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이라는 꿈을 적기 시작했다. 나는 꼭 선생님이 되고 싶었다.
"선생님 하지 말아라." 선생님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역설적이게도 나에게 '선생님'이라는 꿈을 갖게 하셨던 담임선생님께서 선생님을 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를거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씀을 하셨다. 어린 마음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이 나더러 선생님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당시 담임 선생님께서 하셨던 말씀의 진짜 마음을 말이다.
선생님을 하며 매순간 모든 것이 힘들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매순간 모든 것이 행복했던 것도 아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꽃길만 걷는 예쁜 직업이 아니었다. 처음 교단에 서서 우왕좌왕하며 울었던 내가 20년차 경력이 된 지금도 가끔씩 울게 만드는 직업이다. 다 큰 어른들이 선생님이 되어 운다.
권영애 선생님은 몇 년 전 '버츄 프로젝트' 연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난생 처음 '미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아이들 마음 속에 '미덕 보석'이라는 것을 찾아주고 싶었다.
우리 마음 속에 52가지의 미덕이 잠자고 있으니 그것을 깨울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는 이야기에 희망이 생겼다. 학급을 운영하면서 어려움을 느끼던 차에 새로운 교육 이념은 신선하다 못해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 동아줄 같았다. ‘나도 버츄로 아이들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다.
권영애 선생님이 출간하신 책을 구입하고, 오프라인과 온라인 연수가 개설되었다는 말이 들리면 득달같이 달려갔다. 강의를 들을 때면 나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의욕이 들었고, 몇 번의 시도와 실패를 거듭했다. 그렇게 ‘나는 안 되나보다.’라는 생각이 자리잡으며 한동안 ‘버츄’를 내려 놓았다.
또다른 교육서를 읽으며 아이들을 위한 교육, 선생님이 함께 행복해지는 교육을 꿈꿨다. 가끔은 기대 이상으로 가슴 뿌듯해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이 너무 아까울 정도로 눈물나게 고마운 순간들을 만날 때도 있었다.
처음 교단에 섰던 20년 전과 지금은 교육환경이 많이 달라졌다. 교육지원과 시설은 나아지고 있지만 그 외의 것들에서는 더 나아졌다는 대답을 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선생님에게 욕을 하는 아이, 수업 중 의자를 들고 던지려고 위협하는 아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책상에 설치했던 가림막을 휘둘러 위협하는 아이, 새학기 2달 동안 ‘멍멍멍’ 짖으며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지쳐갔다. 그때마다 “OO는 선생님이 담임선생님이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이렇게 아이들을 위해 노력해 주시잖아요.”라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이 더는 위로가 되지 않았다. 마음이 먹먹해질 뿐이었다.
<선생님의 해방일지>는 권영애 선생님과 버츄코칭리더교사모임 선생님들이 공동 집필한 책이다. 다양한 지역, 다양한 연령, 다양한 상황에서 선생님들이 경험한 어려움을 해결해 나간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분명 다른 시공간을 살았을 선생님들인데 글을 읽다보면 무한 공감되는 이야기가 많았다. 그들 또한 힘들었고, 잘 이겨낸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여전히 선생님의 자리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안다. 어제도 선생님이었고, 오늘도 선생님으로 지내고 있는 나는 내일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선생님이고 싶다는 것을 말이다. 작년에 나를 그렇게도 힘들게 했던 아이가 올해 급식실에서 만나면 굳이 나를 따라다니며 인사를 한다. 저 멀리서 손을 흔들고 웃으며 ‘선생님’을 찾는다. 그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교육은 스며들고 서서히 반응하는 것임을 배워가고 있다. 지난 1년간 자신을 향해 공들였던 선생님의 마음이 지금이라도 조금씩 보인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지난 해가 충분히 값진 시간이었음을 알게 한다.
그 아이들이 초등학교 시절 언젠가 자신을 위해 마음과 정성을 들였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어렴풋이라도 기억할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내가 선생님으로서 이 자리에 있을 이유라고 본다. 교장, 교감 선생님의 격려도, 주변 선생님들의 칭찬도 아닌 진짜 힘이 되는 말은 아이들에게서 나오는 것임을 <선생님의 해방일지>를 읽으며 다시금 되새겨 본다.
새학기 들어 2달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수업 중 돌아다니고, 친구들과 다투는 아이가 있다. 꾸준한 지도에도 전혀 나아지는 것 같지 않는 아이의 모습에 지쳐가던 어느날 아침, 아이가 꽃을 내밀었다. 양손에 작은 민들레가 한 송이씩 들려 있었다. 학교 오는 길에 선생님 드리려고 꺾어 왔다는 노랗고 환한 민들레 두 송이에 순간 뭉클했다. 사랑한다는 말 보다도, 선생님이 너무 좋다는 말 보다도 아이가 수줍게 내민 그 꽃이 더 의미있게 다가왔다.
모르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스며들고 있었다는 것을 아이가 알려주었다. 조금만 더 천천히 기다려 주자고 다짐했다. 아이가 제 빛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함께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급해 하지 말고 조금만 더 기다리기로 했다. 해방이라는 단어는 아이들 밖에서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하는 이 공간에서 찾아가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늘도 아이들에게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선생님들께 <선생님의 해방일지>를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진심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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