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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죽음 - 살아 숨 쉬는 현재를 위한 생각의 전환
헨리 마시 지음, 김미선 옮김 / 더퀘스트 / 2022년 7월
평점 :
내가 유일하게 부정적으로 느끼는 전문직이 의료인이다. 그중 제일 싫어하는 건 병원보조원. 엄마가 그쪽이라 더 그렇다. 엄마를 싫어하는 건 절대 아니고, 오히려 조금이라도 알기 때문에 기준이 높아졌다고 해야할까
아는 만큼 안다고 하는 건 상처도 포함이 된다. 당한 사람만 아는 고통이라.
무엇보다 나만 아프면 나 혼자 참고 끝날 일인데, 가족이 그러면 진짜 미치려 한다. 당신 가족이었어도 그렇게 할 거예요? 묻고 싶었지만, 당연히 그렇게 안 하겠지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다른 병원을 물색할 수밖에.
물론 끝까지 포기하지않는 좋은 분들도 계셨지만, 사람이란 게 부정적인 것을 더 강하게 기억하기 마련이다.
모든 의료인을 비난하는 게 아니다. 다만 적어도 엄마 정도의(엄마는... 다정하지 않아서 환자의 사정을 일일이 고려하진 않지만, 자신을 찾아온 모든 환자에게 확실히 답변을 주려하고, 환자에게 무리가 안 갈 최소의 치료만 하는 게 지침이다.) 책임감은 가질 줄 알았던 것에 대한 실망이다.
그래서 서문의 '의사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다'라는 말이 별로 달갑지는 않았다. 사람인 것과 누군가를 무시하는 건 엄연히 다른 문제기에.
책 뒤쪽으로 갈수록 저자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할만한 내용들이 나온다. 환자를 지극히 높은 위치에 있는 의사인 자신과는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는 언급이 그렇다.
다만, 그의 생각이 어쨌든 간에 환자를 위해 애썼다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단순히 평소와 다른 이상을 느낀다고 해서 한밤중에 피곤하던 몸을 일으키고 곧장 그에게로 달려갈 수 있는 것이 절대 쉽지 않음을 안다. 사랑하는 가족의 병간호도 쉽지 않은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을 정성을 다해 치료하는 건 의사로서의 책임이 없고서야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많은 돈을 줘도 못할 것이다. 특히 누군가의 가족을 위해 자신의 가족을 포기한다는 점이 그렇다. 저자가 신경외과 의사가 되길 소망하고 선배들에게 들었던 말은 "자네의 아내는 어떻게 생각하나?" 였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그간 만났던 의사들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으로 읽기로 했다.
한낱 인간인 내가 모든 것을 몰랐을 뿐이라고. 당신이나 나나 약한 인간일 뿐이라고. 누구나 실수도 하고 잘못도 하는데, 그때 당신과 같이 있던 사람이 나였을 뿐이라고.
나는 지금 괜찮게 잘 살아있고 그 사람도 잘 있으니까 그걸로 감사하자고.
인간의 뒤섞인 감정을 이리 차분하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의사로서 당시 자신의 심리변화를 서술하면서도 막상 그의 내면에 대해서는 묘사를 최대한 자제한다.
이런 서술 방식은 독자가 생략된 뒷면이나 이면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만들어, 이야기에 깊이를 더하고 독자마다 다른 인상을 갖게 된다. 서로 상상하는 경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책이 말하는 이야기에는 인간의 추악한 부분도 존재한다. 아마 삶의 끝에 가장 가까운 직업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가 서론에서 처음 꺼냈던 의사도 한 사람이다 라는 말은 그저 동정을 사기 위한 말이 아니라,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말하는 거였다. 잘못, 실수, 폭행, 죄...
아 그렇다. 그들도 사람이다.
간접적으로 들은 그의 고충은 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동시에 다른 사람을 더 생각하게 한다.
언젠가 목사님께서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되새길수록 참 많은 걸 생각하게 한다. 책이나 현실이나 참 괜찮은 죽음을 맞은 사람은 생각보다 몇 없다.
그리고 역자의 적절하면서도 세심한 덧붙임이 돋보인다. 위에서 엄마가 의료인이라 했지만, 자식인 나의 의학적 지식은 일반인이랑 비슷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본격적인 전문 용어에 좀 당황했는데, (소개로는 보통의 에세이 느낌이 강했음) 역자가 그때마다 설명을 잘 해줘서 읽기가 편했다.
제일 좋은 건 적절한 양과 길이였는데, 이 또한 얼마나 고민이 많이 필요한 작업이던가...! 쓸데없이 너무 많으면 독자를 무시하는 느낌이 들고, 읽는 데 방해된다. 그렇다고 너무 없으면 불친절한 느낌을 받는다. 특히 의학 분야는 단어 하나를 이해하려 해도 사전, 위키, 블로그 다 봐야 하니까. 역자가 그 사이를 적절히 조율해서 글 읽기가 편했다.
여러번 죽음을 마주한 저자의 글은 내 생각보다 더 고요해보였다. 누군가의 초라한 죽음에도 개의치않는다. 정확히는 그 환자와 그 환자를 살리기 위해 쏟았던 많은 노력에 더이상 연연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가 책임져야할 남은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명의 무게가 어떤지에 대해서 견딘 시간에 비해 무뎌지지 않았다. 다만 어떻게 해야 더 많은 생명을 살릴 것인가에 대해서 끝없는 고민을 하는 모습이 애잔할 뿐이다.
그는 한 명의 인간인 동시에 좋은 의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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