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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다는 건 - 내게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야생에 대하여
김산하 지음 / 갈라파고스 / 2020년 9월
평점 :
야생 영장류 연구의 권위자로 알려진 김산하 저자를 다큐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인도네시아 긴팔원숭이를 연구하는 모습을 담은 프로그램이었다. 밀림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연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야생동물을 연구하며 터득한 생명존중의 중요성을 담은 책이다. 끊임없이 동물을 관찰하고 인간과 동등한 주체로서의 생명을 말하는 외침이 간절하다. 저자는 야생의 세계를 통해 살아있음이 무엇인지 알았다고 한다. 살아 있음을 실천하는 방법으로 많은 생명체와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한 흔적이 많았다. 요즘 전 세계를 발칵 뒤집은 코로나는 인간의 무분별한 이기심이 부른 자업자득의 폐해임을 경고한다. 어떤 사회적 현상도 인간으로 인하지 않은 것은 없다. 평화도 폐허도 인간의 부산물이다. 지나친 인본주의에서 오는 오만함은 결국 생태파괴를 불렀다. 생태계 파괴는 인간은 물론 동물까지 목숨을 위협했다. 살아 있다는 의미의 중요성은 함께 산다는 의미와 같다. 오직 인간만 잘 사는 자연 생태계는 없다. 이 진실을 일상의 여러 경험에 빗대어 이야기 한다.
인간의 일상은 과다한 물건으로 뒤덮였다. 일생 단벌 신사로도 맵시 나는 동물이다. 하지만 인간만이 사계절마다 다른 옷을 입는다. 냉난방으로 조금의 더위와 추위도 거부한다. 저자는 온몸으로 계절을 느끼는 태도를 권한다. 집도 마찬가지다. 인간만이 집이라는 울타리를 짓고 그 안에 온갖 편의 시설을 구비한다. 둥지라고 불리는 조류의 집은 새끼를 출산하고 보호하는 역할이 크다. 사계절 더위와 추위를 온몸으로 맞는 야생동물을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조금만 춥거나 더워도 호들갑을 떨며 기계의 힘을 빌리는 인간이다. 동물의 씩씩함과는 비교할 수 없다.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고 견디는 일이 그들의 모습이다. 적자생존의 원리를 터득한 본능이다. 자연의 혜택 못지않게 혹독한 시련도 견뎌야 유지되는 생명, 생태계의 원리에 충실할 뿐이다. 인간만이 자연의 원리를 편의대로 조정하는 훼방꾼이다.
모든 만물에 공평한 자연, 그 속에서 행복과 의미를 찾는 일은 각자의 몫이다. 온전히 사계절을 느끼는 자세는 자연이 우리에게 준 선물을 기쁘게 허락하는 방법이다. 개체성의 고유함은 우주 만물에 해당한다. 들판의 이름 모를 잡초 한 포기도 그만의 고유성이 있다. 누구나 특별하면서도 일반적이다. 누구나 특별하기 때문에 그 누구도 다른 무엇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안된다. 역설적으로 그 이유 때문에 특별함은 일반적인 상황이 된다. 인간만이 우월하다는 인식으로부터 발생한 많은 사회문제는 결국 인간종의 도태로 이어진다. 많은 생명의 씨를 말려버린 인간이다. 인간으로부터 생명권을 침해받은 이들은 질긴 생명력으로 결국 인간을 위협하는 바이러스로 살아 남는다.
기다림의 미학, 저자는 모든 아름다움엔 기다림이 있다고 말한다. 야생동물의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도 먹이를 위한 기다림은 신성할 지경이다. 적절한 순간을 포착하기 위한 기다림의 상태다. 생명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살생만을 준수하는 그들의 세계는 욕심이 없다. 종족 번식과 살아가는 이유가 전부다. 많은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각 자 살아가는 일에 집중할 뿐이다. 이들의 공격성은 먹이를 구하기 위한 본능이다. 이 본능의 연결고리 속에 생태계의 위계질서가 유지된다.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여러 생물들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여행의 즐거움 또한 기다림의 미학이다. 여행을 계획하고 설레는 감정이 세로토닌을 분비시켜 행복함을 준다. 겨울잠 자는 동물도 도토리를 모으는 다람쥐도 현재 살아있음에 충실하는 기다림의 자세다.
사랑의 부재 시대다. 저자는 요즘 유행하는 손가락 하트를 우스꽝스럽다고 한다. 기계음처럼 들리는 공허한 말들이 사랑을 희석시키고 있음이다. 정작 사랑을 드러내야 하는 상황에서는 침묵과 방관을 취한다. 사랑의 적용 범위가 진정 관심과 애정을 필요로 하는 곳을 향해야 한다는 말은 무척 공감된다. 저자가 과거에 강아지를 잃은 슬픔은 애착의 중요성을 말한다. 애착관계에 있던 어떤 존재는 인간관계 못지않게 상실감이 크다. 퇴근길에 온몸으로 반기는 강아지는 어떤 인간의 절실한 애정 표현 못지않게 진솔하다. 소통이란 반응하기라고 한다. 하루 종일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의 격렬한 반응은 어쩌면 과장된 제스처라도 나에게 반가움의 반응을 보이는 한 존재에 대한 목마름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마음을 다 표현하면 왠지 손해 보는듯해서 멈 짓 한다. 하수 같아 좀처럼 진심을 다 드러내지 않는다. 상대의 반응에 따라 움직인다. 마음의 크기는 그대로인데 우리는 왜 반응에 인색할까. 나조차도 그렇다. 상대의 반응에 기댄다. 온몸과 표정으로 반응하는 강아지는 솔직하다. 양가감정 속 인간의 복잡함이 피곤하다. 강아지를 본받을 일이다.
저자는 살아있는 야생 여우를 보고 여우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한다. 오죽하면 “여우처럼 생긴 생물이 생겨났음은 기적이요 축복이요 아름다움이다. 여우의 고유한 미학이 여우의 본질이다.”라고 언급한다. 이 대목을 읽고 여우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날렵한 개와 비슷한 외양이지만 여우는 본래 야성이다. 야성에 감추어진 아름다운 자태와 동작을 저자는 극찬 한다. 동물이나 어떤 대상을 관찰할 때 취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그 상태를 그대로 지켜보는 관조의 시선이다. 사랑하는 대상에 어떤 욕심도 없다. “사랑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나무 뒤에서 숨죽이고 지켜보며 남몰래 감탄하는 것“ 그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 이런 모습이 생물을 사랑하는 상태라고 말한다. 밀림에서 야생동물을 연구하며 멀찍이 숨어서 관찰하는 저자의 모습을 본 다큐가 생각난다. 그들의 일상을 엿보러 온 인간이 취할 수 있는 태도다. 그저 숨어서 엿보다가 느닷없는 행운처럼 그들의 일상을 포착할 행운을 얻는 일, 그것만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영역이리라.
야생동물에 대한 미학적 시선이 있다. 한 동물을 유심히 관찰할 때 생생히 드러나는 그들만의 개성을 말한듯 하다. 저자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일을 즐겼다고 한다. 저자의 이런 성향은 어떤 대상을 느긋하게 관찰하고 개체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줄 아는 시선을 갖게 했으리라. 이는 생명존중으로 이어졌고 동물의 가장 원초적 서식지인 밀림으로 향하는 용기도 생겼을 터다. 생명 존중은 이어서 동물보호 운동으로 연결되어 ‘동물 축제 반대 축제’를 개최한다. 울산 고래축제의 문제점이나 화천 산천어 축제의 문제를 지적해 경각심을 일깨운다. 나도 동물을 보호하는 것 까지는 이해했다. 하지만 고래나 산천어는 일반적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인데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자세히 알아보고 나서는 이런 운동을 하는 이유가 충분히 납득이 되었다. 저자의 저서 중 <스톱>시리즈나 <김산하의 야생학교> <제돌이의 마지막 공연>등 동물 사랑에 앞장서는 실천가의 역사 또한 생생하다. 자연을 공유하는 모든 존재들과 함께 ‘살아있다’는 의미를 제대로 확인했다. 이 책은 야생동물을 연구하며 생명사랑을 실천하는 김산하 작가가 우리에게 권하는 생명의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