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달동 미술관
피지영.이양훈 지음 / 행복한작업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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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과는 무관한 두 작가가 미술에 빠져 쓴 책이다. 한 명은 책 1000권을 읽고 미술 전문가가 되고 싶어 했다. 다른 한 명은 작가로서의 재능을 알아 본 출판사 출신 프리랜서다. 미술적 재능을 알아 본 출판사 출신 저자는 힐링 미술관을 콘셉트로 출간할 작품을 구상한다. 평소 알려진 명화를 등장시켜 스토리와 어울리는 시놉을 구상한다. 이렇게 해서 명화와 한 개인의 삶이 만나는 순간을 소설로 풀어 냈다. 거기에 화가의 내력과 그림에 대한 전문적 해설을 곁들였다. 4명의 주인공이 옴니버스 형식으로 등장한다. 명화를 관람 한 후 그림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개인사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속도감 있게 그렸다. 명화를 감상하는 재미와 소설적 흥미를 버무린 작품성까지 갖춘 책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공무원 시험에 내리 낙방하는 29세 청년 도현이 주인공이다. 어머니가 남겨 준 고향집으로 돌아오며 이야기는 시작한다. 주인 없는 빈 공간을 버티던 오랜 집은 폐가 마냥 스산하다. 그는 옥탑방에 둥지를 틀고 집과 근무처만 오가는 은둔자 신세다. 어머니의 죽음을 방치했다는 죄의식과 현재에 대한 자책감에 매사에 주눅 들었다. 그런데도 자신의 일그러진 인상은 생각 못 하고 동네 노인의 싸늘한 시선은 거슬린다. 무의미하게 지내던 어느 날 영달동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발견한다. 생면부지지만 낯익은 도슨트의 해설로 고흐와 마코프스키, 시시킨의 그림을 소개받는다. 이런 과정 속에서 고흐의 아를의 침실속에 담긴 여러 의미는 도현의 삶을 바꾼다. 도현을 중심으로 고향 여자친구 정현과, 출소 후 통영마을에 정착 한 인철, 이종 사촌 형 창호의 삶을 본다. 알수 없는 힘에 끌려 영달동 미술관에 입장한 세 남자는 현실같은 비현실을 굳이 구분 하지 않는다. 그 경계는 사라졌고 어떤 식으로든 미술과 만나는 자신에게 열중한다. 도슨트의 해설을 따라 각자 현실을 반추한다.

 

 

때때로 그림은 창작자가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을 이야기 한다.”라는 가림막 글은 이 책을 관통하는 문장이다. ‘고흐의 아를의 침실이 첫 작품으로 등장한 이유는 이 작품과 주인공 도현의 삶과의 밀접한 역사 때문이다. 소설이 진행 됨에 따라 서서히 드러나는 명화와의 개연성은 제법 탄탄하다. 러시아 사실주의 화가 일리아 레핀의 아무도 기다리지 않았다의 해석 또한 일품이다. 평소 일리아 레핀의 작품을 눈여겨보았던지라 좋아하는 그림의 전문적 해설을 보는 재미가 컸다. 그림 속 초상화 액자의 의미까지, 화폭에 담은 붓 칠은 어느 하나 무의미한 부분은 없음을 느꼈다.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에서 손의 의미도 놀라웠다. 이런 그림들은 도슨트의 해설을 통해 인철의 삶도 바꿨다. 그림은 보는 자의 것이라는 가림막 글은 이들 주인공들이 그림 속에서 자신의 인생을 발견하고 답을 찾는 놀라운 경험을 증명한다.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그림 또한 수많은 상징을 품고 있다. 정면의 아리스토 텔레스와 플라톤을 중심으로 각 인물들이 취한 몸짓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게 명화의 가치는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 있다. 컨덕터로서의 라파엘로와 마르게리타의 사랑도 그림을 통해 영원성을 얻었다.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사라진다. 감상하는 자의 눈을 통해 영원히 살아 함께 한다. 밀레의 낮잠처럼 평화를 부르는 굳건한 사랑의 의미를 깨우친 창호다. 인간은 매혹과도 같은 도취 상태, 일명 낭만적 사랑을 꿈꾼다. 이전의 창호처럼, 도취상태의 유효기간이 지나면 환멸과 실망만 남는다. 만족 없는 기형적 사랑의 환상, 하지만 낭만적 사랑의 달콤함은 피하기 힘든 인간의 숙제다. 쉬이 빠져 나오지 못한 창호의 모습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책의 주인공들은 명화를 통해 현실을 자각하고 희망의 내일을 발견했다. 도현 어머니의 아를의 침실을 통해 두 저자가 건네는 말은 묵직하다. 도현은 그림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알았다.

그토록 그리워 한 대상도 보았다. 간절하면 이루어진다. 이들이 눈으로 바라본 그림, 그림 속의 물체는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 가슴으로 뛰어 들었다. 결국 삶을 바꿨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들은 다시 태어 났다. 마침내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맞이 할 터다. 스토리를 연결해 명화를 소개하는 영달동 미술관에 나도 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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