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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그녀들의 책 읽기
손문숙 지음 / 힘찬북스(HCbooks) / 2020년 9월
평점 :
글쓰기는 한순간에 시작되지는 않는다. 과거 독서를 꾸준히 했거나 뭔가를 써 온 내력이 쌓여 본격적으로 쓰고자 하는 욕망이 자리 잡는다. 쓰고자 하면 읽기는 더 구체적이 되고 주변의 사물은 새롭게 다가온다. 평범한 공무원 생활을 하던 저자는 50대가 되어 쓰는 사람, 즉 작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 책은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그동안의 활동을 보여준다. 저자는 40대 후반에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과거 학창 시절에 국어교사나 사서가 되고 싶었던 자신의 꿈도 반추한다. 10세에서 26세까지 써 왔던 일기는 글쓰기의 내공이 되었다. 결국 40대 후반에 본격적으로 글쓰기 입문 공부에 들어간다. 잘 쓰기 위해서는 다독이 선제인지라 독서 토론 공부도 병행한다. 직장에서 동료 몇 명과 꾸준히 독서토론을 했다. 토론을 위해서는 먼저 양서를 선택하는 과정이 있다. 나도 독서토론의 긍정적 시너지를 알기에 저자가 토론을 하면서 얻은 독서의 내공이 짐작된다. 혼자 읽기와 어떻게 읽었느냐를 나누는 것은 한 권의 책을 몇 권의 영역으로 확장하는 힘을 준다. 이 책은 저자가 토론 서로 선택해 독서토론 후의 감동을 잘 다듬어진 문장으로 엮어놓은 책이다. 고전을 중심으로 현대문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책을 선보인다. 인간, 죽음, 여성, 사회라는 주제로 총 27편의 책을 풀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인간과 죽음은 불가분의 관계이며, 이 시대의 여성과 사회의 복합적 가치를 세세히 풀어 보인다.
1장 <인간>편에 등장하는 책은 주로 개체로서의 인간 탐구, 나의 발견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주제로 한 책들이다. 첫 소설 <데미안>은 자기발견의 대표격인 소설이다. 세상 선량한 상태에 안주하던 어린 싱클레어가 다양한 인간관계가 섞인 학교생활을 하는 시점부터 선과 악의 경계를 경험한다.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온 인간의 악의성을 발견하고 세상에 눈 뜬다. 일생일대의 혼란기에 나타나 싱클레어의 구원적 의미를 준 데미안은 헤세가 말하는 선악을 동시에 겸비한 인간의 본질적 상징이다. 또한 누구도 한 개인을 구원할 수 없으며 “그 어떤 사람도 완전히 자기 자신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기 자신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말 한 데미안 속의 헤세의 말이 깊이 와닿는다. 또한 필경사 바틀비가 인간성이 말살된 체계에서는 어떤 반응도 거부하며 스스로의 자존감을 지키고자 했던 점도 저자가 강조한 인간에 맞닿는다. 파스칼 메르시어의 이명 페터 비에리의 교양서는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책이다. 깊은 철학적 관점에서 소설이나 인문학서를 써 온 페터 비에리는 그가 추구하는 나 발견하며 인간을 깊이 탐구하는 길을 추구해온 작가의 진솔함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지혜로운 사람’과 ‘어리 석은 사람’중에 어리석은 사람이 세상을 변화시켜 왔다는 신영복의 글을 통해 나의 오늘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2장 <죽음>은 인간의 필연이며 생과 동의어임을 말한다. 외면하고 싶은 죽음이라는 명제는 죽음을 직시하고 왜 사는지 자문했을 때 죽음의 자세도 열릴 수 있다는 뜻이리라. “죽음은 생명이 끝나는 것이지 관계가 끝나는 것이 아니네”라는 모리 교수의 말은 관계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오늘 우리의 소중한 관계에 대해 깊이 새겨야 할 문장이다. <삶의 한가운데>의 니나 역시 열정적으로 삶을 누빈 소설 속의 인물이다. 니나는 생과 사를 분리하지 않고 오늘에 충실한다. 양심에 따라 즉각 행동하는 실천인의 삶을 보인다. 니나를 목숨보다 사랑하면서도 한 발자국 멀리서 이성적인 태도만 고수했던 슈타인 박사에게 던지는 니나의 삶은 질투 날 정도로 도전적이다. 어린 모모가 의지한 로쟈 아줌마는 인간이 믿고 의지하는 존재의 가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모조차 버린 모모를 보살피고 키워준 로쟈아줌마의 죽음은 모모에게 어떤 슬픔으로 다가왔을지는 다 안다. 아니 어찌 그 슬픔을 헤아릴 수 있을까만 모모 혼자 치르는 장례의식과 보내지 못하는 마음을 비통하며 소설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라 뭉클하다. 모모를 통한 소중한 이의 죽음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 책은 사랑 없인 살 수 없다는 인간을 보여준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다시 들춰본 카뮈의 <페스트>는 성실성과 겸손을 말하며 이 기회에 다시 읽고 싶은 책이다.
3장 <여성>편,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며 살기 위해서는 ‘자기만의 방’과 ‘일 년에 오백 파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오백 파운드는 요즘 시세로 4천만 원 정도의 가치라고 한다. 혼자만의 방 즉 서재의 필요성은 공감하는데 4천만 원으로 요즘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글 쓰고 사고하는 여성에게 공간적 경제적 자립은 반드시 필요한 기본 조건임을 지적한 점이 인상 깊다.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이나 <제인 에어>를 쓴 샬롯 브론테 모두 여주인공을 통해 뚜렷한 주관으로 열정적인 삶을 그린 소설이다. “글쓰기를 통해 여성들은 자기자신이 되어야 한다.”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당부는 인상적이다. 남성 아래 여성 없고 여성 아래 남성 없다. 은연중에 뿌리 깊이 존재해 온 여성비하 사상을 거두고 ‘함께’라는 의식으로 확장될 때 서로 존중하는 사회가 온다는 저자의 외침을 <여성>편을 통해 느낀다.
4장 <사회>편은 1장부터 3장 까지를 아우르는 우리 사회의 현주소를 직시하는 장이다.
과거는 시간 속에 사라지지만 기록을 통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할 때 재생한다. 저자는 “타인에게 공감하는 우리”라는 제목으로 4편을 규정했다. 은연중에 만연한 편견과 차별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나부터 동참하고 있음을 발견한다. 집단 이기주의의 행태는 여러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다. 그들을 집단이기주의라고 매도하는 나도 그 집단의 일부가 아닌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광주 민주 항쟁을 그린 <소년이 온다>는 군중의 힘이 어떤 식으로 발현되어야 하는지 알게 했다. 저자는 세월호 사건을 통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다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나 프리모 레비의 <이것이 인간인가> 모두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이는 어떤 죽음도 초월할 수 있는 의지로 삶을 이어간다. 결국 죽음을 불사한 자만이 진정 삶을 산다고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말한다.
마음 깊이 내재된 욕망은 어느 순간엔가 불쑥 튀어나와 실행되었을 때 꿈은 현실이 된다. 일기 쓰기를 시작으로 어릴 적부터 뭔가를 써 오던 저자였다. 구체적으로 체계화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결국 글쓰기 공부를 시작했다. 방법은 독서의 확장을 위해 독서토론을 기획해 실천했다. 그러면서 토론서를 정리해 자신의 글쓰기 역량을 다졌다. 이런 과정을 통해 작가가 된 꿈을 이룬 것이다. 저자가 선택해 일러준 책 속의 이 책들은 어떤 감동보다 강한 울림으로 살아 움직인다. 이 책은 토론의 장점을 통해 역량을 쌓아 글쓰기에 도전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용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