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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방향 - The Day He Arrive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너 아니면 안 돼. 아름답질 않아"
홍상수가 돌아왔다. 원래 이리 착했나, 원래 이리 진지했나?
원, 그걸 모르셨어? 그는 원래부터가 진지하고 착한 사람이야. <하하하>를 볼 땐 "어, 이거 왠지 그냥 너무너무 우습다, 재미있어진다"였는데. 이번엔 좀더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한층 더 진지하고 착한 느낌의 그이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그대로인 그이다.
* 아름답고 착한.
언제부턴가 그가 착함을 계속해서 말하고 있다. 이는 사실 <하하하>에서부터 그가 계속 붙들고있는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때 그 장군님의 말을 생각해보자. "난 좋은것만 본다. 항상 좋은것만 보고 아름다운 것만 보지. 사람들 에게서도 좋은 점만 본다. 어둡고 슬픈 것을 조심해라. 그 속에 제일 나쁜 것이 있단다")
<북촌 방향>에서도.
그가 술집 <소설>의 예쁜 마담(?)을 향해 찬탄하는 말은 "예쁘다, 착하다"는 것이다.
어쩌면 사람이 감동하는 게 그런 걸지도 모른다. 예쁜 것, 착한 것 앞에서.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잊는다. Don't Be Evil. 나쁘고 음모가 가득한 게 판 치는 세상이니까 그게 오히려 너무 신선해졌다.
성준(유준상)은 소설에서 소설의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뒤, 아침에 떠나면서 당부한다.
"좋은 사람들을 사귈 것" "술 마실 때 취하지 말 것" 그리고... 그리고. "매일 일기를 쓸 것. 단 세 줄이라도"
아, 어쩐지 나도 반성하고 싶어졌다. 백현진의 앨범 제목처럼. 반성의 시간. (그런데 이 영화 음악을 맡은 사람이 우연히도 백현진이더라)
* 극단을 같이 말해주면 누구나 속아요
이 영화에서도 <해변의 여인>에서 보여준 것 같은 홍상수식의 진지한 철학은 계속된다.
이번엔 극단에 관한 얘기다. (난 이 설명을 들으면서 왠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혈액형 얘기가 떠올랐다. 혈액형 얘기도 사람 그럴듯하게 속이는 데엔 아주 적합한 띠어리theory이니까)
누가 그런 얘길 한다.
"관상 같은 거 있잖아요. 그거 극단을 말해주면 누구나 속아요"
"당신은 겉으로는 아주 꼼꼼하고 냉정해보이지만, 속으로는 한없이 감상적인 구석이 있습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앞에 있던 여자는 집을 나가버린 강아지 얘기를 하면서 막 우는 거다.
참 나. 근데 세상에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딨냐 말이다. 세상에 믿지 못할 게 있다면 그게 별자리점이랑 관상학이랑 혈액형별 성격, 뭐 이런 거 아닌가?
매사에 사무적이지만 남들이 모르는 연약한 자아를 갖고 있다든지,
침착한 편인데 한번 핀이 나가면 폭발해서 마구 화를 낸다든지.
아니, 안 그런 사람이 있냐고. 예컨대.
근데, 그 극단을 짚어주는 게 어쩌면 예술이다. 그런 극단을 누구나 가지고 있으니까.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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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홍상수는 좋다. 뭔가 씁쓸하게 생각하고 반추하게 하던 홍상수가 이젠 뭔가 포근하게 되돌아보게 하는 홍상수가 된 느낌이다.
초가을에
쨍한 겨울의 시린 느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화면도 좋았다.
첫눈이 온 길과
소설이라는 술집과(아마 이 술집 진짜 있을건데. 유명한 술집 아닌가?)
이러저러한 풍경들도.
아무튼 덧없는 이 계절에 그의 말을 위로로 삼자. 행인들은 외면하고 지나갈지라도.
"서두르지 마. 서두르면 안 돼. 천천히 생각해야돼"
(이상 위에 인용한 대사들은 정확히 적은 게 아니라 머릿속에 저장돼있던 것이므로 약간 틀린 구석이 있을 수 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