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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사랑이 식을 때도 좋을 수가 있을까.
나이를 먹어가고 늙어가는 게 흡족할 수가 있을까.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
그때 비로소 우리에겐 위로하고 위로받을 자격이 생기기 때문에.
우리 안엔 아직도 다 자라지 않은 소년소녀가 있다. 평생 자라지 않을 것이다. 간직한 채, 잊고 살다가, 가끔 꺼내볼 수 있을 뿐이다.
경험은 독이다.
그게 전부가 아닌데,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소년처럼 사랑 앞에 서면, 매번 새롭고 매순간이 두렵다.
발가벗은 채 거울 앞에 서서 스스로의 몸을 유심히 살펴본 적이 있는지. 나의 온 몸 구석구석이 처음 본 듯 낯설다. 그리고 연약하다. 우리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에 한 겹 한 겹 옷을 껴입었지만 우리의 본질은 여전히 소년이고 소녀라는 걸.
찾아올 누군가를 위해 처음인 듯한 텅 빈 눈으로 그를 바라다봐줄 줄 아는 예의,
다가오지 않은 시간을 위해 머릿속을 지우고 백지를 마련해둘 줄 아는 준비.
그 새하얀 공간 속으로 나는 걸어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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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이런 약속을 하기도 했다. 고독은 학교 숙제처럼 혼자 해결해야 하는 것이지만 슬픔은 함께 견디는 거야. 그러니까 네가 슬플 때에는 반드시 네 곁에 있을게. 그리고 또 말했다. 평상시에는 엄마 자신의 인생에 더 중요하지만 비상시에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평상시에는 우리는 각기 이기적으로 살 수밖에 없는데, 그건 비상시가 닥치지 않았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개인의 권리이고, 그리고 비상이라는 건 전쟁, 천재지변, 교통사고, 질병, 절망, 빈털터리 상태, 그리고 지금과 같은 극진한 슬픔의 발생이라고.(19)
어디로 가냐고 묻지 않는 것, 그게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까.(227)
거짓말하게 될 것 같으면 차라리 아무 말 마. 거짓말했다는 부담까지 늘어나서 더 필사적으로 자기를 변명하게 돼.(302)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마음속에는 사랑이 생기고, 변형되고, 그리고 식는다.
식을 때가 가장 좋다. 그게 나를 각성시키고 소설을 쓰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식었던 마음이 다시 덥혀질 때가 더 좋다. 그래야 소설 쓸 힘이 생기니까.
사실 나는 위로를 잘 믿지 않는다. 어설픈 위안은 삶을 계속 오해하게 만들고 결국은 우리를 부조리한 오답게 적응하게 만든다. 그 생각은 변함없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하게 되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우리는 거기 실려간다. 삶이란 오직,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이란 것이 생겨나고 변형되고 식고 다시 덥혀지며 엄청나게 큰 것이 아니듯이, 위로도 그런 것이 아닐까. 그러니 잠깐씩 짧은 위로와 조우하며 생을 스쳐 지나가자고 말이다.(작가의 말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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