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야생의 심장 가까이 ㅣ 암실문고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22년 11월
평점 :

<야생의 심장 가까이>는 붉은 디자인의 표지처럼 몹시 강렬하게 다가왔던 작품이다. 처음 읽어보는 장르의 책이었기에, 그 새로움이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려움이라기보다는, 낯섦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인물관계나 스토리, 주제를 발견하려고 하기보다는, 인물의 내면 묘사와 흐름, 감정들에 집중해서 읽으려 노력했다. 그렇게 한 장 한 장 읽다보니, 어느 순간 이 강렬한 책이 주는 감정에 푹 젖어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리스펙토르의 이 작품에서, 사람들이 왜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에 영향을 받았으리라 생각했는지 알 것 같다. 그때까지 그들의 책을 읽어본 적이 없다는 리스펙토르의 말을 생각하면, 그것이 더욱 신비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주아나가 느끼고 경험하는 모든 감정과 감각적인 묘사의 의미를 모두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야말로 세밀한 표현들을 받아들이면서, 차마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을 느낄 수 있었던 책이었다. 그래서 책을 읽었던 순간들의 감정이 좋게 기억된다.
•••
💬"그녀는 아버지가 죽었다는 걸 이해했다. 그게 다였다. 그녀의 슬픔은, 분노를 담지 않은, 크고 무거운 피로였다. 그녀는 그 슬픔을 안고 드넓은 해변을 걸었다. 잔가지처럼 검고 가느다란 자신의 발이 조용하고 흰 모래밭에 빠졌다가 단숨에 리드미컬하게 다시 올라오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걷고 또 걸었다.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아버지가 죽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부분들은 어린 주아나의 모습들이었다. 어린 아이의 복잡한 내면의 감정들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더욱이 슬프게 와닿았다. 특히, 바닷가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깨닫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몹시 가슴 아팠던... 바닷가의 묘사들이었다.
-
💬"만약 별들의 반짝임이 나를 아프게 한다면, 그 머나먼 소통이 가능해진다면, 그건 거의 별과 같은 어떤 것이 내 안에서 떨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거울 속의 나를 발견하고 겁에 질리는 건 내가 못생기거나 아름답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이질적인 나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한동안 자신을 본 적이 없는 나는 자신이 인간임을 거의 잊어버린다. 나는 나 자신의 과거를 곧잘 잊어버리고, 그게 그저 살아만 있는 그 무엇이 됨으로써 목적과 양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주아나의 내면 묘사는 그곳으로 나를 깊게 빠져들게 했다. 어쩌면 언젠가 내가 겪었던 혼란과 두려움, 깨달음의 감정이 뒤섞인 채로 공감을 이끄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작은 깨달음의 순간들이 모이고 모여서, 마침내 리스펙토르의 글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