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플의 종말 - ‘커플’이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시대에 대한 통찰
마르셀라 이아쿱 지음, 이정은 옮김 / 책세상 / 2019년 6월
평점 :
절판


 

얼마전에 결혼한 내 사촌동생 커플은 연애를 시작한지 12년만에 주례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다음 달에 결혼할 친구 커플도 이미 10여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곁을 지켜왔다. 결혼식 폐백을 마치고 인사를 하러온 사촌 동생 커플에게-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12년 동안 잘 만나왔고 앞으로도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굳이 지금 제도의 힘을 빌리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청첩장을 주고자 자리를 만든 친구 커플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두 커플의 대답은 놀랍도록 유사했는데, 하나는 부모님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드리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사람들의 질문에서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것이었다. 왜 결혼을 하지 않는지, 다른 뜻이 있는지, 혹시 헤어진건 아닌지, 사람들은 의심했고 그들은 커플이지만 불완전했다. ‘커플로서의 공식적인 인정, 부모에게든 주변인들에게든 그들은 인정이 필요했다. 10년이 넘는 시간에도 사회는 그들을 믿지 못했고, 제도를 통해서만 비로소 그들의 사랑을 인정해주었다. 그들의 사랑을 완성한 것은 결국 제도였다.


<커플의 종말>은 우리의 사랑을 인정해주고 보호해주는 그 제도에 대한 비판적 분석이며, 해체의 시도이다. 저자는 법이 우리의 관계에 개입하면서 파괴적인 고독이 시작되었다고 주장한다. 법에 종속된 관계가 지속되는 한 파괴는 계속될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한 저자의 필사의 노력은 참신하고 전위적인 해석으로 번뜩이기도 하지만, 비약적인 주장과 생소한 개념으로 혼란을 주기도 한다. 아래는 몇 개의 키워드를 통해보는 공감과 혼란의 기록들이다.

 

-나쁜 섹스: 가장 혼란을 주었던 개념. 정략 결혼시대의 나쁜 섹스의 의미는 비교적 명확하다. 좋은 섹스, 즉 결혼 관계 안에서의 자녀 출산을 위한 섹스를 제외한 모든 행위이다. 하지만 근대에 들어 사법적 개입이 좋은 섹스의 위상을 축소시키면서 그리고 성 해방이 자유로운 섹스의 권리를 보장하면서, 나쁜 섹스는 더 이상 나쁘지 않은 보편의 섹스로 변해간다. 그리고 이 나쁜 섹스의 지배가 결국 결혼제도를 파괴한다


이 지점에서 저자의 논지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는데, 나쁜 섹스가 결혼 제도와 좋은 섹스를 파괴하여 나아갔다는 분석이 마치 좋은 섹스가 존재하던 과거의 커플모델을 지향하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의 성 박애주의를 비롯한 저자의 궁극적인 주장들을 고려해서 해석하면 나쁜 섹스는 나쁘다는 가치 판단이 작용하는 용어라기 보다는 일처일부제라는 법적 커플제도가 권한을 주고 스스로 무너뜨리는 현대의 섹스 시스템을 의미한다고 생각된다.

 

-어머니 주체: 저자의 분석 중에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여성 남성 임금 격차의 원인을 어머니-자녀 관계가 강렬하게 발현되는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이었다. 친자 관계 원칙과 낙태와 관련된 법의 개입은 어머니와 자녀의 생물학적 관계를 공고히했다. 자녀가 혼인 관계가 아닌 여성의 생물학적 실체에 의해 결정되면서 자녀는 오롯이 어머니의 책임이 된다. 자연스럽게 아버지 자녀 관계는 약화되며 자녀에 대한 본질적 애정이 아닌 사회적 위상으로서의 아버지 역할을 추구하게 된다.


근대의 법제도가 법적 주체로서 어머니를 만들어 냈고 그에 따라 여성의 역할이 가정에 한정되면서 직업 세계에서의 격차가 발생했다는 분석이다. 여성들이 이 격차를 만들어내는 어머니주체에 갇혀있기 때문에 그들이 노력으로 일구어낸 남녀평등의 이상이 변질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어머니 주체를 만들어내는 제도, 커플제도의 변혁 없이는 남녀 평등의 이상 역시 요원하다는 주장으로 귀결된다.

 

-성적 사회민주주의: 저자의 핵심 주장을 담음 개념, 다양한 문제들을 발생시키며 성적으로 구속하고 고독으로 몰아넣는 제도적 커플 관계를 종언하고 성에 대한 권리를 보장하는 박애주의적 사회 시스템을 의미한다. 저자는 성적 빈곤자들을 구제하고 보편적 성 권리가 구현되는 이상적인 사회를 꿈꾼다. 커플제도에 대한 신랄한 비판들에 이어 불현듯 커져 버린 이상적 세계관의 등장이 혼란스럽기는 하지만 사랑의 궁정과 천상 커플이라는 초현실적 아이디어를 차치하고서라도 생각해볼만한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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