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스 비벤디 - 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 유동하는 근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한상석 옮김 / 후마니타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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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보았다. pc방 살인 사건의 범인 김성수의 인터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내뱉었다.

 

그때는 화가 나고 억울한 상태여서, 나도 죽고 피해자도 죽여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테이블을 치워달라고 했을 뿐인데 피해자인 알바생이 나를 무시했고, 자신의 아버지는 경찰이며 자기를 죽이지 못하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했다....치워달라고 했을 뿐인데, 억울했고, 과거의 일이 생각나면서 평생 이렇게 살아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같이 죽이고 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김성수는 마스크를 쓰지도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자신의 입장을 카메라 앞에 전했다. 댓글창에는 그의 표정과 말투를 분석하는 글들이 올라왔고, 그가 느꼈다는 그 억울함에 일말의 동정심을 갖게 된 소수와 가당치않은 거짓 변명에 분노하는 다수가 존재했다. 무엇이 진실이건, 우리가 어느 편에 서있던 간에 대중은 그 모습을 적나라하게 지켜보았고, 거기에서 파생된 공포와 불안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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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의 현대적 공포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들은 불안하다. 과거에 그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아니 여전하다는 점에서 문제의식을 가져야하는지도 모른다- 지금의 사회에는 새로운 공포의 촉매들이 도처에서 끊임없이 나타난다. 그 공포의 양상은 한국사회에 한정하여도 상당히 다양하다. 지금의 우리는 매일의 미세먼지를 체크하며, 제주도에 입국하려고 하는 난민들을 경계한다. 김성수와 같은 사회부적응자가 주변에 있지 않은지 의심해야 하며, 술을 마시다가도 가치관의 차이가 있는 옆 테이블의 불특정 일행과 시비가 붙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또한 시비가 붙더라도 스마트폰 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찍히더라도 그것이 유튜브에 올라오지 않도록 유의해야한다. 개인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 적어도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실증적인 증거들이 끊임없이 눈앞에 보여지고 있다. 결국 개인의 신체적 안전에 대한 공포는 개인을 위축되게 만든다. 불안한 우리는 불안정한 요소들과의 접촉을 차단하고 안전한 공간으로 들어서길 바란다.

공포의 새로운 층위가 생기는 것은 이 지점이다. 경계가 만들어진다는 것, 안전한 지역과 그렇지 않은 지역, 안전할 것 같은 학력 수준의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의 구분, 안전에 필요한 자산을 가진 계층과 불안한 계층이 각자의 의식 속에서 나뉘어진다. 하지만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개인들은 스스로가 그 경계 안에 존재할 것이라는-자신이 만든 경계라 할지라도- 보장을 받기는 어렵다. 심지어 모든 것이 공개되는 네트워크의 사회이기에 우리는 서로의 경계를 재단한다. 개인들은 경계를 만들고 서로의 경계를 염탐하며 그 경계 밖으로 떠밀리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스스로 사로잡힌다. 불안으로 강화된 경계는 이제 스스로를 조이는 옥쇄가 된다. 개인 안전에 대한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생성되는 물리적, 정신적 경계가 그 안의 개인들을 더욱 심층적인 공포 속으로 밀어 넣게 되는 것이다. 도태되지 않아야 하며 패배해서는 안 된다는, 더 나은 삶이 아니라 지금의 자리에서 밀려나지 말아야 한다는 공포다. 이러한 공포에 대한 해결책은 결국 내가 아니라 타인을 경계 밖으로 밀어내는 것 뿐이다. 끊임없는 타자화, 분노의 표출은 이렇게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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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사건을 통해 표출되었던 공포는, 결국 김성수법의 발의로 이어졌다. 심신미약자에 대한 감형의무 폐지. 당연한 결과이다. 김성수란 존재는 공포이며 접촉을 차단하고 경계를 지어야할 부류이다. 대중은 그들을 제도적으로도 심정적으로도 타자화 한다. 완전한 격리의 가능성이 줄어들어선 안되며 또한 나와 그런 부류가 같은 인간이라는 사실로 부터도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대중은 김성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이 김성수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더한 경계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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