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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있어, 곰돌아?/ 곰 인형아, 왜 슬퍼? ㅣ 국민서관 그림동화 17
마이클 그레니엣 글 그림, 길지연 옮김 / 국민서관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아주 우연히 집어들게 된 책인데.. 이건 어디가 앞인지, 뒤인지, 어떤 이야기를 먼저 읽어야 하는지... 책을 두어번 빙그르 돌려보다가 이 책의 재미난 구성을 간파했다. 그렇지만 내용을 읽고 난 다음에는 이 책이 더 잘 만들어진 책이란 걸 알게 되었다. 내가 먼저 읽은 부분은'곰인형아, 왜 슬퍼?'였다. 길에서 우연히 주운 곰인형은 소년이 어떤 식으로 달래보고 놀아주어도 슬픈 표정을 바꾸질 않는다. 그러다가 모든 것을 포기한 아이가 주운 자리에 도로 갖다 두니까 다시 웃는 표정으로 바뀐다.
그 다음 얘기는 공원에서 곰 인형을 갖고 놀다가 무서운 개를 만나 도망하는 바람에 그만 곰 인형을 잃어버린 소녀가 공원에서 다시 그 인형을 찾게 되어 기뻐하는 얘기다.'어디있어, 곰인형아' 이 두 이야기는 소설에서 간혹 보아왔던 구성형식을 지니고 있다. 서로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한 일화를 다루거나 이해하는 것. 이야기는 책의 중앙쯤에서 서로 만나게 되고 한가운데에서는 어느 쪽으로도 기울어지지 않고 초생달을 시소삼아 탄 곰인형과 소년과 소녀가 등장한다. 곰인형은 균형을 맞춘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그 페이지의 대사가 똑같다는 것이다. 즉 곰인형을 둘러싸고 처음 만난 소년과 소녀의 마음이 하나로, 그것고 실제로 만난 것이 아닌 꿈속에서 하나의 마음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 부분이 왜 내게 다가왔을까? 다시 생각해본다. 곰인형의 표정은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한가지였지만 소년은 곰인형이 슬프다 했다. 슬픈 표정을 끝내 바꾸지 않기에 자기 곁에 두지 않고 돌려 보내려 했다. 앗, 그러나 마지막에 진짜 주인을 만난 곰인형은 활짝 웃고 있었다. 소녀의 이야기에 곰인형의 표정에 대한 얘기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소년은 분명히 그 변화를느꼈다.
곰인형의 표정이 변한 것은 순전히 소년의 주관적 감정이 개입된것이라고 볼 수 있다. 상황적인 감정이입이 될 수도 있고...아니면 내것이 아닌 것을 가져와서 미안하거나 혹시하도 찾게 될 주인의 마음을 상상한 소년의 생각일지도...이 이야기를 내 삶에 대입해 본다.이 '곰인형'의 자리에 들어갈 수많은 변수가 떠올랐다. 곰인형을 바라보는 소년의 눈이 주관적일 수 밖에 없다면 나 역시 주관적으로만 어떤 사람이나 사물을 규정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우선적으로 내 주관대로 행동한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은 이성적으로는 인정한다 하면서도 실제로 나는 대부분 내 생각이 거의 맞고 모든 이들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겠지 하고 추측하게 된다.
아름다운 그림책 하나를 두고 쓸데없이 많은 말, 많은 생각을 하고 길게 주절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나는 이런 식으로 이 책을 대했고 나를 둘러싼 환경속에서 사람들을 이해하는 폭과 방향을 조금은 바꿀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