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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신한 베개와 오직 사랑뿐 (저자 친필 사인 인쇄본)
피터 H. 레이놀즈.헨리 로켓 레이놀즈 지음, 류재향 옮김 / 초록귤(우리학교) / 2024년 4월
평점 :
아이가 아빠한테 묻는다.
아빠, 뭐 필요한 거 없으세요?
나라면 뭐라고 말할까?
곧 어버이날이니 아이 수준에서 준비할 만한 선물이나 편지, 꽃 등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좀 멋지게 보이려고 음, 너의 미소? 너의 포옹? 온몸으로 표현하는 사랑해라는 말? ㅎㅎ (사실은 나도 비싸고 좋은 거 받고 싶다. 아이들아.)
이 아빠도 나랑 비슷하겠지, 했다. 애가 뭘 준비하겠어? 하는 마음으로 바라지 않는 거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는 아빠의 대답에 긍정하더니 하나는 더 있어야 한단다. 폭신한 베개요! 베개? 졸린가? 왜 베개지? 이 답은 마지막 장에서 풀렸지만 처음엔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이 잘 시간이어서 그랬나 정도? 아님 외국 그림책이니까 호텔 베개같이 폭신한 베개가 그만큼 중요한 문화인가 싶었다.
암튼, 아이는 고단수였다! 베개 하나만 필요하다더니 아빠가 그걸 받아주자 하나에 또 하나를 얻는다. 그것도 떼를 쓰는 게 아니라 적절한 논리와 애교 섞인 몸짓을 더해서. 이러니 아빠가 넘어갈밖에.허허. (곰과 자녀들 보고 배우길.)
아빠랑 아이는 이렇게 주고받고 주고받는 대화 속에서 차츰차츰 하나씩 필요한 물건을 쌓는다. 완벽한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난 아이가 최신형 스마트폰을 원하면 어쩌나 했지만 나오지 않았다. ㅋㅋ 그거랑 충전기만 있으면 세상 즐거울 텐데... )
이 그림책을 두 번 연속 읽으며 놀랐던 것 아이를 존중하며 대하는 아빠의 태도였다. 삶의 철학이 확고하고 중심에 흔들림이 없는 아빠였지만, 자녀가 지금 원하는 것이 자기 수준에서는 필요하다고 느껴지는 것임을 알고 긍정으로 맞장구치며 호응하는 태도.
그렇지만 폭풍우 같은 큰 시련 앞에 의지할 존재가 되고, 모든 걸 잃고 실망에 빠졌을 때에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존재로 그 옆에 한결같이 있어준다.
그래서 아이에게 맨 처음과 같이 둘이 (무사히 잘) 있고 둘 사이에 사랑이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하면서도 아이가 처음과 똑같이 바라는 베개를 또 수긍해준다. 다시 시작하는 건가? 아이는 그 폭풍우 경험 속에서도 아빠의 삶의 신념을 못 배운 것인가? 잠깐 의아했지만,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폭신한 존재 인 아빠를 표현한 것이리라 생각해본다.
이 책을 어린 딸이 있는 교회 다니는 친구에게 읽어 보라고 줬더니 한번 천천히 읽고는 눈물을 흘려 깜짝 놀랐다.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 자기가 이 아이 같단다. 하나님 아버지께 계속 이거 주세요, 저거 주세요, 만 하는. 그런데도 다 받아주는 아버지 사랑이 놀랍고 감격스러워 그랬단다.
아, 이렇게도 읽힐 수 있구나. 많은 것을 내포하는 우화 같은 그림책이네. 아무튼 가족들한테 선물하면 좋아할 책 같아 한 권 더 사서 선물해야지 마음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