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보그 가족의 밭농사 - 조기 은퇴 후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오십 살의 인생 소풍 일기, 2023년 국립중앙도서관 사서추천
황승희 지음 / 푸른향기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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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서평단 활동으로 책을 몰아치듯 읽다가 잠시 편한 독서의 시간을 가졌다. 마음이 편해지는 독서를 하고 싶어서 찾은 책이 이 책이다. '조기 은퇴 후 부모님과 함께 밭으로 출근하는 오십 살의 인생 소풍 일기' 라는 책 표지에 적힌 설명이 이미 힐링 그 자체였다. 조기 은퇴라는 꿈만 같은 삶을 보내는 이야기라는 점, 부모님과 함께 밭 일을 하는 모습에서 기대되는 목가적인 분위기, 오십 살 인생 선배의 묵직한 이야기를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그리고 감히 언니라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작가님과 작가님의 인생에 대해 편하고 긴 대화를 나눈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책이었다.


우리 아빠는 귀농을 진지하게 계획하고 계신다. 지금도 고향에 작은 밭에서 큰아빠랑 농사를 조금씩 하고 계시는데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사실 전혀 농사일을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밭으로 향하는 작가님의 매일이 부모님과의 여행같아 보여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굳이 농사는 아니더라도 늙은 내가 더 늙은 부모님과 무엇이든 함께하는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과 비슷하게 나도 가부장적인 아버지 밑에서 눈치보며 지내는 엄마에 대한 연민을 느낀 적이 많았다. 연민을 느낌과 동시에 가부장제에 반항하지 않는 모습에 답답함과 분노를 느꼈고 엄마가 아빠를 저렇게 만든거야라는 원망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사춘기 시절 부모님과 뜨거운 감정과 가시돋힌 말들을 많이 주고 받았었다. 아이를 출산하고 지금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이자 가장 편하게 기대어 쉴 곳은 엄마다. 친정이 멀리 있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아기를 키울 수 있는건지 상상이 안될만큼 내 육아는 남편보다도 엄마의 지분이 크다. 모든 엄마는 그 딸의 딸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 진짜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자존감을 지금보다 20배는 높은 사람으로 키워주고 싶다. 이 일을 다음 생이라는 미지의 세상에서만 해줄 수 있다는 점이 슬프고 미안해진다.


작가님의 공룡 장난감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귀여우면서도 마트에서 자신의 장난감을 고르기 위해 어린이 코너를 서성이는 어른을 보며 가졌던 무례한 연민을 반성했다. 어른이 되면 감정 표현에 조심스러운 자리가 많아지면서 점차 표현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계속 좋아하면서 소소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어른이 되는 것이 멋있어 보였다.


엄마가 나이드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러운 모습이라는 것을 알지만 엄마보다 내가 더 유난을 떨게 된다. 내가 아기를 낳았기 때문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할머니가 되었지만 그건 호칭이 그럴 뿐 우리 엄마는 아직 할머니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다. 내가 아가씨에서 아줌마가 되는 것보다도 더 싫었는데, 그 호칭 하나로 생각하기도 싫은 언젠가의 이별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나이 많은 어떤 할머니의 모습이 내 엄마의 모습은 아니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면서도 자가당착이라는 표현에 조차 동의를 할 수가 없는 마음이다.


인생의 선배에게 배우는 삶을 바라보는 현명한 관점이고 예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송이의 꽃이 아니고 여러 꽃이 피어 있는 정원을 가꾸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 회사, 점수 이런 것들로 채우기 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냄으로써 자라나는 예쁜 꽃들로 채우고 싶다. 지금은 우리 아들과 함께 키우는 꽃에 물을 많이 주고 있지만 내 넓은 정원을 두루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가져봐야겠다.


 이 책이 읽기 좋았던 것은 그냥 단순히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의 이야기가 아닌 자기 성찰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본 어른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아주 따뜻한 어른들의 삶을 구경하러 왔다가 내가 중년의 어른이 되어 있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 후회하지 않을 것들에 대한 귀중한 조언을 얻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나이 든 부모님과 함께하게 될 미래가 작가님처럼 소풍같은 하루 하루가 되면 좋겠다는 바램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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