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노는 애 안 노는 애 못 노는 애 - 아이들의 관계 맷집을 키우는 놀이 수업
얼씨구 지음, 최광민 그림 / 한울림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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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 노는 애, 그래서 못 노는 애였다.
뭐든 그렇다.
안하다 보면 못하게 되고, 못하게 되면 더 안하고 싶어진다.
그리고는 잘하는 애를 부러워한다.

그렇다고 노는 것에 대해 노력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묵시적으로 학습된 사고일지도 모른다.

공부를 못하면 누구나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부가 어렵다고 말하면 세상에 쉬운게 어딨냐고 말하며,
어렵지만 해야지! 너는 학생이잖아! 라고 아이들에게 세뇌시킨다.

아이에게 놀이는 밥이라는 말을 들었다.
잘 놀아야 잘 자라고, 잘 자라야 성공한다는 말도 들었다.
물론 최근에. 내가 어릴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실제로 어릴때 공부는 뒷전으로 놀기에 바빴던 사람들 중 훗날 사업 성공으로 떵떵거리며 사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개미는 아무리 일해봤자 개미일 뿐, 베짱이의 한방을 따라갈 수 없는 것처럼.

이 말이 전적으로 옳지도 그르지도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놀이가 중요하다는 점은 동의한다.

[잘 노는 애, 안 노는 애, 못 노는 애] 이 책에서
놀이를 통해 자존감, 관계의 맷집, 문제해결력, 감정의 순환 및 해소, 창의성, 공동체의식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맞는 이야기 같다.
현실에서 이길 수 없는 아이를 놀이에서는 이길 수도 있고,
놀이의 규칙을 지키고 놀이에서 승리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함께 노력한다.
놀이에 집중하다 보면  쓰잘데기없는 딱지 하나에도 집착하고 화내며 행복해한다.

내가 놀이를 잘 하지 못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자.
누구도 내게 놀이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뛰어놀며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놀이를 할 기회도 많지 않았다.
물론 아주 어릴때는 동네에 나가기만 해도 아이들이 몰려 놀고 있었으니 자연스레 술래잡기, 구슬치기,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이런 놀이를 했었다.
초등학생이 된 후로 한 해 한 해 갈수록 동네에 아이들은 사라졌다.
거기다 한창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나는 몸이 허약하여 조퇴를 밥먹듯이 했다. 그때는 내게 놀 친구도, 놀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건강해진 뒤에도 이미 능숙한 몸놀림을 하는 친구들 곁을 비집고 들어가기 어려웠고
나는 자연히 앉아서 책을 읽는 아이가 되었다.
뒤로 한발 물러나 바라보는 아이들의 놀이는 재밌어보이면서 동시에 시시했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웃고 울고 난장판이 되는 모습은 이질적이었다.
그런 시간이 쌓이면서 그 놀이판에 들어가기가 더욱 어색해졌고 나는 못 노는 애가 됐다.

그들에게 못 노는 애를 굳이 끌어다 애써 가르치고 함께해줄 이유가 없다.
그리고 그들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놀이의 형태가 달라진다. 게임이나 티비, 조금 더 크면 음주가무..
더 이상 순수한 놀이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저자가 말하는 놀이는
이 시기가 지나면 하기 어려운 무언가가 있다.
보다 순수하고, 보다 몰입할 수 있고, 보다 아날로그적이다.
이때가 아니면 못한다. 놀이가 중요하다. 이런 인식은 날로 보편화되고 있는 것 같다.
요즘 지자체에서는 엄마들에게 전통놀이를 알려주는 수업도 있으니 말이다.

내 아이에게도 놀이를 알려주고 많은 기회를 접하게 해주고 싶은데
나 스스로가 무지하다 보니 어찌해야할지 난감할 때가 많다.
그리고 엄마로서 놀이를 가장한 학습을 해주고 싶은 유혹이 많이 든다.
이것은 "놀이보다 공부가 중요하다"라는 사회적 압박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일 터.

놀이식 학습이 아니라 순수한 놀이를 해야한다는데 못 노는 엄마는 어떻게 놀아줘야 할까?
내게 또 하나의 숙제를 던진다.
후.


@ Amazing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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