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육아 - 기준을 세우고 한 발 물러나 바라보는
이현정 지음 / 지식너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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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육아서를 좋아한다.
물론 아이를 뱃속에 가진 이후로.

대체로 의사, 유아심리전공자와 같은 전문가들의 서적을 좋아하는 편이긴 하지만
엄마들의 경험담이 녹여져 있는 책을 읽으면 전문가들이 놓치곤 하는
엄마의 마음 읽어주기, 엄마 마음 공감하기에서 위로를 받곤 한다.

< 기다림 육아 > 요즘처럼 빠른 시대에 걸맞지 않은 타이틀일지도 모르겠다.
우리 부모님, 아니 그 윗 세대들은 일부러 하지 않아도 기다리는 육아를 하셨던 것 같다.
자녀가 많기도 했고, 생계가 빠듯해 지금처럼 한두 아이에게 몰입해서 키우시지 않았으니 말이다.

기다림을 통해
얻는 것은 마음의 여유만은 아닐 것이다.
아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립을 키워주는 것도 하나의 목표일 터.


좋은 마음으로 실천하고자 마음먹었다가
엄마 스스로 용납이 안되는 선을 넘어버리면
그냥 포기하고 "내가 먹여주고 말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p.37

나는 이 먹여주기에 대해 할 말이 많은 사람이다.
나는 입도 짧았고 편식도 꽤나 하며 자랐다. 뭐라도 먹으라는 마음으로 부모님은 내게 편식을 고치길 강요하지 않으셨다.
성인이 된 이후에 양파, 고추, 버섯 등 다양한 채소들을 먹기 시작했다.
내 자식이 어릴때부터 건강한 식자재를 골고루 양껏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것은 나에게 하나의 로망이었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 아이주도 이유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책 저 책 살펴보며 이 방법에 매료되었다.
그치만 번거러워보이고, 요알못이라 약간 두렵기도 했기에
일반 이유식과 아이주도 이유식을 병행하려고 했었다.

그건 내 생각이고, 현실은 달랐다.

아이는 초기이유식 한달 정도만 먹었고 그 뒤로는 죽을 받아먹지 않았다.

아이주도 이유식으로는 우선 재밌으니 잘 먹더라는..
그래서 결국 아이주도 이유식으로만 진행했고 돌까지 잘 마무리했다.

결과론적으로 따진다면
아이주도 이유식을 한다고 해서 편식없이 골고루 잘 먹는 아이가 되지 않는다.
내 아이도 그랬고, 이 증언은 여러 사람들에게서 확보했다.
잘 먹는건 타고나는 게 크다.

또한,
돌까지 혼자 음식물을 쥐고 뜯고 팽개치며 즐겁게 먹던 아이가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해서인지 돌쯤부터 아예 손도 안대고 떠먹여줘야만 먹었다......
숟가락을 쥘 생각도 안하고, 음식으로 장난조차 치지 않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은 글쓴이가 뒷부분에서 하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자율성을 키워주기 위해 부모가 참여를, 참견을 줄여야 한다는데는 동의한다.
그러나 본인이 견딜 수 있는 정도껏 해야한다.

나는 내 아이가 밥을 먹지 않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 그게 무슨 대수야? 별거 없더라. 라고 시큰둥하게 말할 수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배고플때까지 기다려준다거나, 조금만 먹어도 그걸로 넘어간다거나 그런식으로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힘들었고 아이에게 떠먹여주는 것을 선택했다.

33개월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아이는 스스로 먹을 수 있음에도 내가 떠먹여줘야 먹는 일이 많다.
그렇지만 괜찮다.
내가 기쁘게 할 수 있는 정도이기도 하고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니까.

이처럼 어른에게도 화는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그런데 화가 난 대상이 자신과 가장 가까운 엄마라면 아이는 어떨까?
아이의 가슴에 고스란히 상처로 남지 않을까?
너무 잘해주려고 하는 마음이 앞서면 '
이렇게까지 너에게 잘해주었는데 너는 왜 이것 하나조차도 양보하지 않니?
라는 마음이 생긴다.
p. 85

나는 아주 어릴때 기억은 몇몇 장면을 빼고는 거의 기억이 가물하다.
초등학교 2학년 정도 되야 기억이 나는 것 같다.
나의 엄마는 이성적인 성격이셨다. 어릴때 내가 느낀 바로는 그렇다. (지금은 달라지신 것 같다)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후부터 맞벌이를 하셨고, 양가 도움없이 육아를 하셨기에 늘 바쁘고 힘드셨다.
꽤 이성적인 성격이심에도 불구하고 나는 엄마를 통해 "종로에서 뺨맞고 한강가서 화풀이한다"는 속담을 떠올렸다.
분명 똑같은 일상이었는데 유난히 짜증을 내는 날이 있었다.
괜한 불똥이 내게 튄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자면,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이 엄마 퇴근 시간전까지 집안 청소를 안해놨다.
그런데 어제는 혼나지 않았는데, 오늘은 혼이 났다. 일관성이 부족한 육아였다.
혼을 내려면 늘 혼냈어야 하거나 혼나는 룰을 정확히 설정했어야 했다.
어디선가 감정이 나빠진 게 분명했다. 내 탓이 아닌데 집에 돌아와 화풀이를 한다고 어린 마음에 불합리하다 생각했었다.
그 뒤로도 나는 "종로&한강 스타일"이 싫다.
이는 어린 날 내가 받았던 마음의 상처와 일맥상통하리라.

어린 아이에게 화를 내지 않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는 일관성이 더 중요하다 생각한다.
사람이 어떻게 늘 화를 제대로 삼킬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있다면 대단한 분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지 못한다.
하지만 아이때문에 화가 난 것을 폭발적으로 화내지는 않더라도 감정 표현 정도는 할 수 있다고 본다.
2돌 이하의 아이에게는 하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눈치 코치가 생긴 이후에는 어느 정도 표현을 했다.

엄마는 지금 기분이 좋지 않아.
잠깐 시간을 줘.
네 행동이 엄마를 슬프게 했어.

정도의 표현은 하고 있다. 아이도 그에 대해 미안하다고 표현을 하기도 하고 눈치도 본다.
나는 그 눈치보는 것이 미안하지는 않다.

육아에 정답은 없다. 엄마 스스로 수많은 정보 중에서 우리 아이에게 맞는 정보를 구별하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으로 나만의 공식을 완성해가는 것. 그것이 바람직한 육아다. 그 과정에서 실수하면 어떠랴.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나는 오늘도 믿음이라는 나무에 비와 바람, 햇살이 되어 아이 곁에 머무를 것이다.
p. 133
육아에서 시행착오만큼 값진 과정은 없다. 지난 8년간 육아 블로그를 이어오면서 나의 한결같은 메시지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말자'였다. 개개인의 상황이 다르고, 아이의 기질과 특성이 다르다. 그렇기에 뾰족한 해결책을 찾기가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의 실수와 반복만이 육아를 단단히 완성해갈 수 있다.
p. 139

나는 내 아이를 키우며 들었던 생각 중 하나가 "대체 인류는 어떻게 지속되었던 걸까?" 였다.
이토록 힘들고 어려운 길을 그 수많은 사람들이 당연하다는 듯 걸어갔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엄마도 내게 "아이를 낳아봐야 부모 마음을 이해하지" 라고 하셨었다.
아이를 낳고 틈틈히 부모님에 대한 감사함과 동시에 '왜 내게 같은 것을 경험하라 하신거지? 나도 당해보라는 건가' 라는 억측이 생겼었다. 물론 지금은 후자보다 전자가 훨씬 크다.
그리고 아이가 주는 사랑과 만족감이 이루말할 수 없이 크다.

아이를 키우며 생기는 의문들, 고민들은 주변 엄마들보다 육아서를 읽어나가며 해결하는 것을 추천한다.
주변 엄마들과는 공감, 위로를 주고 받는 것으로..
간혹 육아서를 읽어본들 현실은 달라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내 아이에게 안성맞춤인 이론도, 경험담도 있을 수 없다. 책은 보편적인 이야기를 할 뿐이다. 다만 아이의 발달 단계에서 일어나는 성장 진통을 이해할 수 있고, 다르지만 비슷한 엄마들의 사례를 살펴보며 소소한 팁이나 위로를 받을 수 있다.

완벽할 수 없는 육아임을 받아들이고 나와 내 아이를 질책하지 않기.
서로를 이해하고 함께 성장하는 사랑의 과정임을 기억해야한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또 다짐한다.
내 사랑을 위해 오늘도 내일도 나를 성장시키겠다고.. 내게 부족했던 여유와 느긋함도 키우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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