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얼음나무 숲 (완전판)
하지은 지음 / 황금가지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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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르 소설의 독자는 아니다. 특히 국내 작가가 쓴 판타지 소설은 더욱 그렇다. 여럿 읽었고, 좋아하는 소설도 있기는 한데, 씬을 관심 있게 지켜보거나 하지 않아 어떤 작가군들이 포진해 있는지 알지 못한다. 굳이 이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은 난 하지은 작가를 몰랐고,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얼음나무숲이 신간 소설인 줄 알았다. 이미 7년 전에 출간된 하지은 작가의 데뷔 소설이고 꽤 많은 인기를 모았던 화제작이었는지 전혀 몰랐다.

 

오랜만에 읽은 국내 작가의 판타지 소설은 꽤 독특했다.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예술인들의 이야기 자체는 드물지 않지만, 그것을 판타지로 풀어낸 상상력은 신선했고, 그 상상력을 뒷받침하는 몽환적인 분위기는 소설에 자연스레 몰입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었다.

 

데뷔 소설이었던 만큼 아름답게 써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다는 인상이 남는 문장은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조금 아쉬웠지만, 스토리를 밀고 가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고, 또 하지은 작가의 문장은 아주 큰 장점을 하나 가지고 있다. 천재 음악가의 연주를 묘사하고, 또 극한에 다다른 연주 실력에 대한 이야기를 텍스트만으로 풀어가며 갈증을 느끼지 않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얼음나무숲은 그게 가능했다. ‘아름다운 문체의 힘이라고 간단히 말할 장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작가가 음악을 텍스트로 얘기한다는 것의 어려움을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고, 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다는 증거다. 하지은 작가는 특히 연주 장면에서 문장이 자세해지고, 가능한한 많은 어휘를 동원하는데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에 몰입할 수 있었다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일 듯 하다.

 

천재 예술인들 사이의 관계와 감정들, 그리고 경지에 이른 예술에 대한 탐닉을 살인 사건으로 풀고 그것을 다시 2,000 년 전의 도시의 기원과 연결지어버리는 솜씨도 이 소설의 멋진 점이다. 물론 아쉬운 점은 있다. 천재 중의 천재 음악가인 바옐과 못지않은 천재이지만, 바옐의 단 하나의 청중이고 싶어하는 고요와의 감정 교류, 때로는 감정 다툼의 비중이 너무 큰 나머지 살인의 진범인 환상의 인물이 명확하게 잡히지 않는다. 환상의 인물이 아니었다면 다른 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보아온 현실적인 감정들로 빈 공백을 메울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더 있다. 말했다시피 소설은 바옐과 고요의 감정에 골몰한다. 때문에 놓치는 것이 적지 않다. 심지어 바옐의 캐릭터조차 의아한 대목이 있고, 필요에 의해 갑자기 튀어나와 동원되는 캐릭터의 존재들이 결국 스토리의 진행을 돕고 사라지는 것이 너무 노골적이었다. 심지어 트리스탄마저도 그렇다. 키욜 백작과 짝이 될 운명이었지만, 키세는 트리스탄을 선택했고 그 댓가로 고요가 죽어야 하는데 키욜 백작이 고요의 어떤 순수를 동경하여 대신 키세가 제물이 되었다는 이상한 스토리는 너무 구멍도 많고, 설명이 되질 않아 이해가 되질 않는다. 바옐과 고요의 관계는 BL물의 흔한 설정에 가깝고, 툭하면 울어버리는 고요는 BL물에서 흔히 보이는 의 모습 그대로였는데 여기에 바옐이 사랑하는 여자의 존재는 지나치게 바옐의 캐릭터를 흐려버리는 것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편리에 의해 등장한 이 여자는 또 극의 진행을 위해 죽게 된다.

 

하지만 이런 아쉬움들은 작게 느껴지는 몰입감과 몽환적인 분위기만큼은 얼음나무숲의 커다란 장점이다. 무엇보다 바옐이 솔로를, 얼음나무숲이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는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그림처럼 그려내는 순간의 묘사만큼은 이 소설을 나중에 떠올릴 때도 계속 기억에 남을 듯 하다. 데뷔 소설이었다니 작가 자신으로서도 아쉬운 점이 적지 않았으리라. 난 하지은 작가를 몰랐지만, 이후에도 왕성히 활동하며 씬에서 주목받는 작품을 여럿 발표한 듯 하다. 하지은 작가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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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비 2020-11-25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의 감상도 딱 이런 부분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