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스 크로싱
존 윌리엄스 지음, 정세윤 옮김 / 구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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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혹된 인간.

윌 앤드루스는 동부의 대학에 다니다가 느닷없이 서부로 와 부처스 크로싱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들소 사냥에 휘말린다. 이것은 그가 지금까지 살던 삶과 완전히 다른 것이다. 마치 신이 그를 집게로 집어들어 서부로 던진 것과 같다. 이것을 단순히 다른 삶에 대한 동경, 도시적인 삶에 대한 반감, 자연으로의 도피라고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것은 매혹이다. 단순히 끌리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은, 갈증과도 같은 욕망에 가까웠을 것이다. 타오르는 불에 뛰어드는 날벌레와도 같은 감정.

나는 이렇게 무언가에 강렬하게 홀린 인간을 늘 부러워 했다. 무언가에 강렬히 매혹되어 온 몸을 던져 부딪혀 산산히 부서지는 인간에겐 떨리는 손으로 책장을 넘기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 인간이 맞부딪히는 그 무엇인가가 이루 말 할 수 없이 거대하고, 인간에게 응답하지 않는 것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대부분의 인간은 그런 인생을 살 수 없다. 나라면 아마 맥도널드의 제안을 적당히 받아들였을 것이다. 무언가에 강렬히 끌려 서부까지 오긴 했지만, 막상 낯설고 전혀 알지 못하는 공간에 오면 겁이 나기 마련이다. 서류나 꾸며 달라는 맥도널드의 제안은 적당히 잘 아는 일이다. 그 일은 부처스 크로싱에서 하는 일이고, 때문에 윌은 적당히 자신의 동경에 대한 허기를 달래면서도 안전할 수 있었다. 그런 삶에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때로는 놀라운 모험을 선택하지만, 그 여정에서도 가능한 한 타협하고, 그러면서도 또 갈망한다. 타협을 선택해도 어차피 인간은 무엇인가와 싸워야 한다. 어쩌면 그런 삶에 대한 이야기가 존 윌리엄스의 또 다른 소설 <스토너>였는지도 모르겠다.

<부처스 크로싱>은 전혀 다른 이야기고, 마치 <노인과 바다>나 <모비딕>과 같은 이야기다. 불가해한, 인간에게 전혀 응답하지 않는, 무언가 거대한 존재에 대한 강렬한 매혹과 자기 증명. 그런데 여기서 (한국인으로서) 신선한 것은 윌 앤드루스가 온 몸을 내던지는 그 대상이 서부의 대자연이라는 것이다. 나는 서부극을 잘 모르고, 그래서 아주 제한적인 이미지만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부처스 크로싱>의 세계는 내게 매우 낯설고, 어려운 것이었다.

이 간극을 메워주는 것은 존 윌리엄스의 때로는 집착적이라고 느껴질만큼 꼼꼼한 묘사다. 거의 서부의 황량한 공기마저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디테일한 이 묘사를 어떤 독자들은 사실 좀 장황하고, 지루한 것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서부와 부처스 크로싱과, 윌 앤드루스와 밀러와 찰리 호지와 슈나이더와 들소 사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런 묘사가 필요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이 묘사로 나는 이 서부의 세계에 빠져들 수 있다.

맹렬하게 서부의 대자연에 뛰어드는 도시의 인간. 예민하고, 어렸고, 또 손이 부드러웠던 젊은 애송이 청년 윌 앤드루스는 거친 들소 사냥과 삭막한 겨울을 지나 완전히 부서지고 다른 인간으로 태어난다. 그에게 남은 것은 빈털터리가 된 주머니와 거칠어진 손 뿐이지만, 그는 이제 대책없는 갈망에 시달리지 않을 것이다. 반면 대평원과 서부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없었던 것 같았던 밀러는 오히려 부서지고 만다. 나는 이 차이가 매우 재미있다. 이 차이는 윌 앤드루스가 애초에 한몫 잡으려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빚어졌을 것이다. 그는 이제 서부의 일부가 되었다. 그것이 그가 예상했던 방식대로 그의 매혹이 채워진 것은 아닐지라도.

나같은 보통의 인간은 살면서 이렇게 강렬한 매혹을 느끼고, 그것에 온몸을 내던지지 않는다. 때로는 모험을 하지만, 수많은 안전장치를 남기려고 애를 쓰고, 결정적인 순간에 타협을 하기도 하며, 남들이 걷는 길을 수없이 곁눈질 한다. 윌 앤드루스가 그랬듯 신이 뒷덜미를 집게로 잡아 새로운 세계로 내동댕이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나같은 보통의 인간은 아주 안전하게 이렇게 윌 앤드루스처럼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소설을 읽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것으로 우리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낼 수 있다. <부처스 크로싱>의 첫머리의 윌과 끝의 윌의 변화처럼 내가 변화하진 않지만, 마지막 장을 덮으며 나는 어떤 탈력감과 작은 깨달음을 얻는다. 그 깨달음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잘 말할 수 없지만, 이 경험은 조금 신비로운 것이다. 어디에서나 책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이 시대에는 꽤나 흔하고, 힘이 들지 않는 것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신비로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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