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피아노 -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김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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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이 쓴 수필이나 에세이를 읽는 이유는 내가 생각하고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그들의 글을 통해 대신 알고 느끼기 위해서다. 물론 그 타인이 생각을 하고 느끼면서, 그리고 그것이 문자를 통해 글이 되면서, 그리고 그것을 내가 어떤 상황에서 읽게 되느냐에 따라서 온전한 전달이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변이가 되는 그 조차도 나에게는 새로운 간접경험의 일부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필이나 에세이를 읽을 것이다.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일기라는 <아침의 피아노>를 읽었다. 이 책은 죽음을 바로 앞둔 사람이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생각하고, 또 나에 대해서 생각하고, 지나온 삶에 대해서 생각한 것들을 짧은 메모로 남겨두었다가 엮은 것이다.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시간은 죽음에 가까워져 가고 생은 저물어 간다. 글에도 그런 것이 묻어나는 것 같다. 마치 눈물을 흘리는 듯한 슬픈 필치의 폰트 때문일 수도 있겠다. 혹은 유난히 짧은 글에 여백이 많은 페이지의 휑한 모습 때문에 괜히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김진영이 쓴 글들 속에서 조금씩 내비치고 있는, 계절이 변하고 세상이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글에 옮겨 적으면서 흘러내리는 본능적인 슬픔이다. 소리 없이 흘러내리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런 기분이 어느샌가 고여버리는 것이다. 


<아침의 피아노>는 기본적으로 따뜻한 책이다. 표지는 매우 새파랗지만 그것은 차가움 보다는, 어떤 바다 같은 넓은 생각들의 은유 같다. 사랑하고 감사하게 살라는 말은 정말 평범하고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앞으로 그런 말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안타까움이 보이는 순간은, 죽음을 앞둔 자가 남기는 하나하나의 말들이 얼마나 그에게는 소중한 것일지 느끼게 해 준다. 하지만 김진영은 그런 본능적인 슬픔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은 정말 수 없이 많지만('죽음을 앞둔'이라는 상황이 얼마나 나의 생각과 모든 생활을 까맣게 지배할지는 정말이지 한치도 상상할 수 없다),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나'에게 충실하기 위하여 그리고 나의 주변에 있었던, 이제는 남겨질 이들을 위하여 이런 글을 남겼다는 것은 아름답다고 말 할 수밖에 없다.


철학자의 글이다 보니 일상적인 메모와 더불어 다소 관념적이지만 정곡을 콕 찌르는 글이 많았다. 하지만 나에게는 이게 가장 인상 깊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일 수도 있다. "잠들 때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유튜브를 틀어놓는다. 그의 목소리 혹은 그를 애도하는 목소리들과 함께 잠을 청하고 잠이 든다. 그의 죽음은 나에게 무엇일까." 그리고 이 책은 마지막에 이렇게 끝난다. "내 마음은 편안하다."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편안해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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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의 청소부
박생강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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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의 청소부>를 읽기 전 예상했던 캐릭터와 줄거리는 여행자 숙소를 전담으로 관리하는 매니저가 다양한 손님들을 경험하면서 수집한 익명의 관찰기록이었다. 여행 냄새 풀풀 풍기는 그런 소설 말이다. 조금 나이브한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 상당히 구체적으로 지목된 제목은 나를 그렇게 의례적으로 상상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이 책의 표지는 한적한 해변도시 어딘가에 자리 잡은 숙박시설을 묘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아직도 왜 표지가 이렇게 새파랗고 청명한 하늘을 그리고 있는지 의문이다). 아무튼 <에어비앤비의 청소부>는 이런 상상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흘러갔다. 




소설을 읽기 전에, 왜 이 소설의 제목에 '청소부'가 들어갔는지, 그리고 그 청소부가 일하는 곳이 왜 그냥 일반적인 게스트하우스가 아니라 '에어비앤비'인지 곱씹어보면 좋을 것이다.





대기업 재무부서에서 일하는 평범한 30대 회사원 영훈은 어느 늦은 밤 여자 친구와 함께 이태원 에어비앤비에서 숙박을 하게 된다. 잠을 이루기 전, 우연한 말다툼으로 영훈은 그녀와 '거의 헤어진' 지경에 이른다. 헤어짐의 위기를 겪으며 영훈은 그 헤어짐의 순간을 만들었던 시간과 배경에 분풀이를 하기 위해 바로 그 에어비앤비를 다시 찾게 된다. 그곳에서 영훈은 에어비앤비 청소부 '운'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가 왜 지금 청소부로 지내고 있는지도 알게 된다. 그를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영훈 역시 자신이 왜 다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를 말하면서 이야기는 점점 큰 스케일로 퍼져 나간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는 에어비앤비라는 매개를 통해 만난 두 명의 익명, 두 개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 우리의 생활 방식을 거친 듯하면서도 경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실제로 경험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는 서비스와 재화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누구이고 어떤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어떤 것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간다. 그건 그냥 '우버' 혹은 '에어비앤비', 한국으로 이야기하자면 '당근 마켓' '오픈 카톡' 스러운 것이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의 집에 머물지만 실제로 그게 그가 소유한 집인지, 호스트의 이름은 본명이 맞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꼭 알 필요는 없다. 꼭 본명이 필요도 없고 진짜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누구' '어떤 것'이 지워져도 우리는 생활하고 노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이 두 주인공은 서로의 고민들을 알게 되기도 하고 서로의 치명적인 약점을 잡기도 한다. 사실 단순히 약점이라고 할 수 없는 '범죄'수준의 사건들-해킹, 개인정보 거래 같은 사이버 범죄-이 빵빵 터지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이러한 사건들을 중점적인 내용으로 다루기보다는, 사건들이 발생하더라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혹은 그런 위협과 사건에 노출되더라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현대의 생활 방식을 묘사하는 것에 더 공 들인 모양새다.




<에어비앤비의 청소부>처럼, 우리는 익명의 누군가에게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런 다음엔 그곳의 청소부가 싹 청소해 버리듯이 싹 지워지면 그만이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통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이렇게 들이닥친 상황에, 내 앞에 있는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에게라도 말이다. 이 소설은 그래서 뜬금없이 알게 된 익명의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주 생경하고 독특한 경험이 아니면서도, 무언가 보이지는 않지만 느낌은 확실한 위안을 선사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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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 사회 - 제국과 식민지의 번안이 만든 근대의 제도, 일상, 문화
백욱인 지음 / 휴머니스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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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의 사회와 시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역사를 알아야 한다. 그것이 유형의 것이든, 무형의 것이든 말이다. 역사라는 게 일체 없어서 모태를 알 수 없는, 아주 새롭게 시작된 어떤 사조나 경향, 물건이 탄생했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왜 그럴까? 과거의 어떤 것을 연상시킨다거나, 참조해서 이해할 수 있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역사의 연장선 안에서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인다. 그래서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은 '역사'를 떼놓고는 제대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런데 한국의 역사-근현대사의 면면들을 되짚어 보면 우리의 역사이지만 우리의 자생적인 힘으로 세워지지 않은 어떤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그 단서는 불행하게도 ‘일본’에 있고, 실로 높은 비중으로 '번안'의 방식이 쓰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주체적으로 우리 외부의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대 상황에 따라 마구 번안된 흔적들이 아직도 우리 사회에 많이 보인다. <번안 사회>는 일본과 미국, 그밖에 여러 나라를 번안의 방식으로 채택하고 받아들인 한국의 역사를 되짚고 있는 책이다.


번안? 그런 어설픈 방식이 요즘 같은 시대에 가능한가?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다. 지구촌으로 연결된 요즘에 가당키나 한 일인지. 하지만 과거에 남겨진 번안의 쉽고 편리함 때문에 번안의 방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런데 여기엔 공통된 경유 지점이 많이 보인다. 바로 일본 식민지 시대의 흔적이다. 식민지를 겪으면서 한국에는 수 없이 많은 일본적인 것이 남았다. 그리고 해방된 지 7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식민지의 잔재가 깨끗이 씻겨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들은 오늘날에 이르러 '번안'된 어떤 것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한국엔 '번안'된 일본의 것, 미국의 것, 그 밖의 국가의 것들이 해방과 동시에 사라지지 못하면서 참 많이 남아있다. <번안 사회>에서는 이를 3가지 챕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1장은 식민지 시대의 제국주의적 장치들, 2장은 우리 생활문화에 스며든 실생활의 물건들, 3장은 음악, 영화 등 대중문화를 실어 나른 여러 문화 플랫폼들을 살펴본다. 안타깝게도 이 책에서 하나하나 꼬집는 것들 중에 당당히 부정할 수 있는 내용은 없다. 우리 생활 속 수많은 물건과 사조, 개념들은 식민지 시대에 번안되어 아직까지도 우리의 생활과 가치관에 스며들어 있다. 가까이에서 생각해보면...출판사에서 이 책 <번안 사회>를 만들면서 일본어로 된 출판 관련 업계 용어를 단 한 번도 안 썼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돈가스'라는 요상한 메뉴는 식민지를 거치며 유럽과 일본의 요리 방식과 우리의 외식 문화의 짬뽕 집합체라 할 수 있다. 건축 업계에서 쓰는 '와꾸'라는 단어가 어느샌가 일반인들의 일상에 침투했고, 아직도 학생들은 모두가 똑같은 모양으로 만들어진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간다.


일상에 수 없이 파고든 우리 속의 번안의 흔적을 다 지울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것이 수 없이 긴 번안의 시기를 거쳐 오늘날까지도 우리 삶에 남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중요하다. 그 기원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 제대로 나와 나의 삶을 바꾸고 발전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번안 사회>는 그런 경각심을 일깨워주기에 참 좋은 책이다. 다만 서술 방식이 좀 어려운 편이고(쉽게 쓴 노력은 보이지만 학술지 같은 인상이 꽤나 진하다) 했던 말이 반복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식민지 시대를 경유한 우리의 사회를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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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 - 금강요정 4대강 취재기
김종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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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지방으로 여행을 갈 때마다 금강 어귀를 지나고는 했다. 부산을 갈 땐 금강 휴게소를 경유하기도 했고, 충청도 어드메를 여행할 때엔 차창 밖으로 금강을 조금씩 구경할 수 있었다. 멀리서 언뜻 보았던 금강은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다. 물론 '4대강' 사업이 우리의 생명에 위협을 처하고 있다는 것쯤은 MB의 임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연하게만 비판할 뿐이었다. 금강과는 먼 곳에서 지내며 직접 들여다본 적은 없었던 바로 그 4대 강을 보여주는 책,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의 감상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수준이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또 알 수 없는 게 '자연'이라는 것을 이번에 또 깨닫게 된다. 내가 그동안 스치듯 보았던 금강 그리고 4대강, 심지어 가까이의 한강 조차도 결코 괜찮지 않다는 것을.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은 저자 김종술 씨가 시민기자라는 열악한 조건에서 금강의 실태를 기록한 책이다. 금강에 대한 아픔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취재하는 본인의 고통과 아픔, 그리고 자연을 생각하는 마음까지 슬프면서 힘차게 담긴 책이다. '4대강 전문 기자'라고 칭해도 전혀 과장이 아닌 저자는  만신창이가 된 금강에서 먹고 자면서 이 책을 썼다. 그러나 단순히 취재 기라고 하기엔 이 책은 너무 무섭고 잔혹하다. 물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는 인간이기에 읽는 것만으로도 목이 메어올 것이다.


위에서도 말했듯 이 책의 모든 문장은 저자가 금강에서 '먹고 자면서' 쓰였다. 그런데 이 말은 단순히 밀착취재의 밀도를 표현한 것은 아니다. 저자는 진짜로 금강에서 물을 떠서 마셔보고, 큰 빗 이끼벌레도 먹어보며 직접 금강의 오염실태를 확인했다. 밤에는 금강 근처의 풀숲에 누워 새벽이슬을 이불 삼아 잤다고 하니 극한의 탐사보도 정신으로 만들어진 책이다. 이런 취재 에피소드가 책의 초입 부분부터 나오는데, 독자 역시도 금강에 가있는 느낌을 받을 것이고 여간 찝찝한 마음이 가시지 않을 것이다. 금강이 자연 본연의 모습을 유지하고 맑고 아름다웠다면 독서의 처음부터 싱그럽고 산뜻한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예상대로 금강의 현실은 공포의 초록으로 뒤덮인(이끼, 유기물) 죽음의 뻘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강의 삶과 죽음>의 감상을 특별한 문장으로 할 필요도 없는 것 같다. 사실 이 책의 모든 느낌과 감상은 이미 책 제목에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죽어가는 금강을 몸 바쳐 탐사하고 취재했다. 하던 일도 그만두고, 전재산을 바쳐 금강의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바쳤다. 인간관계도 무너진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금강의 현실뿐만 아니라 저자가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가며 취재를 지속해 나가는 일대기를 읽다 보면, 금강에 대한 충격과는 별개의 이런 사실도 잘 모르고 편하게 살고 있는 나 자신으로 인한 불편한 마음이 생기기는 한다. '자기 삶을 포기하면서 까지 취재를 하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돈은 고사하고 건강도 악화되는데 계속 취재를 하는 건 미련한 일이 아닐까' 물어보고 싶기까지 하다. 만약에 나의 지인이나 가족이 이런 취재에 몸을 바쳤다고 한다면... 나 역시도 말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무엇보다도 '산다는 것'을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삶의 터전,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인간을 비롯한 여러 생태계 구성원들을 위해서 한 일이다. 책 제목은 마지막이 '죽음'으로 되어있지만, 다시 살아나 상생할 수 있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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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왕 사는 거 행복한 게 낫겠어 - 프로불평러 알렉산드라, 난생처음 행복해지기로 결심하다
알렉산드라 라인바르트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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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의 주요 매대가 행복 처세술 책으로 잠식된 지 꽤 오래되었다. 행복이 딱히 어려운 단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생활에서 이 단어를 느끼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 되었다. 아니면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책들에 눈길이 가는 것일까? 행복이란 것을 시간을 내서 찾아야만 하는, 그런 어른이 되긴 된 것 같다.


예전에는 서점을 가보면 잠언, 명언으로 행복을 깨닫는 법이나 힐링을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다루는 책이 많았다. 요즘은 분위기가 좀 바뀌었는데, 행복에 대한 책들이 여전히 널려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목에서부터 뭔가 싸한 것들이 많아졌다. 행복을 갈구하게 된 원인은 예나 지금이나 현재의 불행, 현재의 불만족에 있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불만족스러운 표정이 책 표지나 제목에서부터 확연하게 보인다.


제목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왕 사는 거 행복한 게 낫겠어> 역시 행복 전도사 같은 책은 아니다. 무한 긍정적인 뉘앙스의 책도 아니다. 책을 펴보기도 전에 "기왕 사는 거.."라고 말을 꺼내는데 냉소가 느껴진다. 이건 다 '기왕'이라는 말 때문이다. 대체 원제가 뭐길래 이런 제목이 붙었을까? '기왕'이 긍정적인 다짐의 말투인지, 아니면 피투 된 존재인 인간의 불가피한 순응을 짠내 나게 이야기하는 것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아무 '기왕' 때문에 이 책의 범상치 않음을 느낀다.




저자 알렉산드르 라인바르트는 지구 반대편 독일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탁월한 번역 덕분에)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은 불만족스러운 오늘을 비슷하게 살아간다. 그러던 중 정말 구체적인 생각이 그의 머리를 때리고 간다. “이대로 순응한 채로만 살다 늙으면 안 될 것 같다.” 그래서 그는 행복을 찾아보기로 한다. 


그 사건들은 쉽게 말하자면 정말 시답잖은 일이다.


반려동물 키우기, 여행, 운동, 마음 수련, 만족하는 버릇 갖기, 돈 쓰기, 봉사활동, 취미생활 하기 등.. 거창한 방법이 아닌 일상 속에서 찾아본 15가지 일들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 방법들이 과연 효과를 발휘했는지 그 수기를 진솔하게 써 내려갔다. 그는 체험의 결과에 대해 오버하지도, 억지로 긍정하지도 않는다.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별 미련 없이 행복에 대한 소득이 낮았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솔직함 덕분에 행복에 대한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소위 ‘책값’ 하려면 억지로라도 행복한 척을 해야 할 텐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고민이 생겼을 때 긴 생각할 것 없이 친구들에게 고민을 털어놓고 이야기를 나눌 때와 비슷한 느낌이다. 각자의 시행착오를 공유하고, 그 속에서 왠지 모를 위로를 받고, 나에게 맞겠다 싶은 방법을 찾아나가는 그 느낌처럼. <기왕 사는 거 행복한 게 낫겠어>는 바로 이런 태도로 읽으면 좋을 책이다.


저자가 말한 15가지 행복하기 위한 방법이 독자들에게 비슷한 만족감을 가져다 줄 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확실한 것은 평소 일상에서 해보지 않은 일이든 게을러서 뒤로 미뤄둔 일을 꺼내어서 뭐든 해보라는 것이다. 일상을 조금 빗겨나가 무언가라도 시작해 보는 것, 그게 행복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는 작은 희망을 갖고 말이다. 여기엔 "아님 말고..." 같은 마음가짐은 필수다. 딱 이런 태도라면, 우리는 매일매일 어디에서든지 행복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 수 있다. 그리고 행복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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