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다른 열두 세계 포션 6
이산화 지음 / 읻다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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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산화.
도서전 부스에서, 과학 잡지에서, 앤솔러지에서 스치듯 보고 듣고 읽었던
내게 아직은 낯선 작가 이산화님이 『전혀 다른 열두 세계』를 선택한 이유는,
일단은 표지에 홀렸다는 것, 이단은 ‘열두 세계라니 평행우주 얘긴가?’하는 호기심, 삼단은 그래도 망설이는 결정장애를 책쟁이들께 선호도를 물었다는 무려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좋았다.
아주, 매우, 굉장히.

지금까지 초단편이라고 하면 알아채기 힘든 그들만의 메모거나 쓰다만 그러나 뒤가 궁금하지 않은 낙서 같거나 하나마나 한 무사유 무서사의 끄적임으로 느껴져 공감하기가 난감했는데,
이산화님의 초단편소설집 『전혀 다른 열두 세계』 덕분에 새로운 장르를 얻었다.
SF라는 장르에 대해서도 환기가 되었다. 마냥 디스토피아거나 ‘이게 된다고?’ 싶은 허무맹랑공상망상이 아닌 그럴 법도 한, 말하자면 합리적으로 받아들이고 빠져들어 나의 논리로 뒤를 상상하며 읽게 하는 설정과 전개가 놀랍다. 아마도 《고교 독서평설》 연재소설이라는 지면의 특성이 글에 그런 작용을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울러 《고교 독서평설》에 22년 1월부터 12월까지 12개월 동안 연재된 열두 편의 소설의 소재와 변형이 감탄스럽다. 이산화님은 어쩜 이렇게 부지런해서 아는 게 이다지도 많고, 이런 생각을 이렇게 연결시켜낼까. 박식하면 초단편도 장편 이상의 느낌을 심어주는 건가. 놀랍고 감동적이다. 열두 편의 이야기에 이은 열세 번째 이야기를 읽으면 아마 다들 이마 탁! 무릎 탁! 할 것 같은데?!!

도입은 이상한나라의 앨리스 제 1장 토끼 굴 아래로.
이어서 황도 12궁 중에 물병자리, 올린푸스 12주신 중 헤르메스, 12간지 중 유일한 상상의 동물 용, 키보드 위 12개의 기능 키 그 중에서도 F5, 아폴로 계획으로 달에 발을 디딘 12명의 우주비행사 중 여섯 번째 에드거 미첼, 마제스틸 12, UFO연구비밀위원회의 제임스 포레스탈 (여기에는 아이아스 내용도 나온다), 유대민족의 시조 야곱의 열두 아들 열두 지파중 사라진 열 지파, 비틀즈의 12개 스튜디오 음반 중 9번째 더 비틀스 수록곡 Revolution 9, 예수의 열두 제자 중 사도 요한, 슬슬 마무리되는 분위기로 거울나라의 앨리스 11장 깨어남에 등장하는 점점 작고 둥글어져 고양이가 된 거울나라의 붉은 여왕.
대미는 예수만 구세주냐, 나도 너희를 구하러 세상에 왔으니. 이슬람교 시아파, 12이맘파의 마지막 이맘인 무함마드 알마흐디.

전혀 다른 열두 세계가 오묘하게 연결된 장편같은 단편집, 『전혀 다른 열두 세계』.
SF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얼마든지 맡을 수 있는 장르 본연의 재미를 전달하면 좋겠다(p.155)는 작가의 바람이 내게는 와 닿았다. 내가 고등학생이고 이 글을 읽었다면 내 남은 독서기는 SF가 될 듯도 하다. 작가가 그리고 있는 현실과 조금 다른 세계, 완전히 다른 세계, 군데군데가 크게 다르면서도 어쩐지 비슷한 세계, 거의 비슷하면서도 실제로는 근본적인 차이를 품은 세계(p.155)는 우리가 사는 지금의 이 시공간, 분명 유일해서 같다고 할 수밖에 없는 이 시공간도 전혀 다른 시선으로 보는 전혀 같지 않은 우리가 서로가 서로에게 때로는 어둠과 절망이 되기도 하고 희망과 구원이 되기도 하겠지. 다름이 오히려 축복일 수 있다는 것, 서로의 근원에 대한 탐구와 이해 등으로 생각이 이어져 생각이 이제야 좀 정리가 되는 듯 하다.
사실 책은 받자마자 읽었는데 갈무리가 되기까지 오래 담아두고 생각한 책이다. 아직 2월이지만 “나의 올해의 책”에 올려두는 책, 좋은 책이다.

때론 입천장에 와 닿는 그런 숨결 하나가 구세주의 도래보다도 절실할 때가 있잖아요? (p.197)

이 책은 나에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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