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과 들판의 별 문학과지성 시인선 337
황병승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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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위시의 대표인 황병승의 시는 21세기 젊은 시의 정형이라고 할 수 있다.

1970년대 세대인 황병승은 그의 시 세계를 표현하는데 있어서의 시적 언어란 시적 행위이며,  기존 시인들의 특징인 서정성이라든가 운율적 형식을 허물었다.  

 즉, 감동을 주기 위해 시적인 표현이 되는 것이 아니라, 표현 자체에 들어 있는 의미가 감동이 되는 것이다.

「트랙과 들판과 별」은 어른이 되지 못한(되기를 거부한?) 아이들의 방황과 반항,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집은 기이한 동화의 세계인 것처럼 시의 주인공들이 아이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순수한 꿈을 갖고 있는 기존의 시에서 등장되는 아이들이 아니다.

아이들이지만 어른들에게 겪는 다양한 성적 폭행들이 내용의 주를 이루고 있고, 한편으로 보면 그 아이들 자체도 생물학적 연령으로 보는 아이가 아닌, 성인의 외적 조건을 갖춘 성장하지 못한 미성숙 어린아이의 자아로 살고 있는 대부분의 어른들을 지칭하기도 하다.

나는 「트랙과 들판과 별」의 모든 시들을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듯한 생생한 이미지로 시집을 감상했다. 그리고「트랙과 들판과 별」의 시의 전체에서 시인이 시적자아들에게 갖고 있는 사랑을 읽었다. 그 사랑이 아픔에 대한 것들이다. 그의 모든 시에서 섹스의 행위가 읽혀진다. 시적 자아는 대부분 어린아이이거나 약물에 중독된 창녀들, 근친상간, 게이들의 성행위를 그리고 있다.

처음 시집을 읽었을 때는 눈으로만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자아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한 스토리의 흐름만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두 번째 다시 시집을 들어 펼쳤을 때는 시의 정황들이나 표현, 시의 해설이 묘한 성행위의 구도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내가 너무 성행위 쪽으로 비약하여 해석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모든 시들에서 성행위의 이미지가 묘사되는 것이다. 내 자신이 변태(?) 같다는 의문이 들 정도이다. 그의 시들은 말 그대로 언어로써 전위적인 성행위를 보여 준다. 포르노그래피 사진첩 같다고나 할까.

 

난쟁이는 작은 녀석을 뜻하지만 그것은 몇 개의 숨은 의미를 가지고 있고

다락방, 낚시, 목이 긴 장화, 배지badge, 맞잡은 손, 외투, 구름, 가루란 말 역시

몇 개의 비밀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세상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외투속의 구름 구름 속의 배지 배지와 낚시 낚시와 목이 긴 장화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비밀을 한두 개쯤 간직하고 있지만

그것이 음악이 되기 전엔 차가운 동전이거나 혹은 주머니 속의 밀떡

<눈보라 속을 날아서 (상) -부분>

 

 

‘눈보라 속을 날아서 (상)’ 을 살펴보면 시 안에서 지칭하는 난쟁이는 작은 녀석을 뜻하지만 몇 개의 숨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다. 난쟁이 자체에 의미를 띤다. 난장이는 자라지 못한 자아를 갖고 사는 어른들을 의미할 것이다. 어른의 몸을 타자화해 자아의 미성숙을 난장이에 비유한다. 다락방의 의미 역시 그러할 것이다. 여기에서 가루란 ‘마약’을 뜻하는 의미 일 것이다. 건강하고 성숙된 자아를 지닌 성인이 가루 속에 묻혀 살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에 난쟁이들이 묻혀 산다고 말하는 것이다.

 

피아노의 건반은 여든 여덞 개

그것들은 하나같이 만족을 알까……

 

당신은 피아노를 사들인다

어린이 날이라고

콧물을 훌쩍거리며

빵 부스러기를 흘리는 내가

흑백의 기묘한 작대기들과

교감을 나누리라고.

꿈에서조차 나는 단 하나의 건반에 대해

알고 싶지 않은데,

나는 두드린다!

나는 두드리고 당신은 즐거워, 한다

우리 아이는요 피아노를 집돼지처럼 다뤄요

손바닥만한 당신의 뱃속에서

팔다리를 온전히 뻗지도 못하던 내가

처음 하나의 건반을 걷어찼을 때

당신이 내지르던 그 야단스런 음계들이 뭘 의미하는지

꿈에서조차 나는 알고 싶지 않은데,

나는 두드린다!

어린이날이라고

당신은 나를 피아노 앞에 주저앉히고

나는 더 세고 강하게!

두드려도 괴롭고

두드리지 않아도 괴롭고

당신은 그저 즐거워, 한다 어린이날 기념 독주회라고

우리아이는요 금세 피아노의 주인이 됩니다 보세요

곧 알게 되겠지만,

내가 당신을 이해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날기념좌절어린이독주회 - 전문>

 

‘당신은 피아노를 사들인다 어린이 날이라고’/는 아빠가 새 엄마를 맞이하는 장면이다. 화자는 코물을 흘릴 정도의 어린아이이다. ‘흑백의 기묘한 작대기’/는 새 엄마를 뜻한다. ‘꿈에서조차’/ 새엄마와 관계를 맺게 된다는 것은 어린이인 화자가 상상도 못할 일이다. ‘나는 두드리고 당신은 즐거워한’/ 는 새엄마가 화자와 성관계를 맺는 일이다. ‘손바닥만 한 당신의 뱃속에서’/는 여자의 자궁을 뜻한다. ‘팔다리를 온전히 뻗지도 못하던 내가’/는 화자가 태어나기도 전 태아의 상태였을 때를 말한다. ‘처음 하나의 건반을 걷어찼을 때’/란 새엄마와 화자의 성행위를 묘사한다. ‘당신은 나를 피아노 앞에 주저앉히고’/는 새엄마와 화자와의 성행위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린다. ‘두드려도 괴롭고/ 두드리지 않아도 괴롭고’/는 화자가 새엄마의 성폭행에 희생당하는 입장에서의 심정이다. ‘피아노의 주인이 됩니다’/는 화자가 이제 새엄마와의 관계가 이미 확실해졌다. ‘내가 당신을 이해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에서 해설은 이 모든 상황이 인간으로서 절대 용서될 수 없는 범죄임을 말한다.

 

엄마는 울면서 잡든 나의 이마에 입을 맞춥니다

지난밤 드로그 씨네 둘째가 총에 맞아 뻗어버렸다는구나 너도 몸조심해라

땀이 나고 미끌거리는데 여자 친구는 손을 꼭 잡고 걷는 것을 좋아합니다

드로그 웨이는 죽기 전, 금고를 열다 감전이 되었고

두 손이 새카맣게 타버렸다는구나 망할 놈의 금고 회사!

새벽이 오면 떠돌이 늙은 개가 방으로 뛰어들어와

내 거시기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습니다 킁킁킁 싫다는데도.

동생은 또 자다가 나무 위에서 떨어져

엉덩이에 염소 뿔이 박혔고

나는 노트에 갈겨썼어요

그나마 성한 발가락으로 펜슬을 꽉 쥔 채,

 

죽음, 그런 것은 지우고 다시 써버린다

<엽차의 시간 -부분>

 

‘총에 맞아 뻗어버렸’/은 강간을 의미한다. ‘땀이 나고 미끌거리는데 여자 친구는 손을 꼭 잡’/은 성기부분을 의미한다. ‘여자 친구는 성기를 꼭 잡고’가 될 것이다. ‘동생은 도 자다가 나무 위에서 떨어져 엉덩이에 염소 뿔이 박혔’/은 자신의 동생이 게이라는 뜻으로 남성끼리의 성행위를 뜻한다. ‘죽음, 그런 것은 지우고 다시 써버린다’/는 성기의 발기 전 후를 나타내는 것이다.

 

2층 사는 남자가 창문을 부서져라 닫는다, 그것이 잘 만들어졌는지 보려고

 

여자가 다시 창문을 소리 나게 열어젖힌다, 그것이 잘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으니까

 

서로를 밀쳐내지 못해 안달을 하면서도 왜 악착같이 붙어사는 걸까, 더 큰 집으로 이

사가려고

 

바퀴벌레 시궁쥐 사마귀 뱀 지렁이 이 친구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미움 받고 있는가 알

기나 할까, 파티에 초대받은 적이 없어서

 

아줌마 아저씨들은 ‘야 야 됐어’ 그런다, 조금 더 살았다고

 

그러면 다리에 난간은 뭐 하러 있나 입을 꾹 다물고 죽은 노인네에게 밥상은 왜 차려주



 

그런 게 위안이 되지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빵 주세요 빵 먹고 싶습니다 배고픈 개들이 주춤 주춤 늙어가는

저녁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

<춤추는 언니들 추는 수밖에-전문>

 

‘2층 사는 남자’/는 여자 위에 올라타 있다. ‘창문을 부서져라 닫는’/은 남성의 성기, ‘소리나게 열어젖힌’/는 여자의 누워있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서로를 밀쳐내지 못해 안달하면서도 왜 악착같이 붙어사는’/ 은 리얼한 성행위 장면이다. ‘야 야 됐어’/ 성행위가 끝난 후에 하는 말일 것이다. ‘입을 꾹 다물고 죽은 노인네에게 밥상은 왜 차려주나’/란 표현이 재미있다. 남성이 나이가 들어 더 이상 성행위를 하지 못하는 이에게 여자가 무슨 필요이냐는 말일 것이다.



악성 독감에 걸린 모모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나답게 살자, 나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쨌거나 나답게 살아야 해

다짐하며 밤새도록 열에 시달린 새벽

 

바다가 호수가 되고 처녀가 수염을 기르고

토끼가 사자를 쫓는 악몽에서 깨어난 뒤

모모는 자기도 모르게 바보 천치가 되어

나담게 살자는 지난밤의 다짐을 잊고

콜록콜록 죽은 할아버지의 곰방대를 훔쳐 집을 나갔다.

 

모모…… 그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담배를 태우고 있을까

그러나 모모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서

모와 모가 갈갈이 찢겨진 이상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모모 -부분>

 

‘모모’는 가족의 비극 사를 ‘악성 독감’에 비유한다. ‘나답게 살자, 나답다는 것은 무엇일까’/ 모모가 말하는 모모다운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타자인 모모와 자아인 모모가 갈등하는 것일 것이다. 어린 모모가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극한 상황이 벌어진 날이다.

‘바다가 호수가 되고 처녀가 수염을 기르’/는 날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모모’의 가족에게 이러난 이런 비극도 도저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기에 악몽이고 싶었다.

‘죽은 할아버지의 곰방대를 훔쳐’/ 는 그리하여 결정한 것은 죽은 할아버지가 가족에게 저질렀던 성 폭행을 자신이 저지르지 않기 위해 자신이 집을 나가는 것으로 현실을 피한다.

‘모와 모가 갈갈이 찢겨진 이상한 모습’/에서 모와 모가 나뉘는 것은 모모 자신안의 선과 악의 대립을 보여준다.

 

모모는 두 늙은이와 어린 계집애에게 사로잡혀

겨우내 담배를 태우며 지냈다

<모모 - 부분>

 

‘모모는 두 늙은이와 어린 계집애에게 사로잡혀’/에서 모모는 부모와 여동생과의 관계를 밝힌다. ‘겨우내 담배를 태우며 지냈’/담배란 이미 죽은 할아버지가 그의 가족에게 했던 성폭행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이보시오! 실은 내가 말이오, 당신들도 어쩌면 눈치 챘겠지만 나는 사람의 탈을 쓴, 사

납기 그지없는 늑대올시다! 허 허 허, 배불리 먹여줘서 고맙긴 한데 나는 은혜 따위 모르

는 들짐승, 이제 슬슬 배은망덕을 좀 보여드릴까?!”

<모모 - 부분>

 

시적 자아 ‘모모’는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지르는지 알고 있다. ‘사람의 탈을 쓴’/에서 시인의 목소리가 나온다. 사람의 탈을 쓴 늑대라고 밝힌다. ‘배은망덕 좀 보여드릴’/에서 모모가 저지르는 죄악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비좁은 방공호 속

열두 살짜자리들이 어깨를 웅크리고 앉아

한 녀석은 목을 잡고 다른 한 녀석은 앞다리를

또한 녀석은 뒷다리를 잡고 떠돌이 개 뽀삐와 했다

 

그 뒤로 뽀삐는

세 녀석을 보면 꼬리를 치며 달려들었고

열두 살짜리들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동시에

뽀삐를 향해 돌을 집어던지는 것으로

상황을 극복하려 했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다

밤마다 뽀삐의 울음소리가 이 골목 저 골목을 흔들고

며칠 뒤 떠돌이 개 뽀삐는 마을을 떠났다

 

뽀삐는 수캐였다

<뽀삐 - 전문>

 

열 두 살짜리들이 개 한 마리와 성행위를 한다는 것, 그것이 수캐이든 암케이든 독자들은 상관없다. 이런 일들이 분명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분명 열두 살짜리들도 뭔가 옳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뽀삐에게 오히려 돌팔매질 한다. 그리고 오히려 피해를 당한 쪽이 떠난다. 시에서는 어린아이와 떠돌이 개 설정되어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 현실에서 어른들이 어린아이 하나에게 성폭행한 뒤에 자신들의 일이 탄로가 날까봐 오히려 아이에게 돌팔매질 하는 겪일 것이다. 그리고 당한 입장이 조용히 사라져 주는 것. 현대 사회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섹스는 사랑을 이루어져야하는 성행위이어야 한다. 이 시안에서의 섹스는 경악을 자아낸다. 시의 자아들은 하나같이 어린이 성폭행 피해자들이다. 더군다나 정신적 치유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가족 내의 근친상간이 주를 잇는다.

시의 화자들이 대부분 어린아이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단지 어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영원히 용서받지 못하는 죄악을 저지르는 것이다. 단지 어른이 아니라 천륜을 저지르는 일이다.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현대 사회의 비일비재한 이러한 일들. 이보다 더 잔인한 정신적 상처는 없을 것이다.

황병승은 그런 일들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시 안의 자아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고 그들을 보호하려 하고 있다. 또 시적 자아들이 어리기에 그들은 아파도 목소리조차 내지 못할 것이다. 그 죄를 저지르는 어른들 역시 모습만 어른일 뿐이지 그들의 정신도 성장을 멈춰 버린 아이와 같기 때문에 죄책감도 모른 채 그럼 무시무시한 죄악을 서슴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이러한 일들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역시 자아들 본인이기 때문에 차마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없다.

시 안에서 화자가 실제 어린아이처럼 설정하여 어른과의 경계를 극명히 대비 시켜 놓아 시의 극적 효과는 독자로 하여금 그 충격을 몇 배로 수용하게 만든다. 이것이 황병승만의 특징이라 할 수 있겠다.

황병승의 시집 한 권을 다 읽고 너무도 씁쓸한 기분을 맛봤다. 그 누구의 시집보다 이보다 더 참혹한 스토리들은 없을 것이다. 도무지 끔찍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었다.

「트랙과 들판과 별」 은 현대 사회의 돌고 도는 가장 추한 문제점과 그 중심에 서있는 어린 아이와 같은 정신세계의 아픔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은 제가기 다른 얼굴 여러 복합적인 자아들이 등장하지만 그들 모두가 내는 목소리는 하나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상처로 어른이 되어서도 자아가 성장하지 못한 채 어른의 모습만 하고 있는 아이들.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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