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 체험
오에 겐자부로 지음 / 소학사(사피엔티아) / 1994년 11월
평점 :
품절


버드의 아들이 기형의 쌍두아(정확히 말해서 뇌 헤르니아)라는 것부터 의미심장한 대목으로 보인다. 풀어본다면 쌍두아란 샴 쌍둥이처럼 하체는 하나이되 머리는 두 개가 있는, 행동은 하나일수밖에 없으나 행동을 지시하는 뇌는 두 개가 존재하는 그로테스크하거니와 여간의 아이러니가 아니다.

이런 비정상적인 아들의 씨를 뿌린 스물 일곱살이지만 마흔이란 퇴행의 체력을 지닌 버드. 그는 괴물을 낳은 아버지라 스스로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봉쇄하고서, 근본적인 부끄러움이라 생각되어지는 성적인 갖은 쾌락으로 순간을 덮어두려 애쓰는 모습이 책의 주요 골자일것이다.

일본문학하면 사소설일것이고 보면, 흥미를 돋우는 스토리가 아니다하는 선입견을 가졌고 전혀 근거없는 생각은 아닐것이다. 사소설이란 주로 일인칭서술로 나아가며, 심리적이나 특히 일본문화주류의 한 가지인 심미주의적인 면이 강해서 어렵고 관심마저 멀어졌었는데, 겐자부로의 <개인적체험>은 그런점에서 비켜서 있는 소설이라 할것이다.

먼저는 주인공 버드에게 매료되지 않을수 없는 나였다. 그의 행동이 직선으로 본다면 파렴치하고 인간의 탈을 쓴 악마로 보일수도 있을것이나, 핵문제로 떠들썩한 세상이나, 바쁘고 분주히 삶의 바퀴를 굴리는 사람들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한 사람들의 세상사에서 벌어지는 다사다난한 삶들을 견주면, 그리고 멀리 갈것없이 나를 돌이켜본다면 버드는 이른 바 '나'의 대리인이나 친구나 가족처럼 느껴지곤한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역자도 작가도 논했던 결말 부분이 조금 아쉬울 수 밖에 없었다. 해피엔딩으로 마치는것은 희망이란 슬라브어와 일치하여 그럴듯하지만, 버드의 아들에대한 책임으로부터의 탈출하려는 이를테면 뼈대를 이루는 부분들의 감동을 해피엔딩을 보여줌으로서 무화시키고 있지나 않은가.. 기울어져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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